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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의 소굴

작성자 2018-06-18 최고관리자

조회 456

 

 

 

냄새의 소굴
[기획]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 조사원 칼럼④
등록일 [ 2018년06월15일 16시49분 ]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 정신요양시설 30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1:1 면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거주인의 10명 중 6명이 강제입소 당했으며 20년 이상의 장기 거주자도 상당수였다.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거주자 절반은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비마이너는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당시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글을 싣는다. 보고서 속의 수치화된 언어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경험의 언어를 이들의 글로 전한다. 조사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곳의 냄새를 기록하여 전함으로써 그들이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까지 접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 순서

① 노규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②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③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북지부장

④ 강혜민 비마이너 기자


A정신요양원은 시내에서 차로 10분가량 더 들어가야 있었다. 시설이 있는 대지는 광활한데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6층 벽돌 건물에 촘촘히 창문이 박혀있고, 창문엔 쇠창살이 처져 있다. 그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볼 어떤 얼굴들이 떠올랐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를 바라보게 된다면 그는 갇힌 수인의 모습처럼 읽힐 터였다. 건물 맞은편, 하얀색 가건물에 자주색 무언가가 일렬로 널려있다. 다가가서 보니 동일한 디자인의 자주색 브래지어 50여 개가 걸려있었다. 여성 거주인의 것인 듯했다.

 

거주인을 만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내가 먼저 마주한 것은 거대한 철문이었다. 잠긴 철문은 오직 직원만이 열 수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훅, 하고 냄새가 쳐들어왔다. 이 냄새를 어떻게 기록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후에 어떤 이는 “무좀 냄새 같다”고 했는데, 무좀 냄새를 알지는 못하나 그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그 냄새를 상기시켰다. 습하고 눅눅한 냄새, 곰팡이 냄새, 수백 명의 체취가 섞인 냄새, 흐르지 못한 시간이 고여서 썩은 냄새. 화장실 앞을 지날 때면 그 모든 냄새를 뒤덮고 화장실 특유의 악취가 압도했다. 차라리 그 냄새가 사실적이었다. 함께 시설 조사에 들어간 이는 무엇보다 이 냄새가 시설이 어떠한 곳인지를 잘 알려준다며 “냄새를 박물관에 보존하고 싶다”고 하였다.

 

내 앞엔 그 냄새에 갇힌 사람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주저앉아 있었다. 바닥에 붙은 수십 개의 눈이 초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1529049180_32563.jpg 사진 : 픽사베이
 

- 거주하는 방이 어디냐고 물으니 ‘거실’이라 답했다

 

가운데 커다란 거실이 있고, 거실 양옆으로 기다란 복도가 있었다. 그 복도에는 커다란 방이 딸려 있었는데, 한 방에 10~15명가량이 집단 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 대부분은 빼빼 말라 있었고 머리카락은 짧았다. 한국 중년 여성 대부분이 파마를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파마머리가 아닌 직모의 커트 머리였다. 이들은 복도에 앉아있거나 방에 이불도 펴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거실은 상당히 컸는데 그 거실에도 사람이 한가득 차 있었다. 거실 벽 한쪽 끝에 있는 침상엔 코에 큐브를 단 중증 뇌병변장애인이 누워있었다. 장애로 인해 치켜올려진 그의 종아리는 매우 앙상했다. 이곳은 정신요양원인데 그에겐 어떤 정신장애가 있는 걸까.

 

첫 번째 면담자와는 복도 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눈동자를 굴렸고, 그 모습은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다. 혹시 지금 이야기를 직원들이 들을까 두려우시냐고 묻자 그는 “네”라고 답했다. 사실 그는 대부분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는데 그 전과 같은 응답임에도 왜 이건 진짜 “네”처럼 들렸을까. 혹시 이것은 내가 원하는 대답이어서 그런 걸까. 나는 그의 삶에서 ‘진짜’인 것들을 찾아 길어 올리고 싶었으나 내 의도만큼 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답의 미끄러짐 속에서 나는 자주 갑갑했다.

 

국민체조 음악이 갑자기 울려 퍼졌다. 음악 소리에 그는 어떠한 말도 없이 일어나 거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층에 있던 모든 사람이 거실로 모여들고 있었다. 거실 TV에선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이 시간을 위해 특별 제작한 듯했다. 푸른 초원에서 유니폼 입은 젊은 남녀직원이 삼각대열로 서서 국민체조하는 영상을 보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따라 했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작을 완벽히 수행하진 못하여도 따라 하려고 노력했다. 국민체조가 끝난 뒤에야 그는 나와의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나는 그에게 거주하고 있는 방이 어디냐고 물었다. 그는 “거실”이라고 답했다. 질문을 이해 못 하는가 싶어 재차 방이 어디냐고 물었음에도 그는 “거실”이라고 답했다. 후에 나는 십여 개가 넘는 방 앞에 붙어있는 명단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 어떤 곳에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오전 인터뷰 시간이 20여 분이나 더 남았는데 점심 식사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점심을 먹어야 한다며 또다시 일어났다. 식당은 따로 없었다. 급식 카트에 실린 음식들이 그곳으로 배달됐고, 사람들은 거실에 식탁을 펴고 앉아 밥을 먹었다. 나는 그에게 “20분만 있다가 식사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시간관념’이 없는 듯했다. 가만히 바닥만 응시할 뿐이었다. 난 답답함에 직원에게 “20분 후에도 식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를 수락하는 직원의 말을 듣고서야 그는 다시 나와의 인터뷰를 이어갔다. 그의 세계는 오직 시설의 소리에만 반응했다.

 

오후에 만난 이는 70대 후반의 거주인으로 이 시설의 최고령자였다. 그는 거실의 한 귀퉁이에 자갈처럼 박혀있었다. 치아가 없어 그와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짧게 몇 마디 나누던 차, 옆에서 이상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직원이 거주인(성인 여성)의 바지를 벗긴 채 기저귀를 갈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나는 그의 성기를 보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이 이열종대로 거실에 앉아 찬송가를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직원들은 그들에게 요구르트를 하나씩 나눠줬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이도 엉금엉금 기어가 요구르트를 받았다. 

 

거주인들이 사는 방 안엔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사실 화장실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데, 하얀 벽에 위아래 뚫린 채 가운데만 가린 문이 하나 달려있었고 그 안에 변기 하나가 놓여있는 식이었다. 나는 맞은편 벽면에 기대앉아 세 번째 인터뷰 대상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차였다. 한 직원이 거주인과 걸어들어왔다. 거주인이 화장실 문을 열고 대변을 보는 동안 시설 직원은 그 문 앞에서 비닐장갑을 낀 채 서있었다. 나는 또한, 산책을 나가기 위해 사람들이 신발을 들고서 복도에 이열종대로 앉아있는 모습도 보았다. 그 산책 시간은 이 철문을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는 수십 년의 삶

 

나는 그 날 그곳에서 내가 보고 듣고 냄새 맡은 일들을 한 문장씩 적으며 자기 검열에 시달리고 있다. ‘어디까지 말해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 표현해선 안 되지,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잖아’라는 생각이 자꾸 내 손을 붙잡는다. 나는 지금 ‘이렇게 끔찍한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자극적인 언어들을 쏟아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에도 말해야겠다. 바로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새벽 6시에 일어나 아침밥 먹고 체조하고, 점심 먹고 간식 먹고, 저녁 먹고 자고 일어나면 또다시 어제와 같은 일상이 반복하는 곳. 이 시설은 한국에서 장애인복지시설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의미로서’ 정말 대단했다. 그곳은 시설 폭력의 스펙터클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그러니 말해야겠다. 모든 시설은 폐쇄되어야 한다고. 지금 시설은 사람을 가두어둠으로써 국가로부터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그 6층 건물에만 400여 명이 산다. 한 인간의 삶이 헐값에 팔아넘겨 지고 있다. 시설은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장애인이 아닌 사람’과 분리하여 바라보게 만들고, 발달의 퇴화와 비사회화로 ‘장애’라는 속성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렇게 구축된 공간이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 안에 사는 그와 나의 다름이 너무도 강렬하게 부각되어,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그이가 도저히 나와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료시민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시설의 ‘일상적 행위’는 외부자의 시선에서 볼 때 폭력적이고 괴기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물음 끝에 나는 바로 그 괴기함이 시설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본래 속성이라는 답에 미쳤다.

 

한 공간에서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먹고 자는 삶이란 어떤 걸까. 나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관계성이 궁금했다. 그들은 서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우리는 어떤 이를 기억할 때 그가 한 행위를 떠올리며, 그 행위의 개연성 속에서 그만의 독특성, 취향을 발견한다. 이러한 것이 그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고 규정한다. 그런데 그러한 개별적 행위 없이 오직 집단적 행위만이 가능하다면, 아니 아무런 행위조차 할 수 없어 어떠한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시간이 계속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당신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러니깐, 그렇게 구축된 물리적 공간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직 종(種)으로서의 인간만을 남겨둔 채 집단 수용하는 시설이란 공간은. 그 안에서 그의 낮과 밤은, 그의 어제와 내일은, 시간의 흐름의 퇴적은 어떠한 개별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나. 기쁨과 슬픔이, 환희와 절망이, 사랑과 미움이 없는 마비된 세계. 흐르지 못한 시간의 썩은내가 콧구멍을 막았다.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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