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게 학교는 왜 특수해야 하나?
새 정부 들어 장애계의 요구 사항이 드라마틱하게 관철된 것이 있다. 특수학교 설립이 그것이다.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막혀 있던 특수학교 설립이 2017년 9월 5일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를 기점으로 물꼬가 터졌다. 토론회 말미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지역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사진이 언론과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론은 ‘님비에 장애부모들이 무릎 꿇었다’며 장애부모들의 절절한 ‘무릎 호소’를 앞 다퉈 보도했다. 남들은 걸어서 가는 학교를 몸도 불편한 중증장애학생들이 왕복 4시간 걸려 통학한다는 이야기가 뉴스를 채웠다. 그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 특수학교를 짓겠다는데 지역주민들은 땅값 떨어질 걱정에 기를 쓰고 반대하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촛불혁명의 여파였을까? 예년 같지 않은 동정 여론에 새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특수학교 설립은 장애 학생들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 특수학교를 짓겠다.”고 공표했으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에 특수학교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모든 게 9월 한 달 동안 일어났다. 그리고 2017년 12월 4일, 교육부는 특수학교를 대폭 확충한다는 내용의 제5차 특수교육발전 5개년(2018~2022) 계획을 발표했다. 그 결과 올해 2018년 강서구의 ‘서진학교’가, 내년 9월에는 서초구의 ‘나래학교’가 개교할 예정이다.
특수학교를 요구해온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뜻밖의 눈부신 승리였다. 그러나 장애인 통합교육의 관점에서는 후퇴다. 왜냐하면 특수학교는 장애인 통합교육을 실현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수학교에 대한 욕구는 통합교육의 실패에 기인해 생긴 것이다. 2008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정으로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더불어 통합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법에 명시했음에도 지난 10년 동안 통합의 성과는 미미했다. 큰 비용과 노력이 들지 않는 경증장애 학생 위주로 통합수업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주로 발달장애를 가진 중증장애학생들은 통합학급에서 놀림과 따돌림을 받거나 특수학급에 고립, 방치되기가 다반사였다. 일반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마음 편히 장애인들만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 보내겠다는 것이 중증 발달장애 학부모들의 환멸 어린 욕구였다.
지난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싸고 해당 지역주민들과 갈등을 빚던 장애인부모들의 '무릎 호소'는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이 장애인교육운동 자체에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는 면밀히 검토되지 못했다.
그들의 ‘무릎 호소’에 교육감과 교육부장관, 그리고 수많은 네티즌들이 뜨겁게 반응했다. 물론 정의감 때문일 테지만 그 정의감 이면에는 ‘불쌍한 장애인’과 ‘모성애’에 대한 동정, 그리고 장애인은 ‘분리’해서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통념이 깔려 있다. 일반학교에서 왕따 당하느니 차라리 특수학교에 보내겠다는 학부모의 체념어린 요구가 일반학생들 수업 방해하는 발달장애인은 분리하는 게 낫다는 차별주의적 통념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발달장애 부모들의 요구가 잘못됐다거나, 그에 화답한 대중들의 정의감이 오류라고, 그래서 이 자그마한 승리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일반학교에서 개별적으로 통합을 위한 백병전을 치르다 후퇴하여 특수학교라는 진지를 구축하는 형국이다. 전략적으로 불리한 싸움이라도 필요하면 해야 하고, 한 이상 이기는 게 좋다. 단, 이럴 때일수록 장애인 통합교육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2008년 ‘특수교육진흥법’을 폐지하고 ‘장애인 등에 관한 특수교육법’을 새로 제정할 때 ‘특수교육’이란 개념을 버리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특수교육’이란 단어는 개별 장애인의 장애 유형과 특성에 대한 특별한(singular) 교육적 관심이 요구된다는 본래 취지와는 무관하게, 장애인에게는 일반교육과 다른 특수(particular) 교육이 필요하다는 분리주의를 함축하게 되었다. ‘장애인’의 상대어로 ‘일반인’을 쓰는 것이 장애인을 정상에서 벗어난 특수집단으로 보는 차별주의적 언어습관이라는 인식이 겨우 상식으로 자리잡아가는 상황에서 장애인 교육을 ‘특수교육’으로 칭하면서 장애인을 특수집단(‘특수교육대상자’)으로 범주화 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개념화였다. 실제로 ‘특수교육’이란 용어는 상대어로 ‘일반교육’, ‘일반학교’라는 단어를 파생시켰고, 통합교육이랍시고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을 따로 두어 장애학생을 모아놓고, 그들에 대한 교육을 ‘특수교사’만의 것으로 분리시키고, 학교까지 ‘특수학교’로 분리시키는 것을 정당화 했다.
특수학교 설립을 요구해온 사람들은 주로 발달장애(지적, 자폐성 장애)를 가진 학생의 부모이다. 청각장애와 시각장애를 제외하고 학교교육에서 가장 많은 장애를 겪는 이들이 발달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Developmental Disability)란 개념 자체가 학교교육이 전제로 삼는 정상적인 발달 단계를 따라갈 수 없다는 뜻이다. ‘발달’이란 단어에 내포된 진화론적 함의 때문에 영연방 문화권에서는 ‘학습적 장애’(learning difficulties)란 개념을 쓰는데, 그 역시 학교교육에서의 장애를 함축한다. 푸코에 따르면, 서구에서 ‘학교’(school)라는 근대 훈육 기관이 교육을 독점하게 된 과정과 발달장애의 전사로서 ‘백치’, ‘정신박약’이 ‘광기’로부터 분리 정립된 과정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백치’(idiot)는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광기 일반에 포함되어 있었다. 1840년경부터 백치는 광기나 질환이 아니라 지적능력들의 발달이 정지되거나 지체된 상태로 정의되었다. 정신지체 개념은 성인보다 아동을 대상으로 아동심리학의 영역에서 형성되었다. 정신지체아의 구별로부터 아동의 정상적 발달이라는 개념이 생겼고, 발달 개념을 중심으로 심리학과 교육학이 발전했다.
발달장애인에게 학교는 무엇인가?
정신지체를 판정하는 사람은 병원의 의사가 아니라 학교의 교사였다. 19세기 말 초등(국민)학교가 도처에 설립되고 초등교육이 정교화 되면서 학교는 정신지체, 정신박약을 포착, 여과하는 기관으로 기능했다. “백치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는 학교라는 장에서 전개된다.”1) 정신지체를 포착하기 위해 문의한 사람은 초등학교 교사였으며 선별기준은 학교에 적응할 수 있는가,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가, 학습 단계를 따라갈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한 아이들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 속에서 발달장애인이 정의된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은 학교에 들어갈 수 없는 자, 훈육 불가능한 자, 교육 불가능한 자이다. 그럼 학교로부터 여과된 발달장애인은 어디로 보내졌을까? 얼마간은 정신이상자가 있는 정신요양원의 분리된 공간으로 보내졌다가 점차 독립된 정신지체아 시설로 보내졌다.
미국에서도 1850년대까지 백치는 빈민구호소(almshouse)에 부랑인들과 섞여 있었다. 1840년 백치와 미치광이에 대한 인구조사가 처음 이뤄졌고, 백치와 부랑인들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개혁가들의 입법청원이 이어졌다. 그 결과 백치, 정신박약아를 위한 시설이 많이 세워졌는데 흥미롭게도 그 시설들은 주로 ‘학교’(school)라는 명칭을 달았다. 가령, 1848년 남부 보스턴의 백치들을 위한 시설의 이름은 ‘백치와 정신박약 청년들을 위한 메사추세츠 학교’였다. 1888년 무렵 미국에는 4천여 개의 정신박약 시설이 설립되었다.2)
발달장애가 학교의 여과장치에 의해 정의되고, 그렇게 학교에서 추방된 발달장애아를 수용한 시설을 ‘학교’라고 부른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설은 발달장애인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에서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그 시설들은 수용된 아이들을 교육 불가능한 자, 개선 불가능한 존재로 보았다. 시설은 구제불능의 아이들을 사회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는 데 만족했다. 사실, 시설이 보호하고 있는 것은 발달장애 아동이 아니라, 그들을 돌보느라 일도 못하고 일상이 해체된 가족과 그들의 예기치 못한 범죄 위험에 시달리는 지역 사회였다. ‘학교schools’, 혹은 ‘생활학교life-schools’로 불린 그 시설들은 교육기관이라기보다 감시와 처벌 장치를 갖춘 격리·보호시설이었다. 그럼에도 발달장애 아동의 교육 및 개선 가능성은 그 특수한 학교를 설립하는 핵심 논거였다. 적절한 규율과 환경은 발달장애를 개선시킬 수 있으며, 아이들을 유용하고 생산적인 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믿음 속에서 시설은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실제로 ‘작업재활’, ‘직업훈련’, ‘직업교육’ 차원에서 이뤄진 발달장애인들의 부불노동은 시설 운영비에 상당히 기여했다. 발달장애인 학교의 엄격한 규율(discipline) 장치는 감시와 처벌을 한 축으로 하는 격리 보호 기능과 교정·훈련을 다른 한 축으로 하는 교육 기능을 아무런 문턱 없이 연속선상에 통합했다.
펜허스트 주립학교·병원의 역사를 담은 영상 '양심의 부름' 중 갈무리 (제작: 펜허스트 기억보존사업회)
미국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이정표가 된 ‘펜허스트 학교·병원’도 그 중 하나였다. 이 시설은 1908년 ‘동 펜실바니아 정신박약자와 간질환자 보호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설립 목적은 “정신박약자와 백치를 위한 구금 돌봄(detention care)과 훈련(training)”이다. 직업훈련과 음악교육이 엄격한 규율과 징벌방, 결박, 단종 수술과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있었다. 점차 규모가 커진 시설은 1924년 “펜허스트 주립 학교·병원Penhurst State School and Hospital”으로 개명했다. 1950년대에는 600명의 직원이 3,500명의 수용인원을 돌봐야 했다. 교육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돌봄과 치료조차 없는 ‘인간창고’로 전락했다. 80년의 역사 속에서 1만500명의 발달장애인이 이 ‘학교’에 들어와 방치와 학대 속에 살다가 이 ‘병원’에서 죽었다.
1960년대 민권운동의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와 거주자들과 옹호자들을 움직였다. 68년 NBC 방송이 이 수용시설의 끔찍한 실태를 고발하여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1970년대 들어 지적장애인 시민권 운동은 법정 소송으로 전개되어, 지적장애인도 공교육을 받을 권리를 획득했다. 급기야 77년 유명한 ‘할더만 대 팬허스트’ 소송에서 법원은 장애인들을 분리되고 폐쇄적인 시설에 수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며, 주정부는 거주인들을 위한 지역사회 내 그룹홈과 활동기반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제임스 콘로이 박사는 ‘팬허스트 학교·병원’에서 나와 지역사회 안에 살게 된 장애인들을 30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탈시설 발달장애인들은 지적, 인지 능력, 사회성을 비롯하여 측정 가능한 모든 측면에서 시설에서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발달했음을 확인했다. 교육 불가능하다고, 개선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발달장애인들의 교육과 발달을 위한 최고의 학교는 지역사회였던 것이다.
날것의 인간, 날것의 행복
근대 국가가 (‘지배’가 아니라) 인민의 ‘통치’를 존재이유(국가이성)로 설정하면서 개발한 첫 번째 통치술이 규율(discipline)의 기술 장치였다. 완전한 질서를 추구하는 규율의 통치 이념은 매우 이상적이었지만 그런 만큼 현실적이지는 못했다. 개인의 신체 역량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복종이 몸에 배게 만든다는 것, 개별화 하면서 동시에 전체화 한다는 그 전략 자체가 모순적이어서 실현되기 힘들었다. 정상규범(normality)을 개별 인간의 몸과 행동 하나 하나에 주입시키는 것은 너무나 많은 노력을 요구했지만 그에 비해 얻는 성과는 미미했다. 규율의 통치는 최적화된 조건과 최대치의 통치행위를 요구하면서도 그 결과가 현실에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18세기 중후반 규율의 기술 장치와 나란히, 혹은 그것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통치 이념이 출현했다. 규율이 개인의 육체를 겨냥하는 것과 달리 이것은 종(種species)적인 육체, 즉 무리로서의 생명체를 겨냥한다. 또한, 규율이 개인의 육체를 기계처럼 다루면서 해부정치학적 기술로 통치한다면 이것은 사람들을 마치 양떼 무리(population)처럼 다루면서 생명-정치학적(bio-politique) 기술로 통치한다. 푸코는 이것을 생명권력(bio-pouvoir)이라 불렀다. 생명권력의 대상은 ‘인구’라고 번역되는 ‘population’이다. 생물학에서는 ‘개체군(個體群)’이라고 번역하는데 ‘인구’(人口)라는 단어도 사람의 입, 즉 먹여 살릴 입으로 계산된 무리를 뜻한다. 생명권력의 통치 이념은 ‘인구’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행복(well-being)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복지(welfare)란 개념이 여기서 왔다. 사전에서 ‘복지’란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 우리 자신을 ‘양떼’라고 상상해보자. 그때 우리가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자. 양떼로서의 우리가 원하는 좋은 삶, 그게 바로 ‘복지’의 의미다. 그리고 우리를 이끄는 목자를 상상해 보자. 목자는 꼭 우리와 종이 다를 필요가 없다. 우리와 같은 양떼 중 하나일수도, 여럿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목자에게 기대하는 바를 상상해보자. 양떼로서의 우리가 원하는 좋은 삶으로의 인도, 그게 바로 ‘통치’의 의미다.
남양주의 부모회가 직접 만든 시설의 설립 목적도 “가정처럼 편안하고, 안락하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돌보는 것이다. 가정처럼 25평형 아파트에 방 2개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이 있고 6명의 생활인이 생활재활교사의 촘촘한 돌봄 속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양떼처럼. 그런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가두고, 때리고, 굶기고, 더러운 곳에 방치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 깨끗한 환경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사고 없이 안전하게 살면 그걸로 충분한 걸까?
이런 의문은 ‘인권’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으로 귀결됐다. 보통 인권은 지켜질 때보다 침해될 때 호명된다. 어떨 때 우리는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말할까? 시설과 관련해서 결박, 감금, 폭행, 성폭력, 강제불임, 강제삭발 같은 일이 벌어질 때 ‘인권침해’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때 인권이란 동물복지 운동단체에서 말하는 동물권과 거의 같다. 가고 싶은 데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하는 상황, 핸드폰 갖고 싶은 데 갖지 못하게 하는 상황, 혼자 있고 싶은데 그럴 공간이 전혀 없고, 직장에서 일하고 싶은 데 못하게 하고, 무엇보다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원하는 사람과 살지 못하고 깊은 산 속에서 단체 생활을 강요받는 상황, 즉 시민에게 주어진 통상적인 삶이 봉쇄된 상황을 ‘인권침해’ 상황이라고 잘 생각하지 못한다. 장애인에게 인권은 보통 생물학적 존재, 즉 동물로서의 인간이 누려야할 행복의 기준을 뜻한다.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왜 인권은 동물권과 비슷하게 생물학적으로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향유할 권리로 이해되었을까? 인권 선언의 기원이라는 프랑스 인권선언을 보자. 1789년 8월 26일 라파예트가 기초한 17조로 이뤄진 이 선언문의 정식 명칭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문’이다. 제목부터 혼란스럽다. ‘인간과 시민 권리’라니,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는 같은가, 다른가? 제1조.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사회적 차별은 오로지 공공 이익에 근거할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평등한 권리를 지녔는데 공공의 이익에 따라 차별할 수 있단다. 물론, 공공 이익은 국가, 즉 시민공동체의 이익을 뜻한다. 즉 국익을 위해, 시민의 공통이익을 위해 어떤 인간은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인간이 지닌 소멸될 수 없는 자연권을 보전하는 데 있다. 그 권리란 자유권과 재산권과 신체 안전에 대한 권리와 억압에 대한 저항권이다.” 자유권, 재산권, 신체 안전에 대한 권리와 억압에 대한 저항권, 이게 인간의 자연적, 기본적 권리이다. 자유로운 동물, 건강한 동물, 때리면 들이받는 동물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제3조. “모든 주권의 원리는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떤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직접 나오지 않는 어떤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 인권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데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권리는 법으로 제정되고, 법을 제정하는 권리, 즉 주권은 국민한테 있다. 이건 명확하다. 그러나 인권의 제정원리는 불명확하다. 법을 제정하는 국민의 뜻에 인권의 운명이 달려 있다. 자기 국민 아닌 인간, 시민사회의 공익을 위해 차별받는 인간도 똑같이 평등한 권리주체로 볼 건지 아닌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뜻에 달려 있다.
한나 아렌트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서 인간의 자연적 권리인 인권과 주권자인 국민의 시민권은 어떤 관계일까? 선언적으로는 인권이 시민권의 전제가 된다. 즉 귀족이든 상인이든 노동자든 인간으로서 모두 같다는 자연적 평등이 시민의 정치적 평등을 떠받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법을 제정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법권리의 주체는 시민이지 자연적 인간이 아니다. 인권은 선언적으로는 시민권의 전제로서 보편적 권리이지만, 현실에서는 시민권이 없는 인간, 국민이 아닌 인간, 공익을 위해 차별받는 인간을 위한 예외적 권리가 되고 만다.
한나 아렌트가 인권의 정치를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인권이 시민권과 달리 자연권으로 선포되면서 이미 인권은 자연인의 권리, 동물권과 비슷한 것이 되고 말았다. 인권 보호를 위해 만든 “집단과 그들이 발행한 선언은 언어와 작문에서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단체들의 것과 기이하게 닮아 있다.”3) 어떤 사람들이 인권에 호소하나? 국민이 아닌 무국적자, 혹은 난민이 인권에 호소한다. 아직 시민이 아닌 미성년자가 인권에 호소한다. 법적으로는 시민이지만 공익을 위해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여성, 빈민, 장애인, 부랑인 등이 인권에 호소한다. 인권은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들이 즐겨 쓰는 구호가 되었다. 그것은 일종의 추가적인 권리, 달리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필요한 예외적 권리였던 것이다.4)
인권의 예외성과 비정상인의 인간학
프랑스 인권선언은 인간의 권리를 시민(국민)이 아닌 자들을 위한 예외적 권리로 만들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인간학의 물음 역시 시민(국민)이 아닌 자들을 대상으로 던져졌다. 『프랑스 혁명론』으로 프랑스 혁명에 반기를 든 에드문드 버크는 “자신들의 시민권을 인간의 권리로 주장하는 자들을 경멸했다. 그가 보기에 이 권리는 오직 영국인의 권리로서만 주장하는 것이 적합했다.”5) ‘인간의 권리’라니, 얼마나 추상적인 말인가? 인간? 어떤 인간?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인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보라, 아메리카 원주민을 보라. 인도인은 어떤가?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다 같은 인간이란 말인가?
프랑스 선언문에 대한 이런 의문 속에서 인간 안의 종적 차이, 즉 인종(race) 개념이 생겼다.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 역시 자신의 『철학사전』 중 ‘사람’ 항목에서 “게다가 우리는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인종들이 얼마나 서로 다른지, 그리고 서로 만났던 최초의 흑인과 백인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지 보았다.”고 했다.6) 인종(race) 개념은 인권의 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의 차이에 대한 과학적 탐색 속에서 나왔다. 유대인은 또 어떤가?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가까이, 우리 안에 있는 저 미치광이들을 보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가? 아프리카 원주민 세계에 던져진 유럽 백인의 다음과 같은 인종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원주민들의 세계는 문명의 현실에서 도피한 남성들에게는 완벽한 무대장치였다. 무자비한 태양 아래에서 완전히 적대적인 자연에 둘러싸여 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한 미래도 이미 완성한 과거도 없이 살고 있는 인간들, 정신병 환자처럼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을 대면하고 있었다. 이 선사시대의 인간이 우리를 저주하거나 우리를 경배한다고, 아니면 우리를 환영한다고 – 누가 말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는 주변 환경의 이해로부터 차단되어 있었다. 우리는 마치 유령처럼 그들 옆을 미끄러져 지나쳤으며, 정신병원의 열광적인 소동 앞에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하듯이 놀라고 내심 겁에 질려 있었다.7)
아프리카 원주민을 ‘선사시대’ 원시인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타자성을 정신병자의 타자성과 등치시키는 이런 감각 속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던져졌던 것이다. 이에 답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들을 비인간화, 동물화 하는 것이다. 백치의 얼굴과 두개골은 정상인의 얼굴에 합당한 대칭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입은 너무 크고 입천장은 아치형 곡선을 이루고 있다. 왜소한 체구와 육체적 발달부진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기관은 정상적으로 발달해 있었다. 백치에게서 자주 관찰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도 자주 관찰되는 특징이다. 그리고 침팬지나 오랑우탄에게서도 자주 관찰되는 특징이다….
푸코는 정신병원과 감옥에 수감된 온갖 비정상인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방법론, 지식, 묘사, 처방, 데이터로부터 인간학이 탄생했을 거라고 말한다. 그 밖에 인간학의 데이터가 모인 다른 사례로 푸코는 식민지 건설, 노예제도, 유아 돌보는 일을 제시한다.8) 식민지의 다른 인종, 노예, 유아 등 프랑스 인권선언에서 시민의 범주에 들지 않는 인간들, 그래서 예외적 권리로서 인권에 호소해야 하는 존재들이 인간학의 탐구 대상이었다. 인간학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한 것의 배경에는 분명 프랑스 인권선언이 ‘인권’과 ‘시민권’을 구분한 것이 있다.
푸코는 1976년 강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 생명권력의 기원을 ‘전쟁’ 담론의 계보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생명권력은 주권자의 통합을 설파하는 사법-철학 담론에 맞서 ‘종족 간 전쟁의 역사’를 주장하는 역사-정치 담론에서 출현했다. 군주를 하나의 환영, 도구, 혹은 적으로 규정하는 ‘종족 전쟁의 역사’ 담론은 한편으로는 혁명기 영국의 민중적 요구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왕에 대항한 프랑스 귀족들의 요구 속에서 발전했다. 적대적 ‘종족’ 개념은 19세기 들어와 ‘민족’, ‘계급’, ‘인종’으로 분화되었다. 푸코가 주목한 것은 19세기 들어와 인종전쟁 담론이 더 이상 주권-사법 담론에 맞선 대항담론이 아니라 그것에 흡수되어 내부전쟁 담론으로, 즉 자기 안의 열등한 인종을 청소하여 새롭고 우수한 인종(민족, 계급)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권력의지로 나타난 현상이다. 근대 생명권력은 내부화된 ‘인종전쟁’(우생학적 인종주의)으로 치달았다.
한나 아렌트도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체주의에서 세계 전체를 내부화 하여 인종전쟁을 벌린 생명권력을 발견한다.9) 푸코와 아렌트는 공히 근대 국가의 통치권력이 법을 통한 정치, 법권리의 배분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법 외부의 인간 생명에 대한 직접 통제, 생물학적(인종주의적, 우생학적) 법칙에 입각한 통치, 즉 생명 권력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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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미셀 푸코, 오트르망 역, 『정신의학의 권력』, 난장, 2014, 308쪽.
2) Licia Carlson, ‘Docile Bodies, Docile Minds: Foucauldian Reflections on Mental Retardation’, Foucault and the Government of Disability, edited by Shelley Tremain, Michigan: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2015, p.140.
3) 한나 아렌트, 이진우, 박미애 역, 『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사, 2006, 526쪽.
4) 『전체주의의 기원 1』, 527쪽.
5) 『전체주의의 기원 1』, 347쪽.
6) 『전체주의의 기원 1』, 347쪽.
7) 『전체주의의 기원 1』, 369쪽.
8) 『감시와 처벌』, 211쪽.
9) 한나 아렌트, 이진우, 박미애 역, 『전체주의의 기원 2』, 한길사, 2006, 148쪽. 인종도태 원칙의 꾸준한 강화는 나치 정책의 모든 구절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하여 가장 먼저 말살되어야 할 인종은 순수 유대인들이었고, 그 다음에는 절반의 유대인과 4분의 1 유대인이었다. 또는 가장 먼저 정신병자들이 말살의 대상이었고 그 뒤를 이어 불치 환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불치환자’의 가족들이었다. 결코 정지될 수 없는 도태는 나치 친위대가 도태되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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