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 정신요양시설 30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1:1 면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거주인의 10명 중 6명이 강제입소 당했으며 20년 이상의 장기 거주자도 상당수였다.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거주자 절반은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비마이너는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당시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글을 싣는다. 보고서 속의 수치화된 언어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경험의 언어를 이들의 글로 전한다. 조사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곳의 냄새를 기록하여 전함으로써 그들이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까지 접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 순서
① 노규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②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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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를 위해 찾은 곳은 한 정신요양시설이었다.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기 전, 시설장과 먼저 대면해야 했다. 시설장은 말이 많았다. 수많은 문장들이 돌고 돌다 가리킨 의중은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시설에는 근속연수가 2, 30년에 달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했다. 그들은 성실하게 시설을 운영하고, 거주인들을 '돌봤'으나, 최근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설은 없어져야 하는 곳', '학대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생겨,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시설장은 "이제는 직원 인권에 신경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시설장은 한가지 안내할 것이 있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조사하는 날은 남성 거주인 여덟 명이 '캠핑 체험'을 가는 날이라고 했다. 캠핑 체험 참여자는 '활동이 가능한' 거주인 중 교사들이 논의해서 뽑아서 간다며, 시설장은 "요즘 우리 시설에 '액팅(acting)'이 굉장히 많다"라고 강조했다.
사진 : 픽사베이
시설에서 처음 만난 거주인은 평생을 시설에서 산 4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그는 고아원에서 자라 성인이 되자 이 시설로 들어왔다. 자기 말로는 '화증'이 있어서 이 정신요양시설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화증'이 뭐냐고 물으니 흥분하면 화를 내는 것이라 한다. 자신의 정신질환에 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원래 있던 시설에서 가라고 했으므로, 그는 그저 그렇게 했다.
오전에 진행한 인터뷰는 오후까지 이어졌다. 시설에선 점심시간 때 식사하지 않으면 끼니를 거르게 되므로, 인터뷰를 잠시 중단했다가 점심시간이 끝난 후 다시 그를 찾아 올라갔다. 그는 인터뷰를 진행한 방 문 앞에서 앉지도 않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그는 나를 기다리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가만히 앉아있거나 청소를 한다고 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내 이야기하는 거 처음이에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언어로 설명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자기 이야기 하는 것을 종종 쑥스러워했다. 대답은 언어보다 겸연쩍은 웃음과 끄덕임일 때가 더 많았다.
그날은 일주일에 한 번, 개인 용돈을 받는 날이었다. 지난주에 신청했던 통장 출금액을 받는 날이다. 최대 1만 원까지만 출금 요청이 가능하다. 생활인들은 자기 통장에 있는 돈을 일주일 전에 미리 신청해야 받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줄을 서서 돈을 받은 후, 시설에서 운영하는 매점으로 간다. 일주일에 하루, 돈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간식거리는 마음껏 살 수 있는 날, 거주인들에겐 소소한 축제의 날이다. 그러나 그는 그 중요한 '용돈 받는 일'도 미룬 채 인터뷰에 참여했다.
나중에 그는 내가 두 번째 인터뷰이를 만나고 있을 때 '용돈'으로 산 콜라 한 개를 건네주고 갔다. 콜라는 1700원, 그가 일주일 동안 써야 하는 예산 오천 원 중 30%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얘기해서 너무 좋았고,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니까"라며 건네는 콜라가 유난히 묵직했다.
다음으로 만난 사람은 서른 살에 시설에 들어와 30년째 살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는 자신이 시설에 들어온 경위를 설명하며,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가방을 탁, 둘러메고 퇴근할 때 부러웠다"라고 했다. "가방을 둘러메고, 집에 가서 그 사람들은 밥상 차리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겠지 하는 생각… 부러웠죠."
그러고 보니 시설 안에 있는 그 누구도 가방을 메고 있지 않은 것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필요한 것이 늘 몇 걸음 안에 있는 시설의 삶에서, 가방은 필요가 없다. 집 안에서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가방은 '떠나는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유난히 “가방을 탁, 둘러메고”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는 그의 말이 '집 밖으로 나온 사람'에 대한 부러움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직원들이 부럽지 않았는지 묻자 그는 한참 침묵하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여기 오니까 옷들이 다 새것 같고 안 그래요? 그렇지요? 시설에서 옷을 주기 시작하더라고요 언제부턴가. 그래서 서서히 시설에서 받은 옷이 하나둘 늘어가고, 제가 밖에서 입던 헌 옷을 다 버려서 이제는 새 옷뿐이에요." 반들반들한 옷, 어떠한 기억도 새겨지지 않은 옷을 입은 채 그는 내 손을 잡았다. "이제 가서 행주 빨아야 해요. 네 시 반이네요. 오늘 저녁은 소고기미역국이래요."
조사에 들어가기 전, 시설장은 '우리 시설은 굉장히 개방적이다. 정문이 늘 열려있고, 직원에게 이야기만 하면 언제든지 외출했다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과연 정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도통 그 열린 문 바깥으로 오가지 않았다. 마치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문’이 굳게 닫힌 것처럼, 거주인들은 점심을 먹고 ‘시설 안에’ 있는 운동장을 산책하고, ‘시설 안에’ 있는 매점을 이용했다. 시설은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이 많은 거주인들의 '세계'였다.
직원들은 억울할 수밖에 없겠다. 수백 명의 유일한 세계를 운영하려면 얼마나 바삐 움직여야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세계를 굴리며 나름의 자부심을 쌓아가는 동안,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부심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대상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자기 통장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1만 원 한도 내에서 얼마를 찾을지, 매점에서 무엇을 살지, 점심 먹고 운동장 산책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전부인 곳에서 오늘 식사 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캠핑을 어디로 며칠 동안 누구와 갈지, 일주일 뒤, 일 년 뒤, 십 년 뒤 무엇을 할지가 시설 거주인들에게는 모두 자신의 선택 바깥의 일들이었다.
시설의 이름이 더럽혀진들, 그것이 거주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자신의 선택과 의지로 구축하지 않은 세계에 대해 어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단 말인가. 수많은 선택과 책임, 성공과 실패를 쌓으며 구축되는 삶이 멈춰서는 문이 있다. 그 문 너머에는 개인의 삶이 '체험' 프로그램 안에 고여있는 세계가 있다. 그곳이 시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