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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평생, 가장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작성자 2018-06-12 최고관리자

조회 400

 

 

 

오십 평생, 가장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을 만났다
[기획] ‘국가인권위원회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 조사원 칼럼 ③
등록일 [ 2018년06월11일 17시16분 ]

올해 초, 국가인권위원회가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인권위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 정신요양시설 30개를 무작위로 추출해 2017년 7월부터 10월까지 거주인 1500명을 대상으로 1:1 면담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거주인의 10명 중 6명이 강제입소 당했으며 20년 이상의 장기 거주자도 상당수였다. 자신이 퇴소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거주자 절반은 즉시 나가서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비마이너는 앞으로 총 6회에 걸쳐 당시 실태조사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던 이들의 글을 싣는다. 보고서 속의 수치화된 언어가 차마 전달하지 못한 경험의 언어를 이들의 글로 전한다. 조사원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그곳의 냄새를 기록하여 전함으로써 그들이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까지 접한 ‘시설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넘어, ‘시설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 순서

① 노규호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② 최한별 비마이너 기자

③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경북지부장


작년 가을 중증·정신장애인 시설 실태조사원으로 시설 방문을 했다. 나는 발달장애인이 거주하는 지적장애인 거주시설과 정신장애인이 있는 정신요양시설, 두 곳 모두를 방문했다.

 

첫 방문은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이었다. 가끔 시설 방문을 하게 될 경우가 있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큰 오산이었다. 그곳엔 슬픈 청년들이 살고 있었다. 30명의 발달장애인이 거주하는 시설은 경북에서 오지 중의 오지인 곳에 있었다. 그곳은 설립된 지 5~6년 된 신축건물이었다. 세탁기, 소파, 컴퓨터 등 모든 게 최신기기였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는 서늘한 느낌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20대 청년 발달장애인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키도 크고, 인물도 훤하고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요즘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입소 전 다녔던 학교와 선생님 이름, 친구 이름까지 다 알고 있는데 나갈 수가 없다. 한 거주인에게 “나가서 살고 싶냐?”라고 물으니 “엄마가 ‘안된다’고 했다”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덩달아 내 마음도 슬펐다. 건강하고 멋진 이런 청년들이 왜 산골, 막다른 길 끝에 위치한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 건장한 20대 청년이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앞뒤로 막힌 산속에서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쉬고, 점심 먹고 쉬고, 저녁 먹고 쉬고. 종종 그림 그리기, 종이접기, 청소, 운동, 주말에 외출하는 게 다였다. 조사 지표를 확인하고 시설 실태를 파악하는 것보다 나는 이들의 삶이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시설 조사를 마치고 집에 왔지만, 내가 만난 그 청년의 얼굴이 한동안 떠올라 괴로웠다. 5년 뒤 이들은 어떤 표정으로 살고 있을까. 그는 긴 세월 그곳에서 어떻게 살까. 내가 가서 데리고 나와야 할까. 부질없는 물음에 며칠을 뒤척였다.

 

15287062962916.jpg 사진 : 픽사베이
 

며칠 뒤엔 중소도시의 정신장애인 요양시설에 갔다. 시내에서 불과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정원도 잘 꾸며져 있고 건물은 고풍스럽기도 했다. 조사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사원들이 교육장에 모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보니 거주인들이 마당에 모여 있었다. 남녀장애인들이 한 줄로 대형을 맞춰 체조하는데, 모두 같은 체육복에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표정은 무표정했다. 이들은 30분간 운동한 뒤 일렬로 줄을 서서 다시 시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어깨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남성 직원 몇몇이 유독 눈에 띄었다.

 

조사원들은 미리 정해진 인터뷰 대상자를 찾아 각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층마다 철문이 있었고, 그 철문은 잠겨 있었다. 인터폰으로 호출해야 문은 열렸다. 건물 잠금장치는 3중으로 되어 있었다. 만약 이곳에 불이 나거나 지진이 나면 어떡하지. 끔찍한 모습이 상상됐다.

 

내가 만날 거주인은 3층에 살고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던 중, 갑자기 토악질이 올라왔다. 원래 비위가 약해 조금만 비린 냄새가 나도 힘들어하는데, 내 생전 이렇게 희한하고 고약한 냄새는 처음 맡아봤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가 진정한 후 다시 올라갔다. 인터뷰 대상자의 방을 후다닥 보곤 1층으로 내려와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안에선 도저히 숨쉬기가 어려웠다.

 

한방에 6~7명이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는 여름엔 더워서 복도에서 잠자고, 겨울엔 외풍이 있어 복도에서 잔다고 했다. 결국 방이 있어도 복도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개인 소지품은 자기 이름 적힌 팬티 두어 장이 전부였다. 창문은 철창으로 막혀 있었다.

 

그와는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나이는 49세, 우린 동갑이었다. 그는 본인이 언제 발병했고, 어느 병원에서 치료받았으며, 어느 병원에 몇 년간 있다가 이곳과 저곳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간이 무려 25년이었다. 대학 때 발병하여 지금까지 시설에 갇혀 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가끔 조증이 도질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산다고 했다. 상태가 나쁘지 않아 본인이 방장이라고 하면서 “권한도 좀 있다”고 했다. 권한이란 작은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혼자 있는 것에 대한 허용이며, 이용자 대표로 회의에 참석한다든지, 복도에서 누울 때 먼저 좋은 곳을 선점 할 수 있는 정도였다.

 

나는 이분보다 상태가 훨씬 안 좋지만 약을 복용하며 지역사회에선 사례관리받으며 살고 있는 이를 알고 있다. 그런데 이분은 어쩌다 수십 년간 여기서 살게 된 걸까? 부모님에 관해 물었다. 그는 주소는 알지만 다들 고통스러워하니 스스로가 참는다고 했다. 내가 “밖에 나가서 살 수 있다”고 하니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살아서 나가 살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는 퇴소 될까 봐 오히려 걱정하고 있었다. 나가면 가족이 고통당한다고. 그러니 자신은 여기 있어야 한다고.

 

오후엔 남성분을 인터뷰했다. 2층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돌아 나와야 했다. 그 특유의 역한 냄새를 참을 수가 없었다.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다시 2층으로 가서 인터뷰 대상자를 찾아 빨리 1층으로 내려왔다. 남성분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 게임하며 라포(rapport, 친밀한 관계 형성)를 쌓고 있는데, 오후 2시 30분이 되자 마음이 급한지 안절부절못했다. 원하는 대로 하시라고 했더니 엘리베이터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곧 한 줄로 선 남성 거주인들이 건장한 직원들에 의해 앞뒤로 둘러싸인 채 건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뒷마당에 철로 쳐진 사각형 펜스 안에 모여 담배를 1개비씩 폈다. 영화에서 보던 감옥, 바로 그 감옥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충격적이어서 조사원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후 남성 거주인과 좀 더 대화를 시도했으나 매우 무기력하고 의사소통이 안 되어 끝내 인터뷰는 실패했다. 2층에 올라가 다른 분을 뵙고 싶었지만 그 역한 냄새를 다시 맡을 자신이 없어서 조사를 마무리했다.

 

오십 평생 가장 충격적이고 경악했던 곳이다. 우리와 좀 다른 성격, 환청, 환시, 망상이 있다고 감옥 같은 곳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말이 되는가? 증상이 있어서 긴급하게 입원해야 한다면 병원에 일시 입원하여 집중치료받으면 된다. 응급조치가 끝나면 사회로 돌아갈 수 있게 더 많은 지원을 해야지 어떻게 그렇게 가두어 놓고 있는가. 직원들은 그렇게 살지 않을 거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있어도 괜찮은 건가. 혹은, 정신장애인은 원래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본인이 그런 병에 걸리면 그런데서 살고 싶은가? 아니, 이런 데선 사람이 살면 안 된다.

 

우리는 왜 장애인을 그런 곳에 보낼까. 독거노인이 힘들게 혼자 살면 각종 봉사단체가 들어가서 집도 정리하고 반찬도 해주면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데, 왜 장애인은 혼자 살기 힘들다고 시설로 보낼까? 이런 시설의 시설장 대부분은 지역유지이다. 훌륭한 분으로 칭송받으며 상을 받기도 한다. 군수와 지역대표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인권침해의 주범들이 복지대표로 지역에서 돌아다니는 모습이라니. 그러나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제는 더 과격하게 탈시설을 주장해야 한다. 너무나 비참한 삶을 사는 정신장애인을 생각하면, 20대에 들어가 평생 거기서 살아야 할 젊은 발달장애인을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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