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여의도 이룸센터 지하에서는 유사한 주제의, 그러나 각기 다른 주장을 전하는 두 개의 토론회가 동시에 열렸다.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실시한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중증장애인거주시설 45개소와 정신요양시설 30개소에 거주하는 생활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 조사의 결과는 여전히 인권침해의 온상으로 남아있는 시설의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비자발적으로 입소했다고 밝힌 응답자가 중증장애인거주시설은 67.9%, 정신요양시설은 62.2%나 됐다. 그렇게 시설에 들어와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도 각각 58.1%와 65.4%나 됐다.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이런 시설의 현실을 보면서 연구진들은 ‘탈시설’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다른 하나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아래 시설협회)가 주최한 ‘다양한 주거지원 확대를 위한 거주시설 포럼’이었다. 이 포럼에서는 ‘탈시설’이 장애인복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까지 거론되는 흐름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윤덕찬 홍주원 원장은 한국의 거주시설 출발이 전쟁고아 구호와 재활에 방점이 찍혀있기는 했지만, 이후 장애인복지 패러다임이 변하면서 주·단기 보호시설 및 공동생활가정이 등장하고 점차 시설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체계로 전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거주시설도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시설=폐기대상’으로 보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이라는 게 윤 원장의 주장이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시설범죄 STOP! 범죄시설 원스트라이크 OUT!'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두 토론회가 같은 건물에서 같은 시간대에 열렸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지난 십여년 간 제도권 바깥의 장애계를 중심으로 성장해 온 탈시설운동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시·도의 ‘탈시설 5개년 계획’을 이끌어냈고, 결국 이를 정부의 국정과제로까지 올려놓았다. 인권위 조사결과는 이것이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시급한 과제임을 명백한 자료를 통해 입증해 보였다. 이러한 탈시설의 당위성을 시설협회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거주시설에도 나름의 발달사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시설=폐기대상’으로 보는 것은 시설이 가진 긍정적인 복지자원까지 폐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듯 보인다. 따라서 ‘탈시설’을 하나의 목표로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대형시설을 소규모화하면서 장애인의 대체주거를 다양화하는 방식으로 변모하도록 해, 그것이 자립생활에 맞는 방향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게 시설협회 주장의 요지다.
수십 년 간 한국의 장애인복지 전달체계는 거주시설 중심으로 짜여 왔다. 따라서 탈시설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거주시설 중심의 기존 복지자원을 어떻게 지역사회로 전환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설협회의 주장은 면밀한 토론이 필요한 부분이다.
시설이 운영하는 체험홈에서 벌어지는 '회전문 입소'
물론 시설협회의 주장은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닌데, 최근 들어 몇몇 시설을 중심으로 소규모 가정 형태의 거주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는 이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해 용역사업을 통해 <소규모 장애인복지시설 운영매뉴얼 개발 연구>를 진행한 바 있고, 시설협회는 지난해 12월 이런 대표적 사례들을 모아 공유하는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사례들을 보면 지역사회의 일반주택(체험홈)에 장애인을 거주케 하고 시설의 지원인력이 파견되어 거주인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도모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설이 직접 운영하는 체험홈을 탈시설의 한 유형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서울시 탈시설 5개년 계획’ 추진 과정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기존 탈시설 운동 단체들은 이것이 기존 시설의 반복이 될 거라며 ‘시설 운영 체험홈’을 서울시의 탈시설 목표 인원(600명) 산정에서 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일단 이렇게 접근해보자.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식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거주인의 자립생활 정착만 가능하다면 원칙적으로 시설이 운영하는 체험홈이라고 해서 배제해야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면서 지역사회의 다양한 연결망에 주체적으로 접근 가능한가 여부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는 시설이 가진 ‘이념’을 따지는 것을 잠시 접어두고 그들의 ‘실적’부터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따져보고자 비마이너는 2년 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서울시 장애인복지과가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집계한 장애인거주시설 운영 체험홈의 거주인 현황을 입수해 분석한 바 있다.(▷관련기사 : '체험홈이 탈시설로 가는 과정'이라던 서울시, 거짓말이었다) 해당 기간 265명의 시설 거주인들이 체험홈에 입주해 생활했고, 126명이 체험홈을 퇴소했다. 그런데 퇴소 인원 중 원래 거주하던 장애인거주시설로 간 인원은 65명, 다른 거주시설로 간 인원은 2명으로, 퇴소자 중 53.2%는 다시 시설로 돌아갔다. 반면 퇴소 인원 중 자립으로 볼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간 인원은 자립생활주택 19명, 완전 자립 11명으로, 23.8%에 그쳤다. 말하자면 체험홈을 중심으로 ‘회전문 입소’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여전히 장애인의 삶의 범위는 한 법인이 세워놓은 주거공간의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2011년부터 2016년 5월까지 서울시 체험홈 퇴소자 현황. 126명이 체험홈에서 퇴소했고 그 중 53.2%는 시설로 복귀했다. (자료 출처 : 서울시, 비마이너 재구성)
시설 입장에서는 “장애인의 자립능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재입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반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설로 복귀한다고 해서 자립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엄청나게 새로운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중증장애인이 비장애인의 기준에서 설정된 ‘정상화된 능력’에 도달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반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장애인 개인의 능력 향상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돌봄서비스, 소득보장, 자조활동 지원 등을 통해 이 사회가 ‘장애인을 지역사회에 통합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인복지와 관련된 절대다수의 자원이 거주시설에 몰려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의 능력’을 키울 최소한의 가능성이 억압당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설의 복지자원 독점 때문이다.
그럼에도 윤덕찬 원장은 시설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이유로 무연고자인 시설거주인의 존재를 들고 있다. 2016년 말 기준 시설거주인 2만6461명 중 무연고자는 7564명으로 28.7%에 달하는데, 이들에 대한 지원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탈시설을 강행하면 ‘부랑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그럴싸하지만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시설이 만들어질 초창기, 그러니까 한국전쟁 직후의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지지만, 전후복구가 완료되어 고도성장을 달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40여 년 가까이 되는 마당에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전쟁 직후의 시설 입소는 다소 불가피한 면이 있다 치더라도, 지금의 시설 입소는 사회가 장애인을 밀어낸 결과다. 연고자 있는 사람은 가족이 밀어냈고, 무연고자는 가족을 대리한 국가와 사회가 밀어냈다. 이런 주장은 좀 심하게 말하자면 무연고자들을 인질로 삼아 시설의 명맥을 유지하려는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사회복지법인의 '복지자원 독점 해체'가 우선이다
앞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제시했다.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윤 원장 또한 이 원칙을 수용하면서도 “장애인 당사자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한 급여방식과 같이 재가급여든 시설급여든 본인이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건 전제가 잘못됐다. 앞서 국가인권위 조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60% 이상의 시설거주인들이 비자발적 입소인데, 이제 와서 자기결정에 의해 시설급여를 선택하라?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열악한 상황에선 결국 시설급여를 강제적으로 선택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해결책은 거주시설의 복지자원 독점을 해체하는 것밖에는 없다. 물론 이 말은 거주시설과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장애인 복지 현장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거주시설 관계자 중에는 부도덕한 시설 운영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건전하게 운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순수하게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는 복지노동자도 있을 것이다. 건전한 사회복지 종사자로서 이들의 권리와 의무는 보장되어야 한다. 다만 전제가 있다. 사회복지법인은 설립 시 초기 투자된 재산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적자원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엄연한 공공재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들은 법인을 가지고 과도한 권리를 행사해 왔으며, 마치 자신의 사유재산처럼 다루는 일도 부지기수로 있었다.
그러니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공적 복지자원의 중간 전달자로 자신의 위치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마침 현 정부가 복지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사회서비스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의원 발의로 국회에 상정된 ‘사회서비스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사회서비스유관법률(장애인복지법 포함) 관련 규정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시설 운영 사업을 사회서비스원에 우선 위탁하도록 되어 있다. 기존 시설들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법인을 가지고 누렸던 과도한 권리행사(사유재산권 등)를 포기하고, 사회서비스원 산하의 준공무원과 같은 신분으로 역할 조정을 꾀하는 게 어떨까? 그렇게 된다면 복지자원의 전달자로서의 순기능도 유지하면서, 일부 부패한 시설운영자들로 인해 받아왔던 ‘비리의 온상’이라는 이미지도 털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의 거주형태 다양화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함께 이뤄져도 늦지 않다. 아파트에 살지 단독주택에 살지, 혼자 살지 가족 아니면 친구와 함께 살지, 그런 것은 어차피 당사자가 결정할 몫이다. 탈시설 정책과 복지서비스는 그들의 결정을 적절하게 지원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사적 집단이 이 과정을 독점해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회전문 입소’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간 사회복지법인이 필요 이상의 기득권을 누려왔다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자.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것이다. 거기서부터 ‘거주시설 이후의 장애인복지’ 시대를 논의하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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