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 역사에 휠체어리프트를 철거하고 승강기 설치를 요구하는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당사자 5명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서울 지하철 역사 5곳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며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18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 등과 서울교통공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휠체어리프트는 장애인의 목숨을 위협한다며, 서울 지하철 역사 내 휠체어 리프트를 모두 철거하고 승강기를 설치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이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한 5곳은 지하철 2, 5호선 영등포구청역사내 환승통로,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사내 환승구간, 지하철 1, 5호선 신길역사내 환승구간, 지하철 6호선 디지털 미디어시티역사내 이동구간, 지하철 6호선 구산역 이동구간이다. 이들 구간 5곳엔 모두 휠체어리프트만 있다. 휠체어리프트는 계단이나 급격한 경사로에 설치되어 있어 추락사고가 빈번하기에 장애인 단체들로부터 '장애인의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항상 받아왔다.
특히, 신길역은 이번 차별구제청구소송 시작점이 된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2017년 10월 20일 고(故) 한아무개 씨는 역사 내 휠체어 리프트에 탑승하기 위해 호출 버튼을 누르려 계단을 등졌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당시 서울교통공사 등은 “고 한아무개씨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지난 3월 15일 유족과 장애인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교통공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하며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 소송에서 판결을 끝까지 받아내고 신길역과 비슷한 곳에 대해 연차적으로 차별구제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등포구청역의 환승구간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수십 미터의 가파른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어 매우 위험하고, 호출 버튼의 위치가 계단 바로 앞에 있다. 이곳은 2001년 리프트가 정지 후 재작동하면서 이용자가 추락해 당사자가 청력 저하, 타박상 등 전치 7주 부상을 입은 장소다. 충무로역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 구간은 이 옆으로 걸어 내려가는 보행자들도 지나가기에 불편할 정도로 비좁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은 6호선을 이용하기 위한 이동구간 양방향에 휠체어리프트가 모두 설치돼 있다. 구산역의 경우, 개찰구에서 6호선을 이용하기 위해서 가파른 계단 아래로 이동해야 하는데, 이 구간엔 에스컬레이터나 승강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모든 이용객들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많은 이용객들의 불편한 시선을 이용자가 그대로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6호선을 이용하기 위한 이동구간에는 양방향 모두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돼 있다. (사진 제공 :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이번 소송에 원고로 참가한 휠체어 이용자 문애린 씨는 “최근 불광역에서 승강기가 고장 나 어쩔 수 없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 리프트마저도 중간에 공중에서 멈춰버려 사람들이 올 때까지 30분 동안 추운 곳에서 벌벌 떨어가면서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한 채 있었다”며 위험했던 순간에 대해 말했다. 문 씨는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언제 다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긴장하며 살고 있다. 더 이상 이렇게 다니고 싶지 않다. 휠체어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같은 마음일 것”이라며 “언제까지 장애인들은 이동하는데 있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김진영 법률사무소내일 변호사는 교통공사에게 승강기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송계약에 의해 서울교통공사는 승강기를 설치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장애를 이유로 이동 및 교통수단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교통약자법에는 휠체어리프트가 편의시설로서 부적합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고 이동편의시설의 구조 및 재질에 관한 세부기준 중 어디에도 휠체어리프트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한편, 인권위도 지하철 환승구간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편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승강기 등을 설치하라는 권고를 한 바 있다.
원고들의 소송대리인을 맡은 이태영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이번 소송에서 승강기 설치를 요구한 5곳은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제보받은 곳이다. 직접 가보니 각 역의 환승구간 및 이동구간은 경사가 가파르고 계단이 매우 깊어서 휠체어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다가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생명에 상당한 위험을 끼치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언급하며 “이번에는 5곳만 승강기 설치를 요구했지만 전국에 설치된 모든 휠체어리프트가 철거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송은 조정으로 끝내지 않고 ‘휠체어리프트는 정당한 편의시설이 아니므로 철거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원 판결을 받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차별구제소송은 처음이 아니다. 이미 3년 전에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종로3가역에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때도 이들은 ‘예산이 없다’고 답변했고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를 조건으로 하는 당사자간 조정으로 마무리 됐다”면서 “그러다 보니 현재 법원 판결로 ‘지하철에 설치된 휠체어리프트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법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장추련 등은 이 날 기자회견문에서 "신길역 사고를 지켜본 많은 장애인 당사자들은 더 이상 이처럼 위험한 리프트를 이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소송을 진행했다. 지하철은 누구나 이용하는 편리한 이동수단이지만 휠체어리프트가 계속 있는 한 장애인에게는 언제나 사고의 위험이 존재하고 급기야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이동권은 다른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하는 권리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교통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예산을 이유로 휠체어리프트를 방치해 온 국가와 관련기관에 법원이 그 책임과 의무를 확인시켜 달라"고 촉구했다.
한편, 신길역 휠체역 리프트 이용 사망사건과 관련한 소송의 1차 변론기일은 7월 6일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다. 현재 서울교통공사 등은 ‘추후에 쟁점을 검토하겠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한 상태다.
18일, 휠체어 이용 장애인 당사자 5명이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