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아바타'를 통해 한국어를 수어로 통역하는 시스템 개발 사업이 비판에 직면했다. 이 시스템이 '한국수어'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농인의 정보 접근권 보장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4일, 국가종합전자조달 사이트인 '나라장터'에 '한국수어 통번역시스템 구축' 사업 공고가 올라왔다. 사업을 발주하는 기관은 대전시 대덕구로, 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와있는 정보를 수어로 제공하는 '한국어-한국수어' 번역 서비스와 구청 민원창구에서 농인이 담당자와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한국어-한국수어' 통역 서비스 제공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통・번역은 의미를 가진 최소 단위인 '형태소'를 문장에서 추출한 후, '수어 데이타베이스'를 기반으로 한 3D아바타 수어 영상을 출력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대덕구는 이 사업에 3년간 최대 10억 7800여만 원의 예산을 투입할 예정이다. 구는 이번 사업을 통해 수어통역센터 통역사 3명에게 들어가는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효과를 밝혔다.
그러나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페이지에 이 사업을 중단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청원 페이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42820). 청원 제안자는 이 시스템이 농인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국수어'가 아니라 '수지 한국어(Signed Korean, 한국어대응수화)'를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이는 통・번역이 아니라 '한국어-한국어' 변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청원 제안자는 "한국수어는 한국어와는 다른 문법과 문장 구조를 가진 별도의 언어"라며 "그러나 수지 한국어(한국어대응수화)는 한국어를 수어 어휘를 이용해 표현한 것으로, 언어학적으로는 한국어"라고 지적했다.
이어 청원 제안자는 "이 사업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11억이 넘는 예산을 들여 3년 동안 '한국어를 한국어(수지 한국어)'로 변환하는 엉터리 시스템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며 "농인들은 한국어-한국수어 번역을 원하지, 한국어-한국어 변환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특히 청원 제안자는 "더욱이 (대덕구는) 시스템 구축의 기대효과로 수화통역센터 인건비 절감을 들고 있는데, 이는 시스템 개발 완료 후 대덕구 수화통역센터에 예산 지원을 줄이겠다는 의미"라며 "이런 엉터리 시스템으로 수화통역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무지몽매한 기대효과를 사업의 근거로 들고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홈페이지에 담긴 정보는 한국 농인의 공용어인 한국수어로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 개정을 해야 한다"라고 요구했다.
박미애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수어통역 활동가는 "이 사업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손'으로만 수어를 구현하면 된다는 발상 역시 수어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꼬집었다. 박 활동가는 "수어에서 얼굴 표정은 감정뿐만 아니라 관용표현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언어적 요소이기 때문에 의미 전달, 특히 민원창구에서처럼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경우 절대 빠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박 활동가는 "이미 전국 주민센터를 비롯한 공공기관에 영상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전화를 이용해 손말이음센터나 수화통역센터에 연결하면 되는데, 이것을 '아바타'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정말로 농인의 정보접근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농인의 언어인 '수어'를 가볍게 여기고 기술을 이용해 '편리하게' 인건비를 줄이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