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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

작성자 2018-05-29 최고관리자

조회 317

 

 

 

2018년 4월 19일 오체투지, 그날을 말하다
[서문] 12년만의 ‘기어가기 투쟁’, 그 날의 경험과 기억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어가는 신체가 어떻게 ‘싸우는 행위’가 되었는가
등록일 [ 2018년05월28일 20시41분 ]

1527509472_93402.jpg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 77명의 지체·뇌병변장애인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잠시 쉬고 있다. ⓒ최인기

 

2006년도에도 50여 명의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아스팔트를 기어간 적이 있다.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소속 장애인 활동가들은 2006년 4월 27일, 서울 한강대교 북단 4차선 중 3차선을 점거하고는 노들섬까지 약 500미터, 도보로 10분가량 되는 거리를 6시간 동안 기었다. 세 명의 중증장애인이 탈수와 탈진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사회가 ‘활동보조인’이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그때, 이들은 ‘활동보조제도화’를 요구하며 한강대교를 기었다. 이날의 투쟁은 장애운동사에서 활동보조제도화를 이뤄낸 역사적 투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로부터 12년 만에 이들은 또다시 아스팔트 바닥으로 내려왔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 77명의 지체·뇌병변장애인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또다시 기었다. 이들은 이를 ‘오체투지’라고 이름 지었다. 이 거리를 내비게이션에 검색하면 250미터, 도보 4분이라고 뜨나, 장애인들은 이 거리를 2시간 30분 동안 기었다. 장애인의 속도는 이 세계의 속도와 너무도 달랐다.

 

이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완전 폐지와 장애인 이동권·노동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장애계와 각종 민관협의체가 꾸려지고 그 안에서 여러 사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그야말로 ‘논의만’ 되고 있을 뿐이다. 장애계는 실질적 변화를 위한 예산 투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예산이 없다’는 정부의 태도로 논의는 계속 공회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고, 민관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그에 대한 투쟁 전략으로 ‘오체투지’를 택했다. 오체투지란 불교에서 올리는 큰 절로 양 무릎과 팔꿈치, 이마 등 신체의 다섯 부분이 땅에 닿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간혹 노동자들이 간절함을 표하기 위한 투쟁 전술로 오체투지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열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어 땅에 납작하게 엎드렸다가 일어난다. 장애인들 또한 이러한 오체투지를 하겠다고 했으나 사실 애초에 불가능했다. 이들은 장애로 신체의 다섯 부위가 땅에 다 닿도록 납작하게 엎드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었다. 앉아서 엉덩이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를 끄는 이도 있었고, 땅에 엎드려 팔꿈치로 자신의 몸을 이끄는 이도 있었다. 길 수조차 없는 이들은 다른 이들의 지원을 받아 ‘굴려서’ 나아갔다. 이 또한 그들 나름대로의 자기 신체 운용 방식이었다.

 

1527509504_31568.jpg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4월 19일, 77명의 지체·뇌병변장애인들이 광화문사거리에서 효자로 입구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최인기
1527509528_52289.jpg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 활동가들. ⓒ최인기
 

그렇게 서울의 심장, 차량이 통제된 광화문 사거리 아스팔트 바닥에 다양한 몸이 날 것 그대로 펼쳐졌다. 이들이 효자로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땅에 닿은 옷들은 해져 너덜너덜해졌다. 꽤나 오래, 열심히 기었다고 생각했으나 그 거리는 230미터 남짓했다. 그날 누군가는 “비루한 혁명가들”이라고 말하며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온 동료를 안았다.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기어가는 장애인은 ‘구걸하는 사람’이다. 검은색 고무로 하반신을 감싼 채, 혹은 자신의 장애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바구니를 내민다. 그런데 이날은 자신의 장애를 적나라하게 내보이며 기어가는 행위가 강력한 투쟁이 되었다. 이러한 신체적 행위가 어떻게 ‘구걸하는 행위’가 아닌 치열하게 싸우는 행위로 읽힐 수 있었단 말인가.

 

이들에겐 행위의 목적이 있었고 이것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전술이었다. 그러나 투쟁에 참여하기 전에 나의 신체를 공적 공간에 보여야 한다는 내적 갈등에 마주했는데, 그 주저함엔 장애가 있는 신체를 가진 사람으로서 살아온 차별의 역사가 딸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을 조직해냄으로써 타인을 조직할 수 있었다. 마침내 아스팔트 바닥을 기어가면서는 하수구 냄새가 생각보다 지독하다는 사실과 함께, 장애로 인해 제약되는 자신의 신체를 마주해야 했다. 그날 현장에서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장애인 활동가의 투쟁을 조력하며 그 싸움을 함께 만들어갔다. 이들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선동하고, 무릎보호대, 장갑 등 필요한 물품을 사러 오체투지하는 사람들 사이를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아스팔트 바닥에 쓸려 벌겋게 까진 상처를 치료했다. 그리고 그 곁엔 휠체어에 앉은 채 기어가는 동료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장애인 활동가들이 있었다. 이러한 집단적 행동은 자본의 시간을 멈추기 위한 노동자의 파업처럼, 마침내 서울 도심 한복판을 점거하고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시간성(4분)을 자신들의 시간(2시간 30분)으로 바꾸어내는 데 이른다. 
 
오체투지를 기획하고 참여한 이들은 그날의 현장을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고 있을까. 장애인 당사자들과 장애인 이용자를 ‘굴린’ 활동지원사, 오체투지를 지켜보았던 장애인 활동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로부터 한 달이 넘었으나, 아스팔트 바닥을 기며 긁힌 상처는 아직 낫지 않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여전히 답이 없다. 그러나 섣불리 결말지을 수 없는 긴 싸움이기에 이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한 편씩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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