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의 영토가 복지의 영토로
작년, 2017년 7월에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사업으로 남양주에 있는 한 중증장애인 시설을 조사했다. 이곳은 특이하게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사회복지법인을 만들어 시설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그곳을 통해 부모가 원하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이상을 엿볼 수 있었다. 시설 원장도 공채로 뽑고, 운영 전반에 부모의 욕구와 의사가 반영된다. 3층짜리 아파트 형 건물에 12개 유닛(unit)의 생활실이 있다. 한 유닛은 방 2, 거실 겸 간이주방 1, 욕실 겸 화장실 2, 세탁실 1로 구성되어 있고, 평균 6명이 거주한다. 그런 생활실이 12개 있는데, 2개씩 한 짝을 이뤄 일부가 통하게 했다. 생활재활교사가 두 생활실을 오가며 관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생활실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거주인을 보려는 것인지, 생활재활교사를 보려는 것인지 아마 둘 다인 듯하다. 어린이집이 떠올랐다. 급식시설도 좋고 주방도 깨끗했다. 주변 경관도 아름답고 공기도 좋다. 설립취지대로 “가정처럼 편안하게, 안락하게,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데 비해 거주인들의 입성도 좋고 개인 물품도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노트북을 가진 사람도 있는데 핸드폰을 가진 거주인은 한 명도 없었다. 핸드폰이 필수인 요즘 같은 시절에 부모한테 핸드폰을 사달라고 할 법도 한데, 아무도 없다. 부모가 사주지 않았을 것이다. 왜일까?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가족의 일상을 깨뜨리는 게 싫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산 속에 지은 뜻도 이해가 된다. 이 시설은 남양주 시내에서 자동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그야말로 구중 산 속에 있다. 그래서 지역사회와의 연계 프로그램을 갖기도 힘들다. 마음먹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아도 거주인들이 마음대로 찾아갈 마실은 없다. 군대가 생각났다.
사진출처 : pixabay.com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 알려진 혜영 씨도 이 시설 조사에 참여했다. 혜영 씨는 18년 동안 시설에서 생활하던 동생 혜정 씨를 데리고 나와 함께 살고 있다. 혜영 씨는 발달장애를 가진 혜정 씨와 ‘시설 밖 생존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했는데, 혜영 씨가 시설 조사를 하는 동안 혜정 씨는 근처 민박집에서 카메라 감독과 함께 있었다. 시설 조사 후 총평 시간에 혜영 씨가 말했다. “아마 옛날에 우리 엄마가 이곳을 봤다면 당장 혜정이를 데려 왔을 것이다. 확실히 부모의 욕구가 완벽하게 반영된 곳이다. 그런데 나는 싫다. 예전에 혜정이가 살던 대형 시설보다 이곳이 난 더 싫다. 거기선 학대를 당하기도 했지만 거주인들 사이에 인간관계가 있었다. 자기 친구라며 소개_시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그런 인간관계가 여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생활재활교사’가 거주인들 간의 관계를 끊어버리기 때문이다. 24시간 안전한 생활을 책임지는 생활재활교사는 한 시도 빈틈없이 생활실을 일망 감시한다. 누가 사고를 당하지는 않나, 누가 사고를 일으키지는 않나. 생활재활교사의 밀착된 감시 속에서 거주인들 간의 직접적인 인간관계는 끊어지고 생활재활교사를 매개로 한 상호 감시의 관계만 남았다. 거주인들 간에 오가는 말의 대부분은 “그거 하면 안 돼!” 같은 생활재활교사에게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은 또한 CCTV로 생활재활교사를 감시하는 부모의 말이기도 하다. “그거 하면 안 돼”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리 속에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 좋은 시설을 왜 하필 산 속에 지었을까? 대도시는 고사하고 남양주 시내에라도 지으면 지역 내 복지관 이용하기도 좋고, 봉사 단체들 찾아오기도 좋지 않나? 매일 매일 동네 산책도 하고, 시장도 가고, 극장도 가고, 동네 사람들하고 인사도 하고 그러면 좋지 않나? 장애인자립생활센터나 장애인 야학, 발달장애인 자조모임과 연계 프로그램을 가지면 더 좋고. 그런데 부모들이 그걸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가 지역사회에 횡행하면서 손가락질 받는 것도 싫고, 사고를 당하는 것도 싫고, 사고를 일으키는 건 더 싫다. 장애인 자조모임과 엮여 탈시설 바람이라도 들면 골치 아파진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사는 게 좋다. 보고 싶을 때 찾아가서 보고 외출도 하고, 가끔 외박도 하는 게 좋다. 그게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길이다. 부모회가 산 속에 ‘안락한 감옥’ 같은 시설을 지은 속뜻이 아프게 전해졌다.
‘안락한 감옥’이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일본의 많은 가난한 노인들이 감옥을 복지시설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굶어죽느니 차라리 감옥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노인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범죄 백서’에 의하면 형사 범죄 검거 인원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5년 전에 비해 약 5.2배 증가했다고 한다. 2016년 교도소에 수감된 노인은 2,498명으로 대부분 절도 같은 경범죄자로, 10년 전에 비해 4배 정도 증가했다. 재범률도 상승하고 있어 수감자 전체의 30%에 육박한다고 보고했다. 인구 고령화가 워낙 심하고 우리처럼 가족부양에 의존해 왔으며, 공적연금은 부족하고 노인복지정책은 미비하여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처우가 개선된 교도소를 복지시설로 선택하는 것이다. 감옥에는 동료들도 있어 덜 외롭고, 삼시세끼 꼬박 식사가 제공어 최소한 ‘고독사’는 면하겠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현상은 일본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고, 한국에서는 아직 보고된 바 없지만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상윤이 사건’처럼 발달장애인 범죄자에게 치료 감호소가 거주시설로 사용되고, 가난한 노인에게 감옥이 거주시설로 사용되는 것에서 공히 자유의 박탈(감옥)이 복지(시설)로 전환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런 용도변경이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보호’에 대한 자발적 요구에 의해 일어나는 점도 같다. 발달장애인의 경우 부모의 요구에 의해, 빈곤 노인은 가족이나 본인의 요구에 의해 안락한 감옥 같은 보호시설로 간다. 여기에 아동청소년보호시설까지 포함시켜야 할 듯하다. 오늘날 시설현황을 보면, 신고시설 중 가장 많은 것은 1위 아동청소년시설(271), 2위 노인시설(296), 3위 장애인시설(200)이다. 장애인시설 거주인 중 발달장애인이 절대적으로 많은 걸 감안하면, 오늘날 시설의 필요는 확실히 ‘보호’에 있다.
발달장애인과 빈곤노인, 탈가정 청소년에게 공통된 보호 장치는 ‘시설’만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법적 보호자, 후견인을 필요로 하며 후견인의 의사결정에 의탁해야 한다는 점에서 같은 처지에 있다. 탈가정 청소년에게 법적 대리인은 또 다른 굴레이다. 많은 탈가정 청소년들이 스스로 노동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서 마치 미등록 이주노동자처럼 법외 노동을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악용하는 고용주들의 초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 시민권을 부여하는 나이는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다르며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탈가정 청소년의 ‘독립’을 위한 시민권 논의가 시급하다.
부모의 친권이 박탈된 청소년은 법원이 미성년후견인을 지정해준다. 미성년이라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성년이 된 발달장애인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도 같은 이유로 가정법원이 후견인을 지정해준다. 성년후견인 제도가 그것이다. 2013년 7월 민법이 개정됨에 따라 금치산자 제도가 성년후견인 제도로 탈바꿈했다. 금치산자 제도는 법률행위의 자격 박탈(금치산)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성년후견인 제도는 금치산자 선고에 따른 후견인 지정에 초점을 맞췄을 뿐 본질은 같다. 많은 영화와 소설을 통해 악명과 치욕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그래서 폐지 압박과 사문화의 길을 걷던 금치산자 제도를 성년후견인 제도로 부활시킨 단체의 중심에 장애인 부모 단체와 노인단체가 있다.
법무부의 성년후견제 홍보 이미지.
그 결과 금치산자 제도는 이제 질환, 장애, 고령 등으로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걸 이용해서 사기를 치거나 재산을 탕진케 하는 나쁜 사람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제도, 핸드폰 구매나 동사무소, 병원 업무 등 신상에 관한 행정 처리를 대리해 주는 제도, 웬만큼 똑똑하지 않으면 코 베이기 십상인 복잡하고 위험한 자본주의 행정 사회에서 합리적 결정을 대리해 주는 법률 서비스 제도, 성년후견인 제도로 탈바꿈한 것이다. 금치산자 선고라는 자격박탈 제도가 성년후견인 선임이라는 보호제도로 탈바꿈한 이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세부적인 정책 평가 이전에 그것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법에 의한 자격박탈이 부정적 뉘앙스를 벗고 인신 보호라는 긍정적 뉘앙스로 변화되는 흐름 말이다. 그 흐름 속에서 복지국가와 생명권력이 탄생했다.
감옥은 원래 구빈원이었다
이 흐름의 시작점에 감옥이 있다. 푸코의 ‘감옥정보그룹’이 던졌던 물음, 감옥이란 뭘까? 거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상식적인 답, 감옥은 죄 진 사람 처벌하는 곳이다. 감옥은 근대 사법의 형벌기구이다. 그런데 감옥에 가두고 노역을 시키는 것(징역)이 왜 처벌이지? 일정 기간 자유를 빼앗고, 싫은 일 하게 한다고? 그걸로 충분한 걸까? 근대 사법제도가 감옥을 형벌기관으로 선택한 것은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 합목적적인 것도 아니었다. 가두고 일시키는 것이 주된 형벌로 자리 잡기 전, 근대 이전 사법제도에서 처벌의 근간은 신체형이다. 죄인의 신체에 정교하게 고통을 과하는 것, 그것도 공개된 장소의 볼거리(spectacle)로서. 1757년 루이 15세를 시해하려다 체포된 다미엥에게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상기한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팔, 넙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 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 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 버린다.1)
프랑스 혁명 전까지 서구에서 모든 형벌은 신체형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신체형에는 군주의 권력을 죄인의 신체에 가해지는 고통으로 가시화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본보기를 보이겠다거나 공포를 유발하겠다는 것은 부차적이다. 이 공개형의 스펙터클에서 상연되는 것은 교육 극장이 아니라 군주의 힘(권력)과 그에 도전한 죄수의 힘(인내력) 사이의 전쟁이다. 이 공개처형의 목적은 죽음을 가하는 게 아니라 범죄행위에 상응하는 양과 질의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고문은 형벌 이전의 소송절차에도 있다. 문서본위, 비밀유지, 증거의 양적 계산과 함께 고문은 전통적인 소송절차의 한 요소이다. 고문의 목적은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다. 소송절차와 형벌절차에 연속된 고문과 자백은 군주의 힘이 승리했음을 죄인의 입을 통해 만천하에 알리는 스펙터클의 요소이다. 모든 전쟁이 그렇듯이 이 의지의 전쟁에도 패배의 위험이 있다. 죄인이 자백하지 않거나 군주권력의 보조 집행자로 초대된 인민들이 돌변해서 형리를 향해, 군주권력을 향해 돌멩이를 던질 위험, 인민봉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18세기 들어와 법률학자들을 중심으로 공개처형에 대한 비판이 일어났다. 베카리아(1738~1794)를 비롯한 형벌 개혁론자들이 제시한 처벌 원리는 첫째, 양의 최소화 법칙, 범죄는 이익 때문에 발생하므로 징벌은 범죄의 기대이익보다 조금 큰 손해를 부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둘째, 관념성 충족의 법칙, 범죄의 동기는 이익에 대한 기대감이므로 처벌의 핵심은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괴로움, 불쾌감, 불편함에 대한 관념 표상이므로, 처벌은 신체를 대상으로 할 필요가 없고 표상을 겨냥하면 된다. 셋째, 측면 효과의 법칙, 형벌은 범법행위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교육적 효과를 거두어야 한다. 넷째, 완벽한 확실성의 법칙,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여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러기 위해 경찰조직을 대폭 확장해야 한다. 다섯째, 공평한 진실의 법칙, 고문의 이용, 자백의 강요 대신 반박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의 토대 위에 범죄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여섯째, 최상의 특성화 법칙, 범죄의 종류에 대한 세밀하고 명료한 분류를 추구하고 그것을 징벌과 대응시키기 위해 범죄자의 성격이나 범행동기에 대한 심리학적 관심이 필요하다. 범법 ‘행위’대신 범죄자의 범죄 소인이 형벌의 관여대상으로 부각된 것이다.
계몽주의 이데올로그(idéologue, 관념학파)가 수립한 이 형벌 원리는 범죄를 생각할 때 곧바로 처벌의 고통이 머리에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와 처벌 사이의 관계는 최대한 직접적이어야 한다. 가령, 공적인 자유를 남용한 자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해야 하고, 법의 혜택과 공직의 특권을 남용한 자는 그 시민권을 빼앗아야 할 것이며, 독직이나 고리대금에 대해서는 벌과금을, 절도에 대해선 재산 몰수를, 명예 훼손에 대해서는 공개사과, 살인에 대해선 사형, 방화에 대해선 화형, 독살자에 대해선 사약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신체형을 지배하던 상징적 대응관계와 비슷해 보이지만 이것은 보복의 대칭성이 아니라 교육학적으로 기호의 내용과 기호 사이에 투명한 관계를 수립하는 것이다. 형벌은 범죄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는 원동력을 제거해야 한다. 가령, 걸인은 감옥에 가둘 게 아니라 강제로 일을 시켜야 하며, 나쁜 정열에는 좋은 습관을, 광신자에게는 신체적 고통이 아니라 그 교만함을 짓부술 공개적 수치를 부과해야 한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 특히 깨어있는 시민과 정의로운 사람들이 원하는 사법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개혁론자들의 주장은 채택되지 않았다. 1810년 형법전은 사형과 벌금형 사이 광범위한 처별 영역을 오직 징역형으로 채웠다. 국민의회에는 “그래서 조국을 배반했을 경우에도 감금되고, 아버지를 살해했을 경우에도 감금된다. 상상할 수 있는 일체의 범죄는 완전히 획일적인 방식으로 처벌된다. 마치 어떤 병일지라도 똑같이 치료하는 의사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불만을 제기한 의원들이 많았다.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은 원래 형벌기구가 아니었다. 중세시대에도 지하감옥, 첨탑감옥이 있긴 했지만 지엽적이었고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신체형의 부속 기구였을 뿐이다. 감옥은 원래 구빈원처럼 수용자에게 노역을 가하고 교정시키는 시설이었다. 푸코는 이런 구빈원형 감옥이 근대 감옥의 기원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1696년에 개설된 암스테르담의 라스푸이(Rasphuis)라는 감옥이 있다. 이곳은 걸인이나 미성년 범죄자를 수용하는 기관으로, 형기는 수감자의 개선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은 의무이고 공동 작업으로 수행되며, 완료된 일에 대해서는 수당을 준다. 엄격한 일과시간, 체계적인 금지나 의무의 조항들, 빈틈없는 감시, 격려, 종교적인 독서 등 ‘선으로 이끌고 악을 멀리하도록’ 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수감자들의 일상을 통제했다.3)
강(Gand)의 감옥은 특히 경제적 필요성 속에서 노동을 부과했다. 무위도식의 생활이 대다수 범죄의 원인이라는 판단 하에서 노동을 통해 질서를 습득하고 급료에 대한 욕망을 갖게 했다. 영국의 모형은 노동 원칙에 덧붙여 독방을 교정의 주된 조건으로 삼았다. 수용자들을 모아 놓으면 공갈이나 공모의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형자가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 양심 속에서 선의 목소리를 재발견하게 하려면 독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감옥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필라델피아 모델이다. 1790년에 창설된 월너트 스트리트(Walnut Street) 감옥은 작업장에서의 강제노동, 계획적인 일과 시간, 노동에 따른 급료지불을 교정 원칙으로 삼았다. 감옥 내 생활은 계속되는 감시 아래 시간표에 정해진 대로 바둑판의 눈금처럼 구획 정리되어 있다. 하루의 일과는 시간대별로 배분되고 활동 내용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의무와 금지의 규칙들이 촘촘히 부과되어 있다.4) 단순히 가두는 게 목적이 아니라 집요한 노력과 규율로 사람을 개조시키는 교정시설(réformatoire)인 것이다.
근대 사법이 형벌 기구로 채택한 감옥은 이런 교정시설이다. 18세기 개혁론자들이 자신의 사법원리와 어긋나는 이 교정시설을 형벌시설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감옥이 줄 수 있는 ‘자유의 박탈’을 통해 ‘명백한 논리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의 상실(감금)은 모든 이에게 똑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점에서 ‘평등’의 원칙에 부합한다. 게다가 시간의 변수에 따라 형벌을 정확히 수량화할 수 있고 수형자의 시간을 빼앗음으로써 범죄가 사회전체에 손해를 끼쳤다는 관념을 구체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범죄와 형기 사이의 수량적 등가관계를 통해 형벌의 경제적, 도덕적 논리를 만들어낼 수 있고 감옥에 가두고 교정하고 순종케 만듦으로써 사회에 유익한 개인을 제공한다는 합리성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감옥이 근대 사법제도의 형벌 장치로 채택되었다.
감옥의 규율장치와 통치권력
그럼에도 감옥 안에서 수감자들에게 작용하는 권력은 사법 권력이 아니다. 그것은 처벌하려는 힘의 의지가 아니라, 지도하고 양성하려는 힘의 의지이다. 근대 감옥의 기원이 구빈원이었다는 점은 새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17세기 유럽 전역에서 이뤄진 구빈원 수용 정책은 ‘통치’(police)의 문제였다고 말한다.5) 17세기 유럽에서 ‘폴리스’란 19세기 이래 오늘날과 같이 범법자를 때려잡는 사법적 억압 기구를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다. 원래 ‘폴리스’란 고대 그리스에서 ‘정치공동체’(도시국가), 시민들이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합의하는 ‘활동’ 내지 그런 활동이 이뤄지는 ‘장소’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들어와 군주의 통치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군주의 통치? 서구에서 군주는 원래 통치하는 자가 아니라 ‘군림’하는 자였다. 그런 생각의 완성판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13)이다.6) 백성 위에 군림하는 자로서 군주가 안팎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주권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처세술을 적은 이 책은 당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 반-마키아벨리즘 속에서 군주는 군림하는(régner) 자가 아니라 통치하는(gouverner) 자라는 정치론이 확산되었다.
16세기 전까지 ‘통치’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이끌다’ ‘길을 따라 가(게 하)다’, ‘생계를 꾸리다(식량을 제공하다)’, ‘누군가를 인도하다’, ‘영혼을 지도하다’, ‘식이요법을 부과하다’, ‘품행을 지도하다’, ‘말을 나누다’, ‘성교를 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던 ‘통치’가 16세기에 와서 정치적인 의미를 띄게 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맞서 군주의 통치를 설파한 대표적인 책이 기욤 드 라 페리에르의 『정치의 거울』이다. 라 페리에르는 그 책에서 “통치란 목적에 편리하게 이를 수 있도록 정리된 사물들의 올바른 배열”7)이라고 정의했다. 통치와 연관되는 사물은 부, 자원, 생존수단, 기후, 관개 등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연관된 요소들, 관습, 습관, 행동, 사고방식 등 올바른 삶에 관련된 요소들, 기근이나 전염병, 죽음, 사고, 불행 등 행복한 삶을 위해 극복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이런 사물들에 올바른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폴리스’이다. 17세기 ‘구빈원’이 ‘폴리스’의 문제였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군주의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 것, 즉 ‘폴리스’의 차원에서 구빈원은 무질서하게 돌아다니며 무위도식하는 걸인, 부랑인, 광인, 무질서한 행동을 일삼는 방탕아, 비행자, 무질서를 종용하는 자유사상가와 종교 이단자들을 한꺼번에 몰아 수용했다. 그리고 노동이야말로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 활동이라는 생각으로 구빈원은 수용인의 몸과 영혼에 질서를 재수립하기 위해 노동을 의무로 부과했다.
하지만 구빈원의 ‘통치’는 구체성과 실속이 없었다. 수용자의 몸과 영혼에 질서를 부여하는 구체적인 통치 전략과 테크놀로지가 없었던 것이다. 16세기에 등장한 ‘통치 권력’은 18세기 중반까지 구체적 전술과 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는 첫째, 30년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황폐화, 농민과 도시인의 반란, 재정위기 등 17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큰 위기 때문이다. 둘째, 중상주의의 득세 속에서 군주권에 대한 강조 때문이다. 물론 중상주의는 라 페리에르가 말한 국가이성(폴리스적 통치)의 실천을 정당화했지만 그 목적이 군주권의 강화였다는 점에서 주권 권력에 속박되어 있었다. 지나치게 거대하고 추상적이고 완고한 군주권의 문제의식 속에 통치 기술의 발전이 속박된 것이다. 17세기 내내 군주들을 괴롭힌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 긴장으로부터 벗어나 인구와 산업이 팽창하고 화폐 유통과 농업생산이 증가한 18세기에 와서야 다양한 영역에서 통치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영역이 ‘훈육’, 혹은 ‘규율’로 번역되는 ‘discipline’의 영역이다. discipline이란 dis(완전히)와 cip(잡다)의 합성어로 ‘아래에 완전히 잡아 두다’는 뜻이다. 이 단어가 예수의 ‘제자’를 가리키는데 사용되기도 한 것처럼 ‘규율’은 예수의 제자를 양성하는 수도원의 엄격한 수련 시스템에서 비롯했다. 그것이 18세기부터 감옥, 학교, 군대, 공장의 운영 원리로 확대 전용된 것이다. 중세 수도원의 규율과 근대 통치 기관들의 규율은 공통적으로 노동을 중심으로 엄격한 일과표와 세밀한 상벌 규칙을 부과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함양하며 영혼의 개조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수도원의 규율이 속세의 포기(구원)와 자기의 포기(금욕)를 전략적 목표로 삼는 데 반해 근대의 규율은 효용성의 증대와 신체 역량의 강화를 전략적 목표로 삼는다. 근대의 규율은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할수록 더욱 신체를 순종적으로 만드는, 복종하면 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되는 그런 관계의 성립을 지향한다.8)
프랑스 혁명 이후 규율 시스템은 인민이 주권자인 국가가 인민을 통치하는 기술 장치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규율 시스템은 군대를 제외하고는 그 원형을 찾을 수 없이 변질되었다. 감옥, 공장, 학교에서 통제 목적의 규율은 볼 수 있지만 규율을 통한 역량 증대(교정, 효율성, 교육)는 기대하지 않는다. 감옥은 처벌에 대한 강박 때문에, 공장과 학교는 자유에 대한 욕구 때문에 규율의 생산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날 감옥은 교정보다는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목적으로 한다. 발달장애인 시설도 마찬가지다. 발달장애인 시설도 원래 정상화를 위한 훈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다. 점차 훈육이 포기되고 텅빈 규율장치는 안전 통제 장치로 사용된다. 훈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하지만 처벌 기구는 아니라는 점에서 19세기의 발달장애인 시설은 ‘학교’의 형태로 존재했다. 발달장애인 시설은 원래 학교와 본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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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1994, 23쪽.
2) 『감시와 처벌』, 178쪽.
3) 『감시와 처벌』, 184쪽.
4) 『감시와 처벌』, 189쪽.
5) 미셀 푸코, 이규현 역,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141쪽.
6) 미셀 푸코, 오트르망 역, 『안전, 인구, 영토』, 난장, 2011, 103쪽. 19세기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새로운 맥락 속에서 새롭게 해석되긴 했지만, 푸코는 “마키아벨리가 정치 사상의 근대를 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마키아벨리는 어떤 시대의 종말을, 그도 아니라면 군주와 그 영토의 안녕이 문제가 됐던 시기의 정점을 표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7) 『안전, 인구, 영토』, 146쪽.
8) 『감시와 처벌』, 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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