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하고 있는 양영희(왼쪽), 박경석(오른쪽) 3대적폐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80년 광주에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이,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한 장애인단체 행사 날을 그대로 가져와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만들었습니다. 군부정권의 시혜와 동정으로 치장한 장애인의 날, 우리에게는 너무나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날입니다. 그 유물이 2018년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을 시설에 처박아놓고, 그걸 사랑이고 복지라 말하는 세상에 맞서 우리가 2002년부터 4월 20일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정하고 싸워왔던 역사를 세상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박경석 3대적폐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맞이하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정부가 달라지고 그만큼 세상도 달라졌다고 모두 기대가 높아졌지만, 장애인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직접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를 선언했음에도 이를 위한 충분한 예산 마련은 지체되고 있고, 박 장관은 오히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1박2일 수용시설 체험을 했다.
20일 오후 1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 주최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투쟁결의대회에선 이에 대해 분노하며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로 가득찼다.
전날 77명 장애인의 오체투지를 앞세워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한 420공투단은, 청와대 앞에서 노숙농성을 한 뒤 20일 아침 다시 마로니에공원으로 와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주요 요구안으로 △부자 증세로 복지 예산 확충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예산 확보를 위한 대통령과의 직접 대화를 내걸었으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수용시설 폐지 등 3대 적폐 폐지 요구안과 함께 △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활동지원권리보장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 도입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 등을 촉구했다.
박경석 3대적폐 폐지 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처럼 느껴졌지만, 1842일에 걸친 광화문 지하농성 끝에 정부가 직접 대화에 나서는 진전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복지부 장관은 요구안을 들어주고 싶지만 기재부 눈치만 보고 있고, 고용노동부 장관은 장애인 공공일자리 1만 개 요구하니까 ‘미국 대통령이 와야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을 한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차별받았던 밑바닥 국민들을 만나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중가수 연영석 씨의 공연이 진행중인 가운데, 흥에 겨운 참가자들이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고 있다.
민중가수 연영석 씨의 공연이 진행중인 가운데, 흥에 겨운 참가자들이 무대로 올라와 춤을 추고 있다.
여러 연대 단위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신지예 서울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녹색당의 슬로건은 ‘눈부시게 평등한 서울’이다. 하지만 평등은 선언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복지부는 앞으로 한해 100명씩 탈시설을 시키겠다고 하는데, 탈시설을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함께 거리의 정치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강동진 사회변혁노동자당 공동대표는 “장애인 의무고용 비율 3%를 지키는 정부 부처가 하나도 없다. 정부가 지키지 않으면서 민간 기업이 지키라고 할 수 있겠나”라며 “복지부 장관이 1박2일 시설체험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전시행정을 하기 전에 자기 부처에 장애인들이 얼마나 고용되어 있는지부터 살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선거연령 인하를 요구하는 청소년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국회 앞에서 선거연령 인하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도 지지의 목소리를 보탰다. 밀루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는 “우리 농성장 앞에서 어떤 분들은 ‘어린놈들이 투표로 세상을 바꾼다니, 돌머리로 뭘 바꿀 건데? 너희 돌머리나 바꿔라’라고 조롱하신다”면서 “이 집회에 앞서 열린 피플퍼스트 집회에서 ‘우리도 이해할 수 있는 선거 공보물을 제작해달라’고 요구한 것처럼, 우리의 참정권을 뺏을 게 아니라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정부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하여 청소년도 함께하겠다. 청소년과 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해 함께 투쟁하자”고 밝혔다.
420공투단은 투쟁결의문을 통해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을 앞두고 있지만, ‘일자리 81만 개 창출’ 공약 속에 장애인은 없고, ‘치매 국가책임제’는 있지만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는 없다. ‘아동수당’이 확대됐지만 ‘장애인연금’은 제자리”라며 “촛불정부라고 문재인 정부 스스로 자임한다면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은 3대 적폐 완전 폐지를 위한 예산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그것이 2008년 한국 정부도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완전한 이행이며, 201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장애계 3대 적폐 폐지 요구안을 들고 있는 사람들
420장애인차별철폐결의대회를 마치고 모두 단상 쪽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