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참가자가 발달장애인이 직접 만든 쉬운 투표용지판을 들고 있다. 현재 투표용지들은 후보자 사진이 없고 도장을 찍는 칸이 좁아 도장이 칸 밖으로 삐져 나가기 일쑤다.
“저는 선거를 한 번 해봤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 탓에 투표 방법 등을 몰라서 대충 찍고 나왔습니다. 저와 같이 발달장애인도 투표할 수 있도록 위치 안내판, 투표방법 등을 쉽게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찍으라는 사람 말고 내가 투표하고 싶은 사람을 찍게 해주세요. 저한테 잘하는 사람을 찍고 싶습니다.” (고영철 한국피플퍼스트 인천위원장)
6·13 전국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19일,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모임인 한국피플퍼스트가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각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가 쉬운 투표용지, 쉬운 공보물을 제공해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모임인 피플퍼스트가 쉬운 투표용지, 쉬운 공보물 제작을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정당들에게 요구 하고 있다.
한국은 발달장애인이 쉽게 투표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의제공이 되어 있지 않다. 투표용지가 글자로만 되어 있어 글을 읽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은 투표하기 어렵고, 선거공보물도 어려운 말로만 되어 있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은 참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기 일쑤다. 구본형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위원장은 “선거가 돌아올 때마다 가슴이 막막하다.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보들이 7~8명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알 수도 없고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글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선거에 참여하고 싶지만 정당 이름 등이 어려워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알려주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또한 매번 투표소 위치를 알려주는 정보가 어려워 길을 헤맸다. 버스를 타서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친절한 안내가 필요하다”며 상세한 정보 제공을 요구했다.
구본형 한국피플퍼스트 서울위원장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하라!'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해외에서는 발달장애인 등 읽기의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후보 사진과 정당 로고가 들어간 투표용지, 쉬운 말과 그림으로 표현한 쉬운 선거 공보물 등을 제작하고 있다. 이에 피플퍼스트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각 정당과 선관위에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그림과 쉬운 글로 제작된 선거 공보물 △선거 과정과 내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지역 설명회 개최 △공적 조력인 배치를 통한 비밀 투표 보장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정당 로고와 후보자 사진 등이 들어간 그림투표용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대범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참정권 투쟁 담당자는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요구를 2년 전부터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장애인은 선거에 참여할 권리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시민, 유권자로 보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정당과 선관위의 관심을 촉구했다.
또한 그는 “법 개정이 아니어도 선관위 규칙을 변경하면 쉽게 그림투표 용지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관위는 공직선거법 핑계만 댔다. 국회와 공직선거법을 운운하며 그림투표 용지를 만들지 않은 것은 우리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난다”면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위해 선관위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각 정당들이 반드시 쉬운 공보물을 만들어서 배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회견 후, 이들은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원내 정당을 돌며 요구안과 함께 발달장애인이 만든 ‘쉬운 선거공보물’을 각 정당에 전달했다.
조화영씨가 '발달장애인이 주인인 자조모임을 많이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쉬운 선거 공보물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