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장애운동을 이끌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오는 27일, ‘대항로 파티’를 연다. 장소는 얼마 전 이사한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이다. 대학로를 ‘대항로’로 칭하면서 이들은 “진보적 장애인 인권운동의 새로운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월세 낼 돈이 없어 ‘천막 사무실’ 생활을 했던 이들이 어떻게 서울의 중심가를 점유하게 된 걸까.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1박2일 집중결의대회가 시작됐던 지난 19일, 광화문에서 박옥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무총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 대학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과 탈시설 투쟁이 시작된 곳
99년 6월 28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계단 벽면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이동하던 이규식(당시 31세, 뇌병변장애 1급)이 추락했다. 그가 학생으로 있던 노들장애인야학은 서울시지하철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500만 원을 배상받는다. 이후 혜화역엔 경사형 리프트가 철거되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 당시 싸움을 동력으로, 노들야학은 2001년 발생한 오이도역 추락사고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주체로 나선다. 현재 혜화역 2번 출구 앞엔 “장애인 이동권 요구 현장 - 1999.6.28 혜화역 장애인 휠체어 추락사고 이후, 여기서 이동권을 외치다”라고 적힌 동판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이규식은 현재 탈시설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09년 6월 4일. 경기 김포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살던 중증장애인 8명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 살고 싶다”며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쳤다. 짧게는 6년, 길게는 28년간 장애인수용시설에서 살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시설에서 갖고 나온 냉장고, 장롱 등 몇 가지 단출한 살림살이를 마로니에공원 한쪽에 쌓아놓고 62일의 농성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마침내 탈시설 정착금, 자립생활주택 등의 지원을 서울시로부터 약속받는다. 탈시설-자립생활 투쟁의 ‘시작’으로 기억되는 ‘마로니에 8인’ 투쟁이다.
진보적 장애운동을 이끌어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대항로’에 입주한 활동가들이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있는 사무실에서 집회 때 사용하는 피켓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기존에 없던 ‘이동권’이란 단어를 만들어냈고, 탈시설은 시설 수용을 장애인 복지라고 여기던 장애 복지 패러다임에 균열을 냈다.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은 장애운동의 커다란 두 물줄기다. 이 투쟁을 이끌어온 이들이 ‘진보적 장애운동’이라는 기치를 내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다. 전장연은 장애인이동권연대(장애인이동권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를 계승한 단체로, 2007년 정식 출범했다.
지난 시간, 이들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버스를 점거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인권위를 점거하고, 광화문 지하차도를 점거했다. 그 덕분에 지난 시간, 장애인의 현실은 한 뼘 정도 나아졌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고, 활동지원서비스가 제도화됐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 교육권을 ‘통합교육’ 차원에서 이야기하게 됐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며 5년간의 농성 끝에 국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으며, 이제 정부도, 지자체도 ‘탈시설’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전장연은 그 스스로 정주할 안정된 사무공간을 갖지 못했다. 서울 사직동(2007~2010.5), 당산동(2010.6~2016.10), 불광동(2016.10~2018.2)을 흐르며 사무실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지난 3월, 마침내 대학로에 둥지를 틀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길 25. ‘마로니에 8인’이 천막을 쳤던 바로 그 마로니에공원 뒤편 건물 5층이다. 장애운동의 물꼬를 튼 이 공간을 장애인권운동이 나아갈 큰(大) ‘항로’이자 불의에 대항하는 ‘대항’의 길(路)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들은 ‘대항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난해 7월, 박옥순 활동가는 전장연 투쟁 과정에서 부과된 벌금에 대해 “부당한 재판 결과를 이행할 수 없다”며 자진 노역 투쟁을 했다. 7일간의 노역 투쟁 후, 박옥순 활동가가 서울구치소 내 반인권 처우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 ‘선을 넘는 투쟁’으로 장애인 현실 좋아졌지만, 내부는 늘 ‘벌금 폭탄’
지난 10여 년, 전장연이 이끌어온 장애운동의 성과는 장애인의 현실을 실질적으로 변화시켰으나 조직 내부는 늘 열악했다. 이는 전장연의 ‘과격한’ 투쟁 방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천만 원의 벌금과 관련 있다. 이들은 폴리스라인을 전동휠체어로 밀어버리고, 거리낌 없이 도로를 막아선다. 이들은 때로 휠체어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며 싸우기도 한다. 이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낙인찍힌 신체를 그대로 사회에 내보이며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는 그 순간, 장애인의 신체는 이 세계에 ‘싸움을 거는 신체’로 낯설게 드러난다.
그렇게 2010년 이후 장애등급심사센터 점거 농성, 고 김주영 동지 노제 등으로 발생한 벌금과 손해배상 금액만 6845만 원(2017년 7월 기준). 재판이 계속되니 벌금 누적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인권을 찾아가는 길은 법률을 뛰어넘는 투쟁이 있어야만 가능”하기에 계속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일반교통 방해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사회가 규정한 ‘선을 넘음으로써’ 이들은 이 사회 소수자들의 영토를 확장해온 것이다.
전장연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일절 돈을 받지 않고 개인·단체 후원금으로만 운영된다. 후원금 외에 설·추석 특판 등의 재정 사업을 하고,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엔 별도 투쟁 기금을 모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최저임금 수준의 전장연 활동가 8명의 활동비도 감당하기 힘들다. 급한 벌금을 막느라 종종 활동가들에게 줄 활동비가 밀리기도 한다.
그렇게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이 떨어진 2016년 10월, 전장연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사무실을 나왔다. 이들은 서울시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공유지에 파란색 천막 두 동을 쳤다. 무단점거였다. 서울혁신파크에서 고소·고발이 들어왔고 전장연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혁신파크와의 논의 끝에 잠시 건물 내 남은 공간에 들어가기도 했다. 혁신파크에 있는 NGO 단체들은 단체 공모를 통해 들어온 반면, 전장연은 “혁신파크 내 질서를 무너뜨리고”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눈초리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전장연 그 스스로 늘 마음이 불편했다. 그럼에도 돈도, 갈 곳도 없으니 올해 3월까지만 머물기로 했다. 3월 말, 그곳을 나와 다음 항로로 이들은 대학로를 택했다. 장애운동의 ‘시작들’이 움튼 곳이자 여기엔 그 시작들을 함께했던 노들야학이 있었다.
“저항하기 위해선 안정된 공간 확보와 연대·협력할 수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큰 힘이 되니깐. 노들과 한 공간을 사용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항의 힘이 확장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로였다. 장애운동에 대한 상징과 중심가라는 접근성,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 전장연에겐 모든 조건이 충족된 최고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기존과 비교했을 때 부담해야 할 돈이 엄청났다. ‘대항로’ 공간은 보증금 1억 원에 월세만 1000만 원에 달한다. 급한 대로 지난해 전장연 벌금 모금으로 모았던 1억 원을 보증금으로 잠시 막아놨다. 월세는 노들 활동지원교육기관이 절반 이상을 내고, 나머지는 전장연과 함께 입주하는 진보적 장애단체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장애해방열사 단,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 전장연을 포함해 9개의 장애인단체가 이곳에 상주한다.
박 사무총장은 “노들 활동지원교육기관이 함께하겠다고 제안하지 않았다면 차마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무리해서 왔느냐’는 물음에 그는 “진보적 장애운동의 진지로서 다양한 형태의 운동 의제를 발굴하고 투쟁을 만들어내는 대항의 시대를 열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고 답했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장애인 복지예산 확대를 촉구하며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지도엔 ‘없는 길’을 온몸으로 밀며 온 시간이었다. 그 근육의 움직임대로 이번에도 ‘없는 돈’은 만들기로 했다. 진보적 장애운동공간 마련을 위한 ‘벽돌 기금’이 그것이다. ‘벽돌 회원’은 차용증서를 쓰고 100만 원을 1구좌로 5년 후 상환받을 수 있다. ‘벽돌 기부’로 상환 없이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 이를 위해 27일 저녁 6시, 마로니에공원에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폐막식을 시작으로 영화, 와인, 문화가 있는 ‘대항로 파티’를 연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을까. 막막함에 대한 허둥거림 없이 그가 힘있게 답했다.
“벌금과 구속을 두려워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싸움을 사회에 알릴 수 있을까, 투쟁 기금을 모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소식을 접하고 이 운동에 동참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변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단지 기회가 안 닿아서, (이런 곳이 있는지) 알지 못해서 이제까지 후원하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그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하고 싶어요. 함께하자고.”
좀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항로의 길목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해두는 거라고, 그의 말을 그렇게 해석했다.
< 벽돌 기금 >
- 문의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02-739-1420
- 5년 후 상환 : 국민은행 994401-01-270223 (예금주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완전 후원 : 국민은행 448401-01-222275 (예금주 : 사단법인 노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