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잘 사는 나라가 행복..정부 예산 늘려야"
작성자 2018-04-2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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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살아만 있다고 사는게 아니다. 돌아다니고 배우고 일하고 놀 수 있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의 기본 조건이지만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어렵다. 집밖에 나서는 순간 넘기 힘든 수많은 벽에 직면한다. 배제가 일상이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공간에 끼여들지 못한다. 비장애인에게 '장애인 친구'는 낯설다. 평소 접하지 못하니 공감도 힘들다. 차별과 배제에 또 다시 익숙해지는 약순환이 반복된다. 우리 곁에 있는 장애인 이웃의 눈으로 우리가 익숙해선 안될 일상을 돌아본다.
제38회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주최한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향한 투쟁결의대회'를 마친 장애인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장애인들이 바라는 건 보호가 아닌 권리입니다. 스스로 권리를 옹호하기 어려운 집단의 외침을 이기적인 떼씀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달 17일 만난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장애인 인권 운동을 바라보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국민의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제정된 '장애인의 날'에 오히려 더욱 드러났다.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이달 19일 중증장애인 77명이 청와대를 향해 차가운 도로를 기어갔다. 온몸을 땅에 던져 기원하는 이른바 '오체투지' 행진이다. 움직이기 힘든 몸을 이끌고 휠체어에서 내려온 이들은 땅을 기고 몸을 굴리며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외쳤다.
이날 행진이 보도되자 일부 시민들은 '도로를 다 막는 건 너무 이기적' '국가에 장애를 책임지라는 말이냐' '안타깝지만 일반인과 똑같은 노동력이 없는걸 어쩌냐'는 댓글을 달았다. 장애를 바라보는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현수 정책실장은 "장애인이 거리에 잘 안 보이고 장애인을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며 "장애인 인권은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인권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사진=김창현 기자
◇"장애인 복지가 결국 사회 전체 복지로 이어져"
조 실장은 장애인 복지가 결국 사회 전체를 위한 복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조 실장은 "한 사회의 복지 수준, 구성원의 행복지수를 평가할 때 사회 소수자 삶의 수준이 척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이동권이 좋은 사례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설치된 지하철 역사의 엘리베이터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다리를 다친 사람, 여행용 캐리어 등 짐이 많은 사람 등 모두에게 편리한 수단이 됐다. 장애인을 위해 만들어진 경사로에는 유모차와 자전거도 지나 다닌다. 장애인의 안전하고 편리한 이동권을 위한 변화가 결국 모든 사람의 이동권을 편리하게 한 것이다.
교육권도 마찬가지다. 조 실장은 "장애인이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추구하다보면 경쟁·입시 위주 교육이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교육으로 가치 전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장애인 정책 소극적…예산 확대로 의지 보여야"
조 실장은 장애인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목표로 하는 '탈시설' 정책,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 연금 인상 등 내용을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에 담았다.
하지만 수립 계획 내용은 소극적이다.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 3만명 중 내년 '탈시설 정책' 시행 대상은 100명뿐이다. 조 실장은 "최소 향후 10~20년 이내에 모든 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재 정부 정책으로는 40~50년 이상이 지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등급제 폐지도 예산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장애 정도에 따라 1~6급으로 나누어 차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장애인 등급제가 폐지되면 이후 예산 확대가 필수적이다.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장애인에게 같은 의료·복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장애인 등급제 폐지에 따른 관련 예산안이 반영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부의 장애인 복지 예산 지출 수준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꼴찌 수준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 기준 GDP(국내총생산) 대비 장애인 복지예산 비중은 0.6%로 OCED 평균의 25%, 최하위권이다.
조 실장은 "정부가 장애인 인권을 개선할 의지를 예산으로 표명해야 한다"며 "모두가 잘 살기 위한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려면 장애인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사실을 정부부터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제도는 제대로된 복지 힘들어…실효성 있는 예산제도 필요"
다른 전문가들도 조 실장의 이같은 지적에 공감하며 실효성 있는 예산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은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시행 중인 개인예산제도를 제안했다. 개인예산제도는 개인의 소득과 장애 정도에 따라 배정된 예산에 기반한다.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예산을 직접 수립하고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서를 지방의회에 제출하면 의회에서 최종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 이사장은 "지금의 장애인 복지 예산만으로는 제대로된 복지 서비스 실현이 힘들다"며 "소득세 일정비율을 상향 조정해 별도 공적기금을 조성하는 등 장애인 복지시스템의 질적 제고를 위한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지예산제도 도입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다. 장애인지예산은 예산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예산편성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김동기 목원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존 국가예산 제도로는 적절한 예산 분배를 끌어내기 힘들기 때문에 장애인 권리나 복지가 현실화되기 어렵다"며 "장애인지예산제도는 예산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평등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예산 배분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영민 기자 lets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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