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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기획 취재①] 탈시설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제공 ‘뉴 모델’까지

작성자 2018-05-03 최고관리자

조회 281

 

 

 

[뉴질랜드 기획 취재①] 탈시설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제공 ‘뉴 모델’까지
전 세계 최초 발달장애인 유엔위원 배출한 뉴질랜드
장애인 정책 마련부터 시행까지, 발달장애인 당사자 의견 수렴 
등록일 [ 2018년05월02일 16시18분 ]

[편집자 주] 전 세계 최초로 발달장애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을 배출한 뉴질랜드. 그 배경에는 탈시설에 대한 '과감한 결단(Bold Decision)'과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4월 15일부터 21일까지, 대구피플퍼스트와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과 대구시, 대구·경북연구원, 경북행복재단 등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뉴질랜드 발달장애인 정책 연수를 다녀왔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탈시설자립지원팀을 만들었고, 인권침해 및 재정 비리 등의 문제가 드러난 대구시립희망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을 2018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대구지역 단체들로 꾸려진 연수단은 뉴질랜드 발달장애인 지원 시스템을 확인하여 한국에서의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마련되었다. 연수단 일정을 동행하며 기록한 뉴질랜드의 정책과 실제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1525245105_53506.jpg 한국 연수단과 뉴질랜드 장애국(Office for Disability Issues)이 지난 4월 18일 오전 장애국 회의실에서 간담회를 진행하는 모습.

2006년, 뉴질랜드의 마지막 대형시설인 킴벌리 센터(Kimberley Centre)가 폐쇄되었다. 폐쇄 이야기가 처음 나온 때는 뉴질랜드 정부 정책이 시설 수용에서 지역사회 내 지원으로 바뀌기 시작한 1980년대였다. 정책 방향 변경 이후 대형 시설들이 하나둘씩 문 닫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 남은 대형 시설은 킴벌리 센터뿐이었다.

 

킴벌리 센터 거주자는 대부분 중증발달장애인이었다. 중증발달장애인이 시설 바깥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당사자와 가족의 우려가 컸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남은 대형 장애인 시설 킴벌리 센터 폐쇄를 위해 거주자와 가족을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다. 

 

1994년, 뉴질랜드 보건부(Ministry of Health) 등 정부 기관과 킴벌리 시설 거주자 부모 및 가족들이 모인 간담회가 개최됐다. 간담회의 목적은 변화된 정부 정책에 따라 서비스 내용 변화의 필요성을 정부가 거주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서비스 체계를 새로 구축할 때 협업하는 방식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이후 보건부는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우려를 파악하고, 거주인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한다. 2001년 발간된 이 보고서는 △킴벌리 센터 쇄신 후 유지 △부분적 탈시설 △완전한 탈시설 세 개 선택지를 분석한 후, 완전한 탈시설을 권고했다. 

 

2001년 9월, 장애부 장관(Minister of Disability Issues)은 킴벌리 센터의 폐쇄와 모든 거주자의 지역사회 안착을 향후 4년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폐쇄 당시 킴벌리 센터에는 375명의 발달장애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당시 시설 거주자의 63%가 ‘의사소통 가능 시간이 1분 미만’으로 확인되었으나, 탈시설 1년 후, 다시 찾은 장애인 당사자들은 지역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었고, 일상생활 수행이나 사회 활동 적응 역시 가파른 속도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18일, 한국 연수단과 만난 브라이언 코피(Brian Coffey) 뉴질랜드 장애국 국장은 "탈시설을 위한 제반 시설이 모두 마련되길 기다렸다면 (시설 폐쇄는) 결코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과감한 결단(Bold Decision)을 내렸고, 이 과정(선 탈시설 후 지원)을 통해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아가 발달장애인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과 더불어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 사회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밝혔다. 

 

뉴질랜드 장애인정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다. 뉴질랜드 장애정책의 큰 줄기인 '10개년 장애 전략(Disability Strategy: 2016~26)'은 유엔장애인협약과 와이탕이 조약(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과 영국이 체결한 조약_편집자 주), 그리고 장애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 당사자가 반드시 참여한다는 원칙 위에 만들어졌다. 

 

뉴질랜드 장애 전략은 2016~26년까지 이뤄야 할 8가지 목표를 담고 있다. 8가지 목표에는 교육, 고용 및 경제, 건강, 법적 권리, 접근성, 사회인식, 자기결정권, 리더쉽 등이 있다. 코피 국장은 "이러한 여덟 가지 목표가 뉴질랜드 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여덟 가지 목표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차별받고 있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탈시설'은 장애 전략 목표 안에 담겨있지 않다. 탈시설은 국가적으로 이미 완료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코피 국장은 "다만, 여덟 가지 목표는 모두 탈시설 이후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으로, 탈시설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1525245363_63491.png 뉴질랜드 10개년 장애전략(Disability Strategy 2016~26)의 8가지 목표. 뉴질랜드 장애국 자료 갈무리.

- 뉴질랜드 장애인 복지의 ‘뉴 모델’ 핵심은 ‘장애인의 결정권 확대’ 

 

뉴질랜드 정부는 2011년, 장애인 복지의 새로운 모델인 ‘뉴 모델(New Model)’을 만들었다. 뉴질랜드에서도 새로운 시도인 '뉴 모델’ 시범사업은 2011년 8월 베이 오브 플렌티(Bay of Plenty) 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이후, 와이카토, 오클랜드, 허트 밸리, 오타고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뉴 모델'의 핵심은 장애인의 결정권 확대이다. 서비스 제공 전반에서 전문가가 아닌 당사자의 목소리가 더 우위에 있다. 이 때문에 서비스 사정부터 자기평가(Self assessment)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전문가가 ‘진단’한 장애 정도가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주체인 장애인 당사자의 결정에 근거해 서비스의 양이 결정되는 것이다. 자기평가를 통해 결정되는 것은 서비스의 유형이 아닌, 개인기금(Individual Funding)의 규모이다. 

 

만약 장애 특성으로 인해 원하는 기금의 양을 설정하기 어려운 경우 '욕구 평가 및 서비스 연계(Needs Assessment and Service Coordination, NASC)'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보건부와 계약을 맺은 단체들이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은 당사자의 강점과 지원 욕구를 파악하고, 어떤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기금의 양이 결정되면 지역 코디네이터와 연계된다. 코디네이터는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지역사회에 연계되어 장애인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미리 결정된 틀에 당사자의 욕구를 맞추는 형식이 아니므로, 코디네이터의 지원은 유연해야 한다. 

 

코디네이터 자격 기준은 정부에서 결정하지 않는다. 이를 정하는 것은 '워킹그룹'의 몫이다. 워킹그룹은 지역 거주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다. 뉴질랜드 정부는 '뉴 모델'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워킹그룹을 만들고 이들과 모임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진행한다. 뉴질랜드의 ‘민관협의체’인 셈이다.

 

코피 국장은 “워킹그룹과 정부가 회의를 하면, 정부는 빈 종이를 들고 워킹그룹, 즉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의견을 듣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 요구하는 것을 최대한 서비스에 반영하기 위해서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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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 국장은 이제 막 탈시설한 장애인 지원 방식을 묻는 한국 연수단의 질문에 시설 내에서 제한적인 삶을 살아온 이들에게 더 많은 ‘실패의 경험’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탈시설 장애인에게 곧바로 '당신이 원하는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지,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말하라'고 요구하고 그대로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이들은 주도적으로 생활을 디자인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코피 국장은 ”탈시설 장애인에게 초반에 집중적으로, 다양한 지원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삶에서 필요한 것과 뺄 것을 알게 되고, 또 삶의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스스로 할 수 있게 돼 그 분야의 기금을 반납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탈시설은 복지 시스템에도 이익이 된다"라고 덧붙였다.

 

면담을 마무리하며 코피 국장은 동석한 데이빗 킹(David King)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전국 의장에게 마지막 발언을 요청했다. 킹 의장은 이러한 요청에 익숙한 듯 지체없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우리(발달장애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뉴질랜드 정부는 이제서야 우리의 말을 듣고 우리의 의견에 따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오늘의 만남이 한국 사회 변화의 시작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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