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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기획 취재②] 발달장애인 UN위원 배출엔 ‘시민’으로서의 존중있었다

작성자 2018-05-08 최고관리자

조회 319

 

 

 

[뉴질랜드 기획 취재②] 발달장애인 UN위원 배출엔 ‘시민’으로서의 존중있었다
서비스 제공자의 결정권 줄이는 ‘뉴 모델’ 시범사업 실시
자기결정권 존중 위한 다양한 시도, 뉴질랜드도 ‘현재진행형’
등록일 [ 2018년05월04일 19시44분 ]

[편집자 주] 전 세계 최초로 발달장애인 유엔장애인권리위원을 배출한 뉴질랜드. 그 배경에는 탈시설에 대한 '과감한 결단(Bold Decision)'과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부의 태도 변화가 있었다. 

 

지난 4월 15일부터 21일까지, 대구피플퍼스트와 장애인지역공동체 등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과 대구시, 대구·경북연구원, 경북행복재단 등 공공기관 관계자들이 뉴질랜드 발달장애인 정책 연수를 다녀왔다. 대구시는 전국 최초로 탈시설자립지원팀을 만들었고, 인권침해 및 재정 비리 등의 문제가 드러난 대구시립희망원 내 장애인 거주시설을 2018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대구지역 단체들로 꾸려진 연수단은 뉴질랜드 발달장애인 지원 시스템을 확인하여 한국에서의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마련되었다. 연수단 일정을 동행하며 기록한 뉴질랜드의 정책과 실제 발달장애인들의 삶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지난 기사 : [뉴질랜드 기획 취재①] 탈시설부터 장애인 중심 서비스 제공 ‘뉴 모델’까지

 

뉴질랜드 허트밸리 지역에 사는 지나(Jenna)는 두 명의 다른 발달장애인과 함께 플랫(flat, 개인 주택)에서 살고 있다. 집은 지역 서비스 제공 기관 소유이고, 세 명의 플랫 메이트가 1/3씩 렌트비용을 기관에 지불한다.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장 보러 가거나 은행 갈 때, 또는 음식 만드는 등의 일을 할 때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할 땐 지원인(Suppor worker)이 지나의 집을 방문한다. 지원인과 지나는 방문을 비롯한 생활 계획을 함께 세운다. 지원인은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기 때문에 지나가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없다. 

 

브레드(Bread) 역시 다른 거주자들과 함께 플랫에서 살고 있다. 지나와 다르게 브레드의 집에는 24시간 동안 지원인이 상주한다. 브레드는 중도중복발달장애인이라 휠체어를 타고, 언어적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나가 받는 것보다 더 고도의 지원이 필요하다.

 

브레드와 같은 ‘지원 주택’에 거주하는 거주인은 총 8명으로, 주택단지 안에 네 채의 집이 있고 각 집마다 두 명씩 거주하고 있다. 8명 중 6명이 중도중복장애인이다. 주간에 어떤 활동을 할지는 각 지원인과 논의해서 결정한다. 3명의 지원인이 돌아가면서 브레드를 지원한다. 브레드는 외부 활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원인들은 종종 브레드와 함께 휠체어에 탄 채로 들어갈 수 있는 지역 수영장에 가거나 산책을 하는 등 일상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1525430180_19425.jpg 브레드가 거주하고 있는 '지원주택' 전경. '플랫(flat)' 네 채가 한 울타리 안에 모여 있는 형태이다.

1525430367_41874.jpg '지원주택' 벽면에 붙어있는 거주인 스케줄 표
 

뉴질랜드에서는 지원인의 개입 정도와 주택 소유 계약 관계에 따라 서비스가 구분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소유하거나 빌린 집에 살면서 필요할 때만 인력 지원을 받는다. 또 다른 경우에는 서비스 제공기관이 소유한 주택에서 거주하며 지원인과 함께 개별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인적·물적 지원을 받는다. 이를 '생활 지원 서비스(Supported Living Service)'라고 하는데, 지나가 바로 이 서비스를 받고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개입이 이뤄지는 서비스는 바로 브레드가 받고 있는 '지역사회 주거 지원 서비스(Community Residential Support Service)'이다. 24시간 지원인이 상주하고, 주택은 서비스 제공기관 소유이다. 단, 이 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누구와 함께 살지 결정할 수 없다. 

 

주택 소유자(계약자)와 서비스 개입 정도에 따른 차이가 있긴 하지만, 공통된 것이 있다. 모든 서비스 제공기관과 지원인은 '뉴질랜드 장애인 지원 서비스 철학'에 따라야 한다. 이 철학의 원칙은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최대한의 독립 보장, 그리고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및 통제권이다. 서비스 제공기관과 지원인들의 원칙 준수가 정부 감사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이다. 

 

최근 뉴질랜드 정부는 ‘뉴 모델’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지역사회 생활에서의 선택(Choice in Community Living, CiCL)’ 서비스를 도입했다.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거나 주거 지원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으로, 당사자가 주택 소유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누구와 함께 살지도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지원을 어떻게 받을지 전적으로 당사자, 혹은 가족의 요구가 우선시된다. 서비스 제공기관의 역할을 한층 축소시키는 형태이다.

 

발달장애인도 정부 고위급 회의 참여… “쉬운 설명 요구는 배려 아닌 정당한 편의제공”  

 

장애인, 특히 발달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은 뉴질랜드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제이다. 일례로 장애인 최저임금 예외 제도가 있다. 이 제도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만, 사업체들의 반발과 더불어 이런 일자리라도 없으면 장애인은 아예 노동 현장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2016년 10월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인은 뉴질랜드 전국에 868명이다.

 

그러나 이 제도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꾸준한 비판의 목소리에 뉴질랜드 정부는 반응하고 있다. 2017년에는 니키 바그너 장애부 장관(Minister for Disability Issues Nicky Wagner)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제도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라고 밝혔고, 2018년에는 여러 장애인단체들과 함께 ‘고용 지원 이행 가이드라인(Employment Support Practice Guidelines)’을 만들어 공개했다.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 또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정보 접근성’이다.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면 자신의 의견을 갖기도,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길고 어려운 개념을 포함한 정보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 단체인 피플퍼스트 뉴질랜드는 ‘쉬운 자료 제작(Make It Easy)’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쉬운 자료 제작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알렉시아 블랙(Alexia Black) 매니저는 “쉬운 자료 제작 사업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장애인 정책 정보 ‘번역’ 제안만 받았지만 최근에는 지방정부 운영 계획 번역 작업도 의뢰받았다”라며 “이는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을 ‘장애인’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아주 중요한 포인트이다. 앞으로 이런 흐름이 더 확장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525430598_96716.jpg 뉴질랜드 보건부에서 발간한 'CiCL' 사업 설명 이지리드 자료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남섬 북부지역 위원장인 페넬로페(Penelope)는 보건부에서 주최한 고위급 회의(High level meeting)에 참여했다. 페넬로페는 자신과 동료들이 겪고 있는 임금 관련 문제들을 지적했다. 피플퍼스트 회원이 정부 회의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뉴질랜드 은행 연합회(New Zealand Bank Association)’ 회의에도 참석해 발달장애인 은행 이용 환경 개선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페넬로페가 정부 회의에 참석할 때에는 회의 조력자(Meeting Assistant)인 자넷(Janet)이 동행했다. 회의 조력자의 역할은 회의 전부터 회의 이후 내용을 정리해 피플퍼스트 회원들과 공유하는 것까지 이어진다. 회의 자료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바꿔 이해를 돕고, 당사자가 회의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함께 정리하고, 회의가 진행될 때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후에는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전국위원회에서 공유할 보고서를 당사자와 함께 작성한다. 

 

회의의 ‘접근 가능성’을 높이는 것 역시 회의 조력자의 역할이다. 정부 고위급 회의에는 많은 전문가가 참여하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가 설명 없이 사용되거나, 지나치게 오랜 시간 진행되어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회의를 집중하며 따라가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회의 조력자는 한 시간에 5~10분씩 휴식시간을 건의하거나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회의 자리에서 요청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배려’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당한 편의 제공’임을 분명히 한다.

 

회의 조력자가 가장 유의해야 하는 것은 ‘당사자보다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사소하게는 회의 참석 시 절대 정장을 입지 않는 것부터 소개를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하도록 하고, 회의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져 앉는 것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임을 드러낸다.

 

물론, 정부 고위급 회의에 발달장애인이 참여하기까지는 오랜 설득이 필요했다. 2003년 피플퍼스트 뉴질랜드가 생겨난 이후, 중앙정부에 발달장애인의 목소리가 직접 전달되고 반영되어야 한다는 필요를 꾸준히 제기해온 결과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뉴질랜드 피플퍼스트 회원인 로버트 마틴은 세계 최초의 발달장애인 유엔 위원에 도전할 수 있었고, 역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마틴 역시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회의에 회의 조력자와 함께 참여했다. 

 

피플퍼스트 뉴질랜드 전국 매니저이자 마틴의 회의 조력자 역할을 했던 신디 존스(Cindy Johns)는 “로버트 마틴은 ‘내가 마지막 발달장애인 유엔 위원이 되지 않길 바란다. 더 많은 발달장애인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여겨지길 바란다’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존스는 “그동안 발달장애인은 늘 가족, 전문가,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에 의해 대변됐다”라며 “뉴질랜드에서 당사자들과 조력자들이 함께 일궈낸 관행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길 원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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