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장애인도 여행 가고 싶다
작성자 2018-04-2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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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9명은 1년에 한 번 이상 여행을 간다고 합니다. (국민여행실태조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대체휴일제 도입으로 휴일이 늘어나고 직장에서도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휴가에 관대한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행 권하는 사회'가 된 지도 오랩니다. TV를 틀면 여행 프로그램이 채널마다 나옵니다. 가히 전 국민 여행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서도 소외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전 국민의 5%에 달하는 장애인들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 수는 251만 명이 넘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행 경험이 있는 장애인 비율은 겨우 9.8%로, 일반 국민의 여행경험 비율과 완전히 반댑니다. 지난해 한국장애인총연맹 등 4개 장애인단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장애인 응답자의 80.6%가 '편의시설이 불편해 여행을 포기한다'고 답했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지레 포기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겁니다.
● '절대 부족' 장애인 객실…방 200개 있어도 1개?
우연히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는 분과 식사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씩 단체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이라도 갈라치면 숙소 구하는 게 가장 큰 일이라는 겁니다. 장애인 단체손님을 유치할 만한 시설이 국내에 거의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하더라도 미흡해서 큰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장애인 손님을 아예 받지 않는다거나, 장애인 객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숙박업소 직원들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지난 1998년부터 법으로 숙박업소에 장애인 객실 두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이하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4조에 따라 30실 이상 객실을 보유한 숙박업소는 0.5% 이상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진 장애인 객실을 갖춰야 합니다.
문제는 0.5%라는 작은 비율입니다. 물론 시행령에 '산정된 객실 또는 침실 수 중 소수점 이하의 끝수는 이를 1실로 본다'는 문구를 두어 30실 이상 숙박업소라면 0.5% 값이 행여나 0.00001로 나오더라도 무조건 1실 이상 장애인 객실을 갖춰야 하지만, 그래도 적은 규모입니다. 계산해보면 방 200개짜리 호텔까지는 장애인 객실 1개만 두면 됩니다. 우리나라에 200개 넘는 객실을 보유한 호텔이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보면 얼마큼 적은 수치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지적이 계속 일자 올해 2월부터는 일반 숙박시설의 경우 1%, 관광숙박시설 (관광호텔, 콘도 등)은 3%까지 장애인 객실 갖추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다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지은 호텔과 숙박업소 등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올해 2월 이후로 신축 또는 증·개축되는 숙박시설만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법에 따라 장애인 객실을 갖춘 숙박업소가 마지막 전수조사를 한 2013년을 기준으로 전체(212,873개)의 70%인 14만 9천 개에 달합니다. 70%면 괜찮은 수치 아닌가 싶은데, 들여다보면 또 얘기가 달라집니다. 치수나 규격 등 기준에 맞게 장애인 객실을 갖춘 '적정 설치율'을 따지면 그 비율이 62% (132,230개)까지 줄어듭니다. 이마저도, 직접 살펴보면 장애인들이 쓰기에는 불편한 곳이 많습니다. 기준을 만들 때 나름 치수와 항목 등 세부 조건을 두긴 했지만 장애인들의 눈높이에서 세심한 것까지 고려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겁니다.
● 장애인 객실 둘러보니…'적정 설치'라는 데도 불편
실제 취재진이 휠체어를 탄 1급 지체장애인 한 분과 동행해 서울 주변의 여러 숙박업소를 둘러보니, 비장애인인 제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불편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해당 숙박업소들은 모두 적정설치 판정을 받은 곳인데도 말입니다. 옷걸이나 샤워기가 너무 높이 설치돼있어 하반신이 불편한 장애인 위치에서는 손이 닿지를 않는다거나 바닥에 홈이 패여 있어 휠체어 바퀴가 빠지거나 하는 경우가 꽤 많았습니다. 이 밖에 세면대가 너무 낮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한다거나 침대가 너무 높아서 옮겨 눕기 불편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비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불편들도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요새 많이 볼 수 있는 자동 감지식 수도꼭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수동보다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센서 가까이 손을 대야 물이 나오는데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들의 경우, 센서를 알아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 커튼도 자동으로 열고 닫을 수 없으면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은 거의 조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그 중요성을 알게 된 편의시설도 있습니다. 바로 샤워실에 설치하는 '샤워 의자'입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경우 휠체어에서, 이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로 된 샤워 의자로 옮겨 앉아서 샤워를 해야 합니다. 휠체어를 탄 채 그대로 샤워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욕조가 없는 호텔의 경우 이 의자마저 없으면 차가운 바닥에 내려앉아 샤워를 하는 난감한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합니다. 저희가 둘러본 숙박업소 가운데, 최근에 지은 호텔 단 한 군데만 이 샤워 의자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디테일의 부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입니다. 장애인 객실을 두도록 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등에는 점자 블록, 안전 손잡이, 유도 및 안내설비 등 편의시설의 종류와 치수를 나름 정해두고 있지만 장애인의 눈높이에는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또 이런 시설 다 갖췄어도 창문이 없거나, 너무 구석에 처박혀있어서 장애인들이 찾아가기가 어려운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들은 마음에 드는 숙소를 고르기는커녕 구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절대적인 수량도 부족할뿐더러 있어도 불편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불편을 감수하면서 일반 객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고생을 하고 나면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거나 다시는 오고 싶지 않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 민간 부담 줄이고 '인식의 전환' 필요
이렇게 여건이 열악하지만 장애인 객실을 더 늘려야 한다거나 편의시설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애인 객실을 여럿 만들 만큼 수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장애인 객실을 한번 만들면 그 객실에는 다른 손님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1년에 한 번 손님이 있을까 말까 하거나 장애인 객실이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이야기도 호텔 관계자들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호텔에서는 장애인 객실을 직원 숙직실이나 휴게실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민간이 고스란히 부담을 지는 구조입니다.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의 숙박업소는 장애인 객실을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그로 인한 비용이나 손실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거죠. 장애인 편의시설 수준이 숙박업소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이유도, 자금이 넉넉한 고급 호텔 체인의 경우 장애인 전문가를 고용해 눈높이에 맞는 시설을 설치하지만 그렇지 않은 숙박업소의 경우 최소 기준에 맞춰 설치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다 나은 해법을 위해서는 공공 영역에서 어느 정도 민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지난해 말 서울시가 '무장애 관광도시'를 선포하면서 실시하고 있는 숙박업소 컨설팅이 좋은 사례입니다. 여행 경험이 많은 장애인 자문위원을 위촉해 컨설팅을 도와주고 시설 개선을 위한 비용도 지원합니다. 물론 모든 지자체가 서울시와 똑같이 할 수는 없겠지만,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고 비용도 일부 지원하는 방식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습니다. 지자체나 정부 출연 장애인 기관에서 홍보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관광 대국인 스페인에서도 민간 건설회사가 운영하는 재단이 민관 협력을 주도하며 '접근가능한 관광'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공공과 민간을 떠나 더 중요한 건 '인식의 전환'입니다. 장애인 객실을 만들고 편의시설을 갖추는 게 그냥 법으로 해야 하니까, 혹은 윤리적 차원에서, 이런 소극적 인식보다 장애인 여행객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보고 접근하는 게 최근 국제 관광업계의 트렌드입니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 관광객은 해외 관광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소비집단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호주 관광객 가운데 11%가 장애인이고, 영국 국내 여행객의 12%를 장애인이 차지합니다. 나아가 장애인 관광객은 비장애인 관광객보다 더 오래 관광지에 머물며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장애인 관광객 자체가 하나의 큰 시장이자 소비층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먼 이야기 같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공감해야 할 지점은 장애인들의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부분이라고 기자는 생각합니다. 장애인을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딘가 불편해서 보살펴줘야만 하는 그런 존재로만 볼 게 아니라 일반인과 똑같은 삶의 욕구와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식하자는 겁니다. 장애인 객실의 문제는 장애인 여가권과 연결됩니다. 일반인과 같이, 장애인들도 여가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일상을 떠나 좋은 경치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삶의 기쁨을 만끽할 권리가 있는 건 장애인도 마찬가집니다. 숙박업소의 장애인 객실 문제를 단순히 방 하나 더 두고 말고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윱니다.
강청완 기자blu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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