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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담장 밖’을 꿈꾸던 용기있는 사람, 송국현을 기억합니다

작성자 2018-04-19 최고관리자

조회 252

 

 

 

‘시설 담장 밖’을 꿈꾸던 용기있는 사람, 송국현을 기억합니다
청와대 앞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4주기 추모제 열려
등록일 [ 2018년04월17일 21시53분 ]

1523969733_55128.jpg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씨 4주기 추모제.
 

1962년생 송국현은 86년 언어장애와 뇌병변장애를 입게 되고 90년부터 장애인생활시설 ‘꽃동네’에서 살았다. 그곳의 담장을 넘기까지 무려 24년이 걸렸다. 2013년 10월 꽃동네에 갇힌 꽃으로 시들지 않기 위해, 그는 지역사회로 나와 체험홈에서 새 삶의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그는 ‘장애3급’으로, 당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자격에 미달했다. 그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국가는 책임지지 않았다. 몇 차례의 이의신청도 제기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러던 2014년 4월 13일, 집에 홀로 있던 그는 갑자기 발생한 화재로 전신3도의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3일 후인 17일, 꽃동네를 벗어나 비로소 꽃을 피웠던 그의 길지 않았던 삶을 마쳤다.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은 2018년 4월. 장애인들에게는 이달이 장애등급제 피해자 송국현의 4주기로도 기억된다. 잠시 꽃피웠던 송국현의 삶을 가로막았던 장애등급제를 비롯한 장애계 3대 적폐(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이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 앞에서, 17일 장애인들은 다시 송국현을 추모하는 국화꽃을 들었다.


1523969788_84327.jpg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씨 4주기 추모제.

추모제에 나온 이들은 각자가 기억하는 송국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진석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송국현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가 불길 속에서 날려 보내야 했던 자립생활의 꿈을 안타까워했다.


“2014년 장애인이 집에서 잠을 자다가 미처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불에 타 죽었다는 소식을, 내가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 9시 뉴스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그저 잠시 안타까웠을 뿐이었습니다. 내가 시설 밖으로 나와서야 그 사람이 송국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국현 씨하고 같은 하늘 아래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이다음에 저세상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국현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그럼 이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는 그 날을 위해서 국현 씨는 국현 씨 있는 곳에서 나는 내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자립생활을 해나가요.”


장애계가 송국현을 기억하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장애등급제 희생자’이다. 그러나 지역사회로 나와 오롯한 자기 삶을 살았던 6개월의 시간을 함께했던 최재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그를 피해자로만 기억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그는 노들장애인야학 교사로서 고인과 만났던 순간에 대한 기억을 전했다.


“제가 야학에서 수학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송국현 님은 저희 반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국현님이 활동보조 시간이 부족해서 항상 제 수업에 못 들어왔어요. 매번 출석부에 결석 표시를 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국현님은 공부에 대한 열의가 컸거든요.
국현 님이 사고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저 안타깝다고만 생각했는데, 탈시설운동을 하면서 그렇게 생각해왔던 게 부끄러워졌습니다. 송국현 님은 20대 후반에 장애를 입고 25년간 시설에만 살다가 그 벽을 뚫고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기 삶을 사람답게 살겠다고 했던 그의 의지는 그렇게 가볍지도 간단하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장애등급제를 가지고 사람의 삶에 값을 매기는 현실에 맞서 ‘야, 계산기 집어치워라 나도 사람답게 살자’ 이렇게 배짱 있게 이야기했던 사람입니다.”


최 활동가는 우리가 송국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국현 아저씨는 우리와 국가에 말걸기를 하고 있습니다. 너는 얼마나 계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하고 있느냐, 너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느냐고. 그가 찰나의 삶을 살다 갔지만, 그 모습 속에 참사람의 원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국현의 삶에 값을 매겨 그를 불태운 장애등급제의 논리는 그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음에도 장애3급이라는 이유로 송국현에게 신청자격조차 주지 않았던 국가는 지금도 많은 장애인에게 줄을 세우고 서비스로부터 배제하고 있다. 김유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광주지부장은 지적장애를 가진 딸의 이야기를 전하며 지금도 계속되는 고통에 대해 말했다.


“제 딸은 3년 전부터 활동보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연금공단에서 조사를 나온 담당자 앞에서, 한 시간이라도 서비스를 더 받기 위해 그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임에도 힘들다고 호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겨우 활동지원 2급을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2년이 지나니까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는지 확인조사를 하겠다고 나와서 예전과 같은 평가를 하더라구요. 대소변은 가릴 줄 아냐, 옷은 혼자 입을 수 있냐, 밥숟가락은 혼자 쓸 수 있냐 등...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그 시간에 목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제도를 바로잡고 발달장애인국가책임제를 도입하라고 지난 4월 2일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이곳에서 삭발을 했습니다.”

 

1523969833_91501.jpg 추모제 참석자들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이날 추모제 사회를 맡은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자립지원 강화, 장애등급제 폐지, 탈시설이라는 단어들을 꺼냈다. 예전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며 “대통령 입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기까지 (송국현을 비롯한) 많은 이들의 투쟁이 있었다. 그 투쟁을 기억하면서 더 열심히 싸워나가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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