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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⑪수상작 소개-

작성자 2022-10-07 최고관리자

조회 379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⑪

장려상 ‘기다림의 끝은 기적이 되고’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10-04 08:30:50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한 번째는 장려상 수상작인 김서연 씨의 ‘기다림의 끝은 기적이 되고’다.


기다림의 끝은 기적이 되고
김서연


제 모든 순간이 그들의 손길이었습니다.’
몇 달의 시간을 쏟아 부은 석사 논문 첫 페이지의 감사의 말을 작성하면서 나는 이렇게 썼다. 나의 영원한 빛이자 그늘이 되어 준 부모님을 떠올리며. 내가 지나온 시간들 속에는 늘 엄마, 아빠가 함께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릴 때면, 마음이 먹먹해져왔다.

내가 돌이 될 무렵, 엄마는 나에게 들어본 적도 없는 병이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나와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희귀난치질환과 중증 장애를 가진 내가 엄마, 아빠의 삶에 들어온 순간부터 부모님의 시계는 늘 나에게 맞춰졌다. 나는 그냥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아니라 ‘매 순간’ 손이 필요한 아이였던 것이다. 일으켜 앉혀 주어야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잠자는 자세를 잡아 주어야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유모차, 더 커서는 휠체어를 타는 나와 다른 아이들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내 손을 잡는 대신 기꺼이 휠체어 손잡이를 잡고 나를 평범한 세상 속으로 밀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게 많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 어린이로 살 수 있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육 년 내내 경사로가 달린 우리 집 차는 학교 운동장 옆 커다란 나무 아래 서 있었다. 그곳에서 엄마와 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장애학생을 보조해 줄 수 있는 특수교육 실무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계단만이 빼곡했던 현관에 경사로를 설치하는 일도 설득을 통해서 겨우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에게 언제,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몰라 엄마는 학교 뒤편에 차를 세우고 할머니와 온종일 하루를 그 안에서 보냈다. 집에서 먹던 반찬을 대충 넣어 온 도시락을 먹으며, 한 여름 뙤약볕에도, 추운 겨울에도 에어컨과 히터도 켜지 못하고 그 긴 시간을 나를 기다리며 지낸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런 엄마에게 위로와 기쁨이 되고 싶었다. 급식에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나오면,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친구들에게 ‘그거 먹을 거야?’ 하고 물어보곤 안 먹는 아이들의 몫까지 모아 두루마리 휴지를 칭칭 감아 엄마와 할머니에게 가져다줬다. 그런 간식들은 대게 밥 위에 올려져 있어 밥풀이 묻어 있기도 하고, 휴지 조각이 붙어 있기도 했지만 내가 그것들을 들고 휠체어를 밀어주는 친구들과 함께 나올 때면 엄마와 할머니의 지친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월요일은 미니 핫도그, 목요일은 도넛, 금요일은 백설기…. 그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아서 나는 졸업할 때까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매일 같이 간식을 가지고 나왔다.

어떤 날엔 간식 대신 상장을, 반장이 되었다는 임명장을 들고 나오기도 했는데 내가 온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사람인 양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행복해지기도 했다. 너무 더웠던 한 여름 뜨거운 차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지쳐 있다가도 작은 내가 받아온 상장 한 장이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조금 자란 나에게 엄마가 말했었다.

5학년이 끝나고 6학년으로 올라가던 무렵, 학급 문집에 부모님들의 편지가 실렸는데 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엄마의 글에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서연이를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 동안 엄마는 학교 화단에 어떤 꽃이 피는지, 운동장의 나무들은 어떨 때 제일 예쁜 빛깔을 띠며 빛나는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또 행복했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사이, 부르면 곧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서 엄마는 그 외로운 시간들을 나에 대한 사랑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스무 번이 넘는 계절이 지나는 동안 같은 풍경을, 바람을, 햇살을 다채롭게 느끼려고 노력하면서.

나는 그 사랑으로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연세가 든 할머니의 자리를 활동 지원사 선생님과 조금 덜 바빠진 아빠가 채워주었고, 여전히 나를 자랑으로 여기는 엄마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

꿈만큼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마음을 공부하고 싶어 심리학과에 진학한 후 일 년 간 중학교로 실습을 나갔을 땐, 학교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3층이나 되는 계단을 엄마, 아빠, 동기들이 휠체어를 들고 올려주어야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부모님과 몇 군데나 시험을 보러 다녔지만, 장애가 있는 나를 쉽사리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모교로 다시 돌아와 석사를 마치게 되었다.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련을 할 땐 평일 저녁과 주말마다 아빠가 데려다주고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내가 꿈을 쫓는 그 모든 시간 동안, 엄마, 아빠는 내 뒤에 서서 묵묵히 손을 보태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시간들을 넘어 나는 대학생이 되고, 대학원생이 되고, 마침내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말없이 지지해 주던 부모님이었지만, 처음으로 우려 섞인 마음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직장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온 날이었다. 엄마의 얼굴에 기쁨이 아닌 심란함이 내비쳤다. 입사를 하기 위해서는 3주간 지방 연수원에서 신입 사원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더 이상 엄마 혼자 나를 옮기기 힘들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막한 큰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중증 장애인 직원이 입사하는 것이 처음이었고, 부모님의 보조가 꼭 필요해 동행한다고 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며칠을 포기해야 할까 고민하다 아빠가 ‘그래도 해보자’며 묘안을 냈다. 아빠가 나를 데리고 먼저 연수원으로 내려가서 이틀을 보내고, 엄마가 활동 지원사 선생님과 따로 내려와 이틀을 보낸 뒤 마지막 날 다시 아빠가 내려와 나를 데리고 올라오자는 것이었다.

결국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모두의 힘을 합쳐 무사히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그 시간들 동안 엄마와 활동 지원사 선생님은 한 여름의 연수원을 산책하다 마음씨 좋은 관리 직원을 만나 자두를 따보기도 하고, 아빠는 연수원 카페에서 틈틈이 일을 하며 사장님과 담소를 나누다 친해지기도 했다. 회사 선배님들도 ‘고생 많으시다’, ‘대단하시다’라며 한 마디씩 인사를 건네 주셨다.

나는 벌써 어엿한 5년 차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10분 거리의 출근길을 아빠가, 퇴근길을 엄마가 함께해 주신다. 회사에서만큼은 장애가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사는 느낌이 든다. 책상 위에서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이나 헤드셋을 쓰고 전화로 응대하는 일, 그리고 동료들과 협업하고 어울리는 것 모두 이젠 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이 되었다. 나 정도의 중증 장애를 가지거나 나와 같은 병을 가진 친구들은 주로 출퇴근이나 외출 준비 같은 물리적 한계 때문에 대부분 재택근무를 선택한다. 그렇기에 내가 제법 긴 시간 동안 회사에서 근무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이례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평범한 사람들과 발맞추어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보고 기적이라 부르겠지만, 결국 그 기적은 부모님의 셀 수 없는 기다림이 만들어 낸 것임을 나는 안다. 당연하지 않은 그 시간과 사랑이 나의 삶을 기적으로 이끌었다. 만약 나의 삶을 기적이라 부를 수 있다면, 나에게는 기적이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내 모든 순간이 그들의 사랑이었음을 오래오래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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