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장애인 시설’은 없다
작성자 2022-08-22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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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는 장애인을 보기 어렵다. 동네, 식당, 교실, 사무실 어느 곳에서도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기 어렵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상적 공간과 격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2020년 기준으로 보아, 약 2만 9000명의 장애인이 '시설'에서 살고 있다.
<닷페이스>는 지난해 6월~8월에 걸쳐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 안에 총 10편의 기사와 한 편의 영상을 담았다. 이야기의 중심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 집'이다. 한때 120명 넘는 장애인이 살았으나 운영자에 의해 폐쇄된 곳이었다. <닷페이스>는 향유의 집을 거쳐 간 사람들과 가족들을 직접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장애인 시설의 생활상을 자세히 조명하고, 탈시설과 자립 생활의 구체적인 의미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모색했다.
<닷페이스>는 이 기사로 지난해 제24회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았다. 국제 엠네스티 한국 지부는 매년 인권 증진에 기여한 국내 언론 보도를 선정해 상을 수여한다.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 심사위원회는 이 기사에 대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애정과 관심을 가진 취재의 시선이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었다. 시설에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자립의 의미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해 알리고 나누고 체득하게 되는 과정을 택한 것은 수고로웠던 만큼 땀내나는 취재였다'고 평했다.
시설이 집이 될 수 없는 이유
총 10편으로 구성된 기사는 향유의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어 2편에서는 시설에서 아이를 데려온 양육자 임현주 씨 이야기를 담았다. 3편과 4편은 각각 향유의집에서 15년 간 살다가 2020년 서울시의 지원주택으로 탈시설한 호영선 씨, 제일 먼저 시설에서 나온 한규선 씨와의 인터뷰로 구성했다. 5편에서는 김정하 향유의집 이사장이 시설을 자진 폐쇄한 이유가 나온다.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도 했다. 6편은 장애인의 탈시설에 관해 이용자들과 비대면으로 음성 토론을 진행한 내용을 요약해 기사화했다. 7편에서는 장애인 자립을 지원하는 정주리 씨를 인터뷰했고, 8편에는 장애인 유진화 씨, 이동훈 씨와 인터뷰해 장애인 자립에 무엇이 필요한지 들었다. 9편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소통 수단을 만드는 '소소한 소통'의 백정연 대표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10편에는 장혜영 정의당,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질의응답을 통해 '탈시설 지원법'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뤘다.
한때 120명 넘는 장애인이 함께 살았던 향유의 집에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설립 때부터 폐쇄 때까지 37년간 이곳에 머물렀다. 그들에게 향유의 집은 정말 집이었을까? <닷페이스>는 이 공간이 이름과 달리 '집'이 아닌 '시설'이라는 점을 드러냈다.
기사는 향유의 집 시설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2008년 처음으로 시설을 떠난 한규선 씨가 살았던 2층 왼쪽 세 번째 방을 시뮬레이션했다. 한 사람이 살기에도 좁은 공간이라는 것이 와닿도록 시각화했다. 4~5평 남짓의 방에 많게는 8명, 적게는 3명이 함께 살았다. 화장실은 두 방 당 한 칸 씩 제공됐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단생활을 견뎌야 했다.
좋은 시설은 불가능할까? 취재진은 향유의 집을 자진 폐쇄한 김정하 이사장을 찾았다. 37년 간 운영된 향유의 집의 원래 이름은 '석암베데스다 요양원'이었다. 2007년, 재단의 횡령 및 비리문제로 이사장 일가가 법적 처벌을 받은 후 공익 이사회가 새로 꾸려졌다. 장애단체 활동가, 사회복지계 교수들이 참여했다. 운영 주체는 석암 재단에서 프리웰 재단으로, 시설의 이름은 요양원에서 향유의 집으로 바뀌었다. 프리웰 재단의 김정하 이사장이 향유의 집 이사장을 겸하게 됐다.
김 이사장은 이 시설에 살던 모든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시설 문제를 제대로 알게 됐다. 인권침해 문제가 있는 장애인 시설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수용하는 시설 자체가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닷페이스> 인터뷰에서 말했다. "시설의 집단 수용 생활 자체가 가진 폭력성, 억압, 배제, 분리가 문제였던 거예요."
외국에서는 이미 장애인들의 탈시설이 정책의 기본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과 유럽은 1960년대에 '대형 시설에 장애인을 수용하는 방식은 인권을 보장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1970년대부터 국가가 탈시설 정책을 추진했다. "한국은 2021년부터 탈시설 지원법을 논의하고 있으니 많이 늦은 거죠." 취재진에게 김 이사장이 말했다.
우리가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국가의 빈자리는 가족의 돌봄 노동이 메우고 있다. 취재진은 기사 2편에서 임현주 씨를 찾았다. 그는 중증발달장애인인 아들 서지원 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시설에 맡겼다. 하루 종일 아들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아들 지원 씨는 의사 표현이 어려워 물 한 모금 먹기가 어려웠다. 지원 씨는 점점 말라갔고, 자폐 증상까지 보였다.
임 씨는 장애인을 집단 수용하는 시설이 아닌 곳에서 아들이 지낼 수 없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 '장애와 인권 행동 발바닥'이라는 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지원주택을 소개해주고, '탈시설'을 권했다. 지원주택은 노인, 장애인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주거취약자를 위해 공공주택과 의료, 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복지제도다. 서울시는 이를 2019년부터 도입했다.
처음 탈시설 이야기를 들었을 땐 불가능해 보였다. 지원 씨의 아빠도 반대했다. 다른 시설을 찾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다른 시설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것이 뻔했다. 용기를 냈다. 이제 아들 지원 씨는 지원주택에서 자립해서 살고 있다. 지원 씨는 시설에서 나온 지 2주 만에 굽은 허리가 펴졌다. 체중도 많이 늘었다. <닷페이스>와 인터뷰할 당시, 어머니 임현주 씨는 3주 만에 아들의 집을 찾았다. 현관의 비밀번호가 바뀌어 있었다. 아들 지원 씨가 엄마로부터 독립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지원 씨가 사는 지원주택은 진정한 의미의 '집'이다.
탈시설은 단순히 현재 있는 시설을 모두 폐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주거, 복지, 돌봄 시스템이 종합적으로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닷페이스>는 탈시설을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라고 정의했다.
닷페이스가 남긴 에버그린 콘텐츠
2016년 창간한 <닷페이스>는 6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이번 여름 해산했다. 조소담 <닷페이스> 대표는 “재정적인 어려움도 있고, 소진되는 마음과 부족한 역량의 문제도 있었다”며 해산 이유를 밝혔다. <닷페이스>는 이제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다. 그러나 <닷페이스>가 남긴 기사는 여전히 유의미하다. 우리 사회가 풀어가야 할 굵직한 질문들에 방향성을 제시한다. 지난해 제작한 '당신 곁에 내가 살 권리'의 시의성과 중대성이 여전한 것처럼 말이다.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읽힐 수 있는 기사를 '에버그린 콘텐츠'라고 한다.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처음 등장해 한때 미디어 업계의 트렌드로 떠올랐던 단어다. <닷페이스>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나 적극적으로 함께 대안을 모색했다. 하나의 프로젝트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며 끈질기게 다뤘다. 하루 이틀의 시의성보다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그 결과 <닷페이스>의 기사들은 매체 발행이 중단되어도 계속 읽히면서 의미심장한 질문을 세상에 던지고 있다. 진정한 에버그린 콘텐츠다.
출처 :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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