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가치 없는 장애인 죽여라” 나치와 기재부, 무엇이 다른가?
작성자 2022-07-04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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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아침 7시 30분, 4호선 서울역 승강장. “예산없이 권리 없다”라고 적힌 분홍 몸자보를 입은 장애인 활동가 200여 명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십시오. T4를 아십니까?”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감독 애슐리 시킨)는 나치의 장애인 학살 프로그램 ‘T4(티포)’에 관한 단편영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는 “헌법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다고 되어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 40프로가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있다”라면서 “기재부는 기본적 권리 보장을 비용의 문제로 보고 예산의 선택과 집중에 관해서만 이야기한다. 장애인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고 교육받을 권리, 노동할 권리조차 보장하지 않는 대한민국 기재부는 히틀러의 나치가 자행한 T4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한국판 T4다”라고 말했다.
- “예산 낭비하는 ‘살 가치가 없는’ 장애인 죽여라” 나치와 한국, 무엇이 다른가?
1939년 독일 나치 시대. ‘살 가치가 없는 생명들’에 대한 학살이 이뤄졌다. 히틀러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싸울 힘이 없다면 살 권리도 없다. 약 7만 명의 장애인을 제거한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어떤 민족보다 ‘우월한’ 게르만 민족에게 장애인은 ‘하자 있는’ 생명이었다.
나치 정부는 “장애인 한 명에게 들어가는 일일 비용으로 건강한 일가족 네 명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고 홍보하며, 장애인에 대한 돌봄 비용이 노동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내용의 선전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러한 셈법은 수학교과서 문제로도 제시됐다.
이는 ‘T4 작전’이라는 이름의 장애인 집단 학살로 이어진다. 1939년부터 1941년까지 30만 명이 넘는 장애인이 학살됐는데, 여기서 쓰인 기술은 이후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을 절멸하는 가스실로 개발된다.
이는 우생학과 사람의 삶을 비용으로 환산하는 태도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그로부터 83년이 흐른 한국사회는 이와 얼마만큼 다른가. 전장연은 최근 반복된 발달·중증장애인 가족의 죽음에도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는 기재부의 태도를 “한국판 T4”라고 비판했다.
전장연은 지난해 12월 3일부터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비롯해 삭발투쟁, 지하철 오체투지 등 어느 때보다 강경한 투쟁을 하며 기재부에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기재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그러한 와중에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발달장애인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기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 7건으로 총 여덟명이 사망했다. 모두 지역사회 복지서비스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었다. 전장연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아래 부모연대)는 삼각지역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오는 10일까지 49재를 진행 중이다.
3.02. 발달장애 딸 살해 후 자살 시도한 50대 구속 영장 (경기 시흥시)
3.02. 8세 발달장애 아들, 입학식 날 살해한 모 (경기 수원시)
5.17. 조카에게 폭행당한 지적장애인 사망 (전남 여수시)
5.23. 40대 엄마, 6세 발달장애 아들과 투신 (서울 성동구)
5.23. 뇌병변·발달 중복장애인 딸 살해 후 자살 시도한 60대 모 체포 (인천 연수구)
5.30. 발달장애 자녀 모 투신 (경남 밀양시)
6.03. 발달장애 형제 홀로 돌보던 부 자살 (경기 안산시)
전장연은 최근에야 겨우 기재부와 간담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장연은 지난달 29일 기재부 간담회 결과에 대해 “‘혹시나’ 기대했지만 ‘역시나’였다”면서 큰 실망감을 밝혔다.
정부 측에서는 기재부 복지예산과장과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장만이 참석했으며, 장애계에선 법정단체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가 동석했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은 복지부가 관할하는 복지 예산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이동권 및 장애인지원주택), 교육부(장애인평생교육), 고용노동부(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 예산까지 포함하나, 복지부 외 관련 부처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은 것이다.
박경석 대표는 “간담회에서 기재부는 우리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또 두 시간 동안 설명해야 했다. 끝날 때쯤에 5월 말에 각 부처가 기재부에 제출한 예산안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봤지만 검토 중이라는 말만 계속했다”면서 “만약 기재부가 정부 예산안을 밝히며 이를 토대로 어떤 것이 보충되어야 하는지 묻는 성의 있는 태도만 보였어도 우리는 정부를 믿을 것이다”며 깊은 절망을 표했다. 이어 “출근길 지하철 시위로 시민들과 부딪히도록 기재부가 계속 몰아가고 있다”면서 32차 출근길 지하철 타기를 시작했다.
- “왜 4호선에서만 하냐”에 전장연 “대통령 집무실이 4호선에 있다”
아침 7시 58분, 짧은 기자회견 후 지하철 승차가 이뤄졌다. 이들은 전날 퇴근길 지하철 시위와 마찬가지로 상·하행선 두 팀으로 나눠 이동했다.
지하철을 탄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마이크로 “시민 여러분”이라고 외쳤지만,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사람들은 쉽게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든 사람들도 미간을 찌푸린 채 힐끗 시선을 던지다가 금세 거두었다. 대부분 지하철 안은 고요하고 사람들은 무신경했다. 그러나 마스크 위 눈초리도 말을 한다. 그 눈초리들은 활동가들이 지하철을 내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매섭게 허공을 가로질러 그들에게 꽂혔다.
지하철 내의 무신경함과 침묵의 눈초리는 시간이 갈수록 고성과 욕설로 점차 변해갔다. 활동가들이 상·하행선 지하철을 타고 내리며 평균 6~7분가량 지연된 것이 누적되면서 총 연착 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지하철 투쟁을 한 지 1시간가량 지나자, 시민들은 장애인들이 탑승함과 동시에 반말로 고함을 내지르며 쫓아내려 했다.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냐? 청와대 가서 해!”
“시민을 볼모로 잡고 왜 그러냐. 시민이 만만하냐!”
어젯밤의 폭우처럼 쏟아지는 욕설에 이형숙 대표는 “저희도 아침마다 이러는 게 죽을 맛”이라며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날 시민들은 유독 “왜 4호선에서만 하냐. 강남 가서 하라”고 여러 번 성화를 냈다. 이에 대해 박경석 대표는 “왜 자꾸 4호선만 타냐고 하시는데 대통령 집무실이 4호선 삼각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왜 자꾸 서민만 괴롭히냐며 장애인과 서민을 갈라친다”며 시민들에게 설명했다.
“시민 여러분, 정말로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런데 오죽하면 사람이 사람에게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겠습니까. 저희도 이 투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시민분들께 욕을 먹겠죠. 그 욕 먹겠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이 부모 손에 죽어가지 않는 세상 만들기 위해, 장애인이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지 못해 죽어가는 세상을 막기 위해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 T4 장례식,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상복을 입고 관을 들다
지하철 선전전을 마친 장애인들은 11시, 삼각지역 9번 출구 앞에서 열리는 ‘발달·중증장애인 T4 장례식’에 참여했다. 섭씨 30도에 오랫동안 태양에 달궈진 아스팔트. 손에 닿는 모든 것이 뜨거웠다. 폭염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사람들의 얼굴엔 땀이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무대 위엔 얼굴 없는 영정 여덟 개와 “국가는 더 이상 우리를 죽이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하지 마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힌 가관(假棺)이 자리했다. T4를 알리는 영상이 상영되는 대형 LCD 화면 뒤로는 낮게 뜬 새하얀 뭉게구름이 배경처럼 흘러갔다.
조영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인천지부장은 잇따른 발달·중증장애인 참사에 “비단 올해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그 전부터 쭉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나대로, 내 자식은 내 자식 대로 제 명만큼 살고 싶다”면서 이날 참석한 국회의원들에게 “발달장애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국회에서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T4 장례식에는 더불어민주당 남인숙·강민정 의원, 정의당 이은주·류호정·장혜영 의원,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 여러 국회의원이 참석했다.
윤진철 부모연대 사무처장은 “약 10년 전 서울 관악구에서도 발달장애 아버지가 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유서에는 ‘이 땅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으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자녀는 내가 데려가겠다. 미안하다’고 쓰여 있었다. 10년이 지났는데 무엇이 달라졌나”면서 “국회도, 정치도, 우리 곁엔 아무도 없었다. 더이상 죽지 않기 위해 싸우겠다. 제발 죽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상주의 마음으로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은 부모연대 소속 어머니 여덟 명은 얼굴 없는 영정 사진을 가관에 넣었다. 이들은 가관을 들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전쟁기념관까지 400미터가량 행진했다. 가는 길에 장애인 활동가들이 관 위에 국화를 한 송이씩 놓으며 애도를 표했다. 사람들의 손에 쥔 국화마저 녹여버릴 것 같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정부만은 여전히 무심하고 평안했다.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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