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원치 않는 진짜 이유
작성자 2022-05-1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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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3일 열린 JTBC ‘썰전라이브’ 토론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시설에서 나가고 싶지 않은 장애인이 더 많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당시 이 대표가 인용한 2020년 보건복지부 전수조사에 따르면 ‘시설에서 나가서 살고 싶은지’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33.5%, ‘그렇지 않다’가 59.2%로 확인됐다.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중복응답)를 살펴보면,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21.9%), ‘경제적 자립 자신 없음’(14.7%), ‘가족이 이곳에 있기를 원해서’(9.7%), ‘함께 살 가족이 없거나 찾을 수 없을 거 같아서’(4.8%)와 같은 사유가 상당수 존재한다. 모두 시설에 대한 만족과는 거리가 먼 이유들이다.
시설 외의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선택을 시설에 대한 만족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장애인이 탈시설할 선택지, 지역사회에서 자립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선택지를 마련하지 않았다. 시설 외의 선택권이 현실적으로 없는 현 상황에서의 선택(즉, 거주시설 외의 현실적인 다른 대안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의 선택)을 자율적인 선호와 만족에 따른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2012년 실시한 설문조사1)에 따르면, 비자발적인 시설 입소 비율이 82.8%에 달하였고, 자발적 입소 비율은 13.9%에 불과했다. 또한,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의 약 58%가 시설 밖에서의 생활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가 2017년 실시한 실태조사2)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비자발적 입소비율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경우 67.9%,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62.2%였다. 자발적 입소 중에서도 가족에게 부담을 주기 싫거나 자신을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입소하였다는 응답은 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정신요양시설의 경우 각 61.4%, 53.0%에 달했다. 이는 자발적인 입소 중에서도 상당 비율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호에 따른 선택이 아닌 외부 환경적인 요소에 의한 입소였음을 의미한다.
이를 종합해볼 때 이준석 대표의 발언은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또한, 장애인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는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탈시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충분한지에 대한 의문도 든다. 이에 아래에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에 비추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와 탈시설에서의 ‘시설’이 무엇인지 그리고 탈시설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란 무엇인가?
한국정부가 2008년에 비준하여 헌법에 근거해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이 인정되는 협약 제19조에 따르면 ‘모든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제19조의 핵심은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동참이다. 자립적 생활이란 자기 삶과 관련한 모든 결정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과 관련한 모든 결정이라 하니 언뜻 거창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누구와(또는 혼자) 살 것인지, 어디에 살 것인지, 몇 시에 잠들지 또는 일어날지, 무엇을 먹을지, 외출을 할지, 반려동물과 함께 살지 등 일상에서 시시때때로 마주하는 모든 선택을 의미한다. 유엔일반논평3)은 이러한 선택이 쌓여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결정하며 나의 정체성과 인격을 구성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자립적 생활은 필수적이다. 논평은 자립적 생활을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의 생활 형태와 일상 활동에서 선택과 통제의 기회를 빼앗기지 않음.”
‘지역사회 동참’은 지역사회로의 통합과 참여를 뜻한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사회적 활동과 참여를 통해 살아간다. 장애인 또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지역사회에서의 활동 참여를 보장받아야 함은 당연하다.
협약의 당사국인 한국 정부는 협약 제19조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장애인이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의 거주지 및 동거인을 선택할 기회를 가지고, 특정한 주거 형태를 취할 것을 강요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를 비롯한 지역사회 동참을 보조하는 서비스를 마련하고 기존의 주거, 교통, 소비, 교육, 고용, 오락 등 지역사회 서비스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 탈시설에서의 ‘시설’은 무엇인가?
탈시설에서의 시설은 특정 형태의 물리적 건물이나 조건이 아니다. 생활 방식과 일상생활에서 선택권을 행사할 수 없고 자율성이 부족한 모든 환경이 ‘시설’ 또는 ‘시설화된 환경’이다.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동참이 어렵다면 대규모 거주시설, 소규모 그룹홈, 심지어 혼자 사는 집도 ‘시설’ 또는 ‘시설화된 환경’에 해당할 수 있다.
최근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시설거주 장애인에 대한 사회 격리, 배제 등의 인권침해가 더욱 심각해짐에 따라 당사국이 탈시설을 이행하도록 ‘탈시설가이드라인’(초안)을 마련했다. 해당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나 질적 수준에 상관없이) “시설은 장애인을 보호하는 것도 아니고, 장애인을 위한 해결책도 아니고, 의료‧교육‧재활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적절한 형태도 아니다.”
이는 시설에서 본질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고, 자립적 생활의 권리를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결과이다. 따라서 가이드라인은 ‘시설에서 살기로 한 선택’은 ‘누구와 함께 어디에서 살지에 대한 선택’ 중의 하나로 간주할 수 없다고 말한다.
- 어떻게 탈시설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탈시설을 해야 할까? 가이드라인에서 제시된 탈시설 핵심원칙 중 일부를 소개한다.
① 탈시설은 법, 정책, 관행 모두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탈시설가이드라인은 시설화가 지속되는 근본원인으로 시설 대안 부재, 지역사회 내 지원 개발 부족, 장애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4) 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근본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법, 정책, 관행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시설 설립을 중단하는 법률 제정, 의사결정 지원제도 수립 등이 포함된다. 지난 2020년 12월에 발의된 탈시설지원법이 근본적 개혁을 위한 법률 제정의 예이다. 탈시설지원법은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동참을 위한 탈시설 지원과 점진적인 시설 축소‧폐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탈시설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다. 탈시설의 때가 무르익으면, 자원이 충분하면, 사회적으로 준비가 되면 등의 조건부적인 기대 아래에서는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동안 뿌리 깊게 익숙해진 시설화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 국가는 더 이상 자원 부족을 이유로 뒷걸음치거나, 장애인이 시설을 선호한다는 변명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탈시설의 첫걸음이 될 탈시설지원법 제정에 대한 적극적인 정부 의지가 필요하다.
② 탈시설은 장애인 당사자의 견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탈시설 과정에서 가장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견해를 가족, 서비스 제공자, 시설 등 서비스 제공단체의 견해보다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모, 형제를 비롯한 가족 또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의 의견이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앞서 논의한 것처럼, 여기서 장애인 당사자의 견해(또는 선택)에 ‘시설에 대한 선택’이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시설 외에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립하여 살 수 있는 선택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시설’에서 근본적으로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비롯한 자유권, 자립할 권리가 실현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이 시설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고 우리사회가 기만하지 않기를 바란다.
③ 탈시설은 더 이상 가족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탈시설 과정에서 우리가 또 하나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장애인 가족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가족에게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였다. 이를 버틸 수 없는 가족은 시설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탈시설에 대한 장애인 가족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에 대한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것은 협약이 예정하는 탈시설이 아니다. 가이드라인은 단호하게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인이 가족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장애인의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의 동참은 가족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의 의무와 책임이다. 국가가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탈시설이다.
탈시설은 일상의 매 순간과 함께하는 고민이다. 오늘 저녁에 뭐 먹지? 야식을 먹을까? 내일은 늦잠을 잘까? 누구와 함께 어디에 살까? 이러한 고민을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원천적으로 봉쇄당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모두가 자립하여 사회구성원으로 함께하는 세상이 속히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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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가인권위원회, 2012, 「시설거주인 거주 현황 및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
2) 국가인권위원회, 2017, 「중증·정신장애인 시설생활인에 대한 실태조사」
3) 일반논평은 협약의 내용과 의미를 구체화할 수 있도록 조약기구가 작성하는 해석으로 협약의 실질적인 이행을 돕는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에 대한 일반논평은 ‘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 포용에 관한 일반논평 5호’이다.
4) 대표적인 예로 장애인은 자립적 생활이 필요 없다거나, 장애의 정도와 유형에 따라서 자립적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거나, 중증 장애인에게는 시설이 오히려 더욱 안전한 보호방안이라는 주장은 시설화를 지속시키는 장애에 대한 편견 또는 고정관념이다.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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