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 인터뷰, 시인이어서 행복한 허상욱
시인안마원 원장 근무, 문예창작 강사로도 활동
2015년 계간 ‘시선’으로 등단, 4번째 시집 발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6-23 11:25:08
지난해 네 번째 시집 「너 내가 시집보내 줄게」를 발간한 허상욱 시인은 시각장애인이다.
2015년 계간 『시선』으로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질병으로 장애가 생겼지만 시인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을 더 잘 보고 있다. 일상성의 작은 틈새에서 시를 발견하고 삶의 기쁨을 노래한다. 시인의 작품 속 문구처럼 시인은 슬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무심한 목공소 하나 차려 놓았고, 그 목공소로 독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무심하면서도 애정 어린 그의 시선에 모든 사물은 이름을 얻으며, 시인의 따뜻한 감성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허상욱 시인은 ‘시인안마원’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대전점자도서관에서 시 문예창작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Q. 시를 쓰게 된 계기는?
2010년경, 근무하던 시술소에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도 건강이 좋아지지 않고 있구나. 내 육신에 두뇌에 너무 소홀하게 대하고 있구나. 무엇을 하면 좋을까.” 그래서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시각볼링, 두뇌 건강을 위해서는 글쓰기를 시작했지요.
볼링은 나름의 좋은 성적도 거두었어요. 전국체전 2인조 금메달 3개, 은매달 2개를 수상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처음부터 글쓰기를 ‘시’로 정하지는 않았었어요.
그러다가 활동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짧은 글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우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거기에 글자 수가 적은 글들을 매일같이 올리면서 시를 접하게 되었지요. 또 배재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찾아가기도 했어요. 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작은 발걸음이 었지요.
그곳은 2013년 3월부터 현재까지 지속해서 수강하며 글쓰기의 감이 떨어지지 않게 계속 출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해요. 담당 교수님은 강희안 교수님이세요.
또 대전맹학교 재학 당시 이언미 선생님이라고 국어 선생님께 글쓰기의 도화선 역할을 하신 분도 계세요.
맹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20년 다 되어 가는데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거든요. 두 분은 제게 퍽이나 고마우신 분들이에요.
Q. 2015년 『시선』에 등단을 하였는데, 등단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등단은 우연하게 했어요. 도서출판 ‘시선’을 아는 지인으로 소개를 받고 그저 내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내보자는 심사로 원고를 보냈더니, 보낸 원고 중에서 <흰구름> 외 두 편을 선정하여 등단하자 하시데요.
2015년 당시 약 1,500편의 쓴 시들 중에서 60여 편을 보냈었는데 등단은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지요.
등단의 의미도 모르고 그저 글만 쓰고 시집이나 몇 권 내보겠다는 생각이었던 것인데 말이에요.
Q. 지난해 네 번째 시집을 내고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는데 창작열이 대단하다. 시는 주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쓰는지?
새벽 두어 시간 5시에서 7시는 항상 글쓰는 시간으로 비워 두고 있어요. 제 컴퓨터의 폴더에는 지금도 완성된 시 200여 편과 쓰다만 것 500여 개가 들어 있어요. 오늘 들여다보고 수정하다가 안 되면 내일 또 들여다보고 그러거든요.
Q. 시집 출간이 어렵지 않은가?
시집을 출판하는 건 쉬워졌으나 글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게 확실해요.
일단은 시집을 내서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아주 복잡한 감정들이 오가는데, 그중 하나가 아쉬움이거든요. 적게는 좀 더 좋은 단어 선택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요 부분은 왜 삭제를 못해서 군더더기로 남게 만들었을까, 하는 아쉬움들이 남지 않게 하려면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하는 숙제가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다음 시집은 좀 오래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아마도 2025년은 넘어야 다음 시집이 나올 것 같아요.
Q. 우리나라에서 장애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나쁘지 않아요. 어떤 사람들은 비장애인들에 비해 사고의 폭이 좁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일부 맞기도 하지만 또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깨달음은 높은 곳에서 발견되기보다 낮은 곳에서 발견되는 이치와 상통한다고 할까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육신의 장애가 있는 것이지 마음에까지 장애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면 그 어느 누구보다도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벽은 스스로 만든 것이지 결코 세상이 만든 게 아니라 생각해요. 호메로스, 밀턴, 헬렌 켈러 그런 이들의 글을 읽으면 내가 말한 것들이 확연히 드러나거든요.
최근 시각장애인들이 쓴 시집을 여러 권 읽어 봤어요. 그 글들을 읽으면서 저는 왜 시각장애 인이면 그 장애의 고통을 재료로 삼아 글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좋은 필력을 가졌는데도 보다 한 차원 높은 시선이 발현될 수 있는데 하고 많이 아쉬움이 남아요.
Q. 시를 통해 세상에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생각하는 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라고 생각해요. 내가 쓰는 이유 이며 쓰는 방법이에요. 그 부분을 엿보듯 읽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Q. 후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생겼다고 하는데?
총 3단계로 실명을 했지요. 아홉 살 무렵 홍역으로 시력이 많이 떨어졌고요. 열아홉 살 무렵 그중 좋았던 쪽 눈을 결핵, 폐렴 등으로 고열이 발생하여 먼저 실명했고요. 나머지 한쪽은 스물아홉 살 무렵 초자체혼탁 제거수술을 하던 도중 망막박리가 발생했어요. 박리 수술을 거듭하다가 결국 각막 과다 염증 으로 완전 실명한 상태랍니다.
Q. 학교생활은?
일반 학교는 중학교 2학년 무렵 중단했어요. 평소 나를 지독히 괴롭히던 녀석 얼굴에 연탄재 를 퍽썩! 깨뜨리고 겁이 나서 집을 가출한 게 학교를 자퇴한 계기가 되었지요.
나의 소심함과, 눈 잘 보이는 녀석들의 세상과, 이런 나를 방치하는 부모님들에 대한 반항심을 녀석의 얼굴에 단숨에 깨뜨리고 뛰쳐나간 것이지요. 그러다가 완전 실명을 할 때까지 수십 종류의 공장생활을 떠돌아다녔지요. 2000년에 검정고시, 점자, 보행, 컴퓨터 등 일괄 교육을 마치고 2001년 대전맹학교에 입학할 당시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Q. 직업생활은?
실명하기 전까지 일하던 곳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 10여 곳도 넘어요. 한 반나절도 일하지 못하고 쫓겨난 곳에서 마지막 실명 전에 일한 곳은 9년 2개월을 일했는데요. 그곳이 바로 몸으로만 일하지 않고 머리로 일하는 것을 체득한 곳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맹학교 졸업 후에도 수원의 시술소에서 약 10여 년 동안 안마 일을 했어요. 안마사 평균 이직율이 6개월이라는데 좀 오래 일하기는 했네요.
Q. 시인안마원 대표인데 손님들이 시인인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시인 자체가 희한해 보이기는 한가 봐요. 얼굴을 다시 보고 그러데요. 실제 시집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도 계시고요.
Q. 대전점자도서관 시 문예창작 강사 활동을 하는 이유는?
강사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내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지속되더라 구요. 남에게 내 가진 걸 나누어 준다는 건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내가 조금씩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사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의 문화예술은 음악 쪽으로 많이 편중되어 있는 게 사실인데요. 제 생각은 이 문학예술도 얼마든지 시각장애인들이 완성할 수 있는 분야로 보고 있어요. 음악보다 더 늦은 나이에도 지속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요.
Q. 시인으로서의 바람은?
제가 3, 4집을 출판할 당시 독자와 작가와의 간극을 좁혀 보겠다는 생각을 하여 야심만만하게 출간을 했었는데요. 그런 방법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이제사 들어요. 교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나의 방향성을 지속하고 나만이 가진 색깔을 찾으려 해요.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살아생전 약 10여 권은 출판하고 죽겠노라 말한 적이 있었는데요.
앞으로 출판할 시집의 출고 기간이 길어진 만큼 나의 건강이 그때까지 유지되길 바래요. 더욱이 문운도 물질도 바라지 않아요.
Q. 장애문학인을 위해 필요한 지원 제도는?
전국 기관들에서 각종 창작 활동에 대한 강의를 구상하고 시행하다가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들었어요. 특히 시각장애인들 도서관에서요. 단숨에 어떤 결과를 얻기보다는 순차적 계단을 밟듯 설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양되어야 할 클라이언트의 몫도 관에서 풀어야 할 숙제인데요. 이를테면, 접근성의 유연성, 강사의 자질, 목적의 필요성, 대외적 홍보, 활용도 혹은 재미, 지속적 관리 등과 같은 과제가 다양하다고 봐요. 재미를 먼저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허상욱 대표작
메타세쿼이아
푸른 하늘을 우러른 것은
허공을 한껏 미분하고픈 욕구
흰 구름은 바람에 내맡긴 가지 끝에서
메타세쿼이아의 껍질 속을
수없이 셈한다
그 가지에 서식하는 작은 일꾼들과
한겨울에도 잠들지 않으리라던 약속까지
오월쯤엔
매듭진 뿌리에서 시작된 이등변 봄을
파릇파릇 풀어 갈 것이다
(제1시집 「니가 그리운 날」에 수록)
일당 빼먹기
대전 유성 먹자골목 일당뼈다귀해장국집*
장님들 마주앉아
얌얌쩝쩝 뼛골 빼먹고 있다
극돌기 횡돌기 관절돌기 사이사이
은근슬쩍 숨은 속살을 찾아
날카로운 이빨 여린 혀 낼름거린다
처음 맵고 뜨거운 그 덩어리의 손길은 엉거주춤 소극적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남의 등살 주물러 먹고사는 시원한 손이기에
골 빼먹는다는 건 늘 신나고 재밌는 일
주머니 속에는 척추 기립근 대둔근 주물러 주고받은 안마 일당 십여 만 원이 있고
유유상종 침묵이란 게 있기에
잠시 한때나마 이토록 끈끈한 식욕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치명적 뼈와 골의 사이는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기에
거기 깊숙이 박힌 살들은 쉽사리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다
일당이란 게 원래 다 그런 것이다
돼지 등뼈 수북한 뼈통엔 얼씬도 않는 공허한 눈길들
뿌옇게 서려 가는 김 너머
그들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는 것이다
(제2시집 「달팽이의 집」에 수록)
개밥그릇
깨끗이 핥아도 개가 먹던 것이라고 했다
여름 한철 의미 없는 빗물이 고이고
가끔씩 일그러진 주둥이로
훌쩍! 뒤집어지는 소리를 냈다
끼니마다 수신인 없는 날것들
누구보다 먼저 날아와 새카만 무리를 짓기도 했다
참말 같은 새들 몇 마리 찾아와
내 어설픈 발치를 쪼아 대기도 했다
심장까지 관통한 공복을 향해
흰 이빨을 날카롭게 드러내기도 했다
적절한 굴복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나를 챙겨 주는 일용할 그릇이었으므로
말에 베인 혀가 쓰라린 밤
젖은 코를 킁킁 맡아 본 적 있다
핥을수록 갈증이 더해 가는 이 비운 때문에
짓지 않으면 더 고파지는 이 운명 때문에
핥아도 다 핥아지지 않는 밥알 하나가
까만 손톱자국처럼 남기도 했다
보잘것없어도 내 것이기에
누구에게도 내어 줄 수 없다
(제3시집 「시력이 좋아지다」에 수록)
착시
덜컹덜컹 흔들리는 지하철 노약석에 세 사람이 앉아 있는데 귀
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젊은 한 사람은 자고 있고 두 사람은 깨어 있다
깨어 있는 사람 중 한 사람은 노인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젊다
시청역쯤에서 노인 한 사람 이들 앞에 다가와서는
깨어 있는 젊은이를 향해 버럭 호통을 치는데
“이봐! 젊은이, 거 나이 먹은 사람이 서 있으면 냉큼 자리를 양보해야지.
왜 눈만 장님처럼 말똥말똥 뜨고 있는 게야? 엉?”
날카롭게 뻗는 손끝이 맵다
순간, 젊은이 품속에서 하얀 막대기 다발을 꺼내는데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는데
“어이쿠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안 보여서….”
라고 말하며 불쑥 일어서는데
묶여 있던 막대 다발이 촤르르! 지팡이로 요술같이 변하는 거다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서
통로 저편으로 물 흐르듯 가서 섰는 거다
품속에 그걸 착착착! 다시 접어 넣는데
귀에 이어폰을 슬그머니 끌어당겨서 넣는데
머리 위 손잡이도 능숙하게 찾아서 잡는 거다
보시라,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듯
(제5시집에 수록 예정(부산점자도서관 시 문학 공모 대상 수상작))
고사리
내가 손바닥만한 죄에 사무쳐
낯을 들 수가 없어서 보다
더 습한 곳에
내 스스로 엎드려 기도하노니
사랑조차 구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내 목을 꺾는 이를 미워하지 않기 위하여
더 그늘진 곳에 고개 숙여
이슬처럼 눈물을 또 흘리노니
행여 누가 내 빛을 가리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며
죽을 때까지
더 깊이 웅크려 살게 하소서
(제4시집 「너 내가 시집보내 줄게」에 수록)
허상욱
2015년 8월 계간 『시선』 등단
2015년 시집 「니가 그리운 날」 출간
2017년 시집 「달팽이의 집」 출간
2020년 시집 「시력이 좋아지다」 출간
2021년 시집 「너 내가 시집보내 줄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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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국장애예술인협회 (klah1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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