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1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40대 여성 A씨가 6살 아이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는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며 복지관에서 심리치료와 미술치료 등 발달재활서비스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 A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했으나 심리치료 등을 위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이날 만난 A씨의 아파트 경비원은 “평소에 성실하고 인사도 잘하고 이웃과도 잘 지내는 가족이었다”며 “어떤 아픔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2 지난 3월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50대 여성 B씨가 중증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해 경찰에 붙잡혔다. B씨는 평소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 본인도 갑상샘암 말기 판정을 받자 상황을 비관하며 딸의 목을 졸라 죽이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정에 선 B씨는 “제가 죄인입니다. 딸과 함께 가려 했는데”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중증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 소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 이외에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담이 쌓여 아이를 살해하거나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는 등 많은 장애인 가족들의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복지뿐만 아니라 돌봄의 주체인 장애인 가족에 대한 상담 치료와 같은 복지 서비스가 절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적신호가 켜진 가족 돌봄자의 정신 건강
최근 서울시가 서울복지재단과 함께 진행한 ‘고위험 장애인 가족 지원방안 연구’에 따르면 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가족 돌봄자 374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36.7%는 우울·불안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응답자의 35%는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린 적이 있거나, 실제로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신 건강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는 △돌봄 스트레스 △경제적 문제 △우울·불안 등이 꼽혔다.
그러나 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곳은 없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50.8%는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고 답했고 67.2%는 지인 등과 자주 연락을 하지 않거나 만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를 받아도 이를 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동명 동덕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부모 특히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는 어머니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며 “돌봄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이 심한 경우가 많은 만큼 체계적인 지원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부모 상담치료 지원 있지만… 실효성 부족
장애인복지법 제30조의2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는 장애인 가족의 삶의 질 향상 및 안정적인 가정생활 영위를 위하여 장애인 가족 돌봄·휴식·상담 등을 지원해야 한다. 실제로 지자체에서도 장애인 가족의 상담치료나 휴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가 부족하고 조건도 까다로운 탓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발달장애인 부모 상담지원사업’의 경우 사업 예산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이용자는 많지 않은 상황이다.
이 사업은 발달장애인으로 등록된 자녀의 부모 및 보호자와 발달재활서비스를 받는 등 발달장애가 있다고 인정받는 영유아의 부모들도 월 3∼4회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를 지급하는 사업이다. 1인당 16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며 본인 부담금은 1회당 최대 4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상담 바우처 지급 기간도 짧고 여러 제약 조건도 많아 이용자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발달장애 부모가 심리 상담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12개월뿐이며 우울증이 의심되는 경우에만 1회(최대 12개월)에 한하여 지원 연장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해도 최대 2년까지밖에 지원을 받을 수 없다. 또 서비스가 종료된 사람은 향후 2년간 재이용이 불가능해 상담의 연속성이 끊기는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총연맹도 “상담은 지속성이 중요한데 2년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2년은 서비스를 못 받는 사업이라면 실효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