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들 “장애인 동료들, 시설에서 빨리 나오세요”
작성자 2022-05-26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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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주택 모델 구축사업 성과공유회’가 열리던 19일 오후 2시, 이룸센터 이룸홀 앞. 작은 전시회가 마련됐다. 전시회장에는 여러 물건과 짧은 문구가 담긴 액자들이 있었다. “김유경의 원피스”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연두색 원피스 옆 액자에는 “시설에서는 회색 추리닝만, 이제는 취향에 맞게 멋지게 꾸미고 출근한다. 나는 직장인!”이라 적혀 있다. 탈시설 후 소중해진 물건들을 진열한 전시회였다.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은 법인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의 탈시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 향유의집은 거주인 전원 탈시설 추진 후 지난해 4월 30일에 폐지했다. 지적장애인거주시설 누림홈, 중증장애인거주시설 해맑은마음터는 전원 탈시설 추진을 목표로 현재 운영 중이다. 이날 성과공유회에는 누림홈과 해맑은마음터에 장애인 자녀를 입소시킨 부모들도 참석했다.
김정하 프리웰 대표이사는 “부모님들이 탈시설장애인 당사자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됐을 때 당사자의 자립이 가장 좋은 성과를 보였다는 외국의 보고서들이 있다. 부모님들이 자녀의 자립을 생각하면 불안하고 걱정이 되시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성과공유회를 지켜봐 주시고 자녀를 위해 달리 고민해 주시길(탈시설·자립생활을 결정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2019년 12월부터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탈시설 한 후 프리웰지원주택에 입주하고 자립생활을 시작한 장애인은 총 57명이다. 지난 3년간 이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성과공유회에서 공개됐다.
-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 “지금 당장 탈시설하시고, 시설은 빨리 폐지하세요.”
성과공유회에서는 탈시설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발언하는 시간이 있었다.
2020년 9월, 누림홈에서 탈시설하고 지원주택에 입주해 자립생활을 시작한 허혁 씨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30분간 발언을 이어갔다. 시설에서의 삶과 지원주택에서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허혁 씨는 1992년 9월, 향유의집(구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입소했다. 그는 “시설에 있을 땐 모든 게 부정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약을 달라’, ‘소변통을 달라’ 등 아주 기본적인 요구를 해도 시설 직원들이 비하와 무시로 일관했다고 그는 기억했다. 그러다 1999년, 프리웰 산하 발달장애인 거주시설인 누림홈으로 전원됐다. 이후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의 권고로 탈시설했다.
허혁 씨는 처음엔 탈시설에 반대했다. 그렇지만 장애인에게 일대일 지원을 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시설 후,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
“탈시설하면 일대일 케어를 한다는데 장애인한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원주택으로 나와 보니까 제가 그동안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나오자마자 느꼈습니다.
한 가지를 해도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살게 됐습니다. 뭘 하든 부정적이었던 제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지원주택에 와서 제 모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일대일 24시간 케어가 100% 가능했고, 집도 주고, 돈도 주고, 일자리도 줘서 지금 무지무지 행복해요.
장애인 동료 여러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적극 탈시설하시기 바랍니다. 누림홈 거주인 어머니들도 거주인들을 시설에 두지 말고 빨리 탈시설시키시길 바랍니다.”
김현아 피플퍼스트서울센터 동료지원가는 마이크를 잡고 좌중의 환호를 이끌었다. 김현아 동료지원가는 올해 29살이다. 6살 때부터 해맑은마음터에 살았다. 2019년 12월에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해맑은마음터에는 자유가 없었어요. 눈치도 봐야 했고, 아침밥은 7시, 점심밥은 12시, 저녁밥은 5시에 먹어야 했어요. 9시에 자고 새벽 6시에 일어나라고 했는데 너무 싫었어요. 나도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 아직 시설에 있다는 게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해맑은마음터 시설에서 살고 계신 언니, 오빠,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처럼 좋은 집을 얻고 탈시설하세요. 그래야 행복해지고 자유도 생길 수 있고 먹고 싶은 게 있을 때 눈치 안 봐도 됩니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어요. 그리고 해맑은마음터 빨리 폐지하세요.
저는 4월 4일에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 첫 출근했어요. 제 꿈은 센터장이 되는 것입니다. 센터장은 남자만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여자도 할 수 있습니다. 저 솔직히 분위기 메이커고, 제가 분위기 띄우는 거 재미있지 않나요? 저는 무대를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나중에 꼭 센터장이 돼서 좋은 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의 발언 이후에는 시상식이 열렸다. ‘춤이 환상’, ‘흥부자상’, ‘순금보다 빛나는 꽃청춘 그대 상’ 등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수여하는 상이었다. 지난 2월,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사망한 고 신정훈 씨가 ‘함께해서 고맙고 당신의 뜻을 기릴게요 상’을 수상했다.
- 활동지원사 2.83명의 지원 받고 권리중심일자리 참여
박숙경 코융합심리치유연구소 소장은 ‘2022년 프리웰 시설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 및 지원주택 입주 후 삶의 변화 연구’를 발표했다. 그는 “지원주택에 입주해 자립생활 중인 사람들의 삶을 분석한 결과, 전반적으로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고 말했다.
박숙경 소장은 제임스 W 콘로이 결과분석센터(Center for Outcome Analysis) 박사, 김정은 코융합심리치유연구소 연구위원과 함께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2019년 11월 1일부터 올해 5월 현재까지, 프리웰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다가 프리웰 운영 지원주택으로 이전해 탈시설·자립생활 중인 33명을 일대일로 직접 만나 대면 조사했다.
33명 중 남성이 23명, 여성이 10명으로 남성이 2배 이상 많았다. 평균 연령은 52.33세였으며 최저 연령은 24세, 최고 연령은 69세였다. 연령대는 60대가 13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10명으로 뒤를 이어, 대부분이 중장년층이었다.
장애유형은 복합적으로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보행장애 27명, 지적장애 27명, 의사소통장애 21명 등이었다. 지원인력은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1명당 코디네이터 1명, 팀장 1명 등 총 2명이었으며, 평균 2.83명의 활동지원사 지원을 받았다.
32명은 생계급여와 장애인연금 또는 장애수당을 받고 있었다. 활동지원서비스는 1명 평균 국비 316.31시간, 서울시 224.69시간을 받았다. 활동지원시간은 최고 860시간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활동지원수급에서 탈락된 사람도 있었다. 33명 중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25명이었는데, 이 중 23명은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에 참여하고 있었다.
박숙경 소장은 “부모님들이 우려하는 건 지역사회로 나갔을 때 자녀가 방치되는 것 아니냐, 위험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연구결과, 그렇지 않았다. 개인별 서비스, 소득, 주거환경들이 좋아졌다. 관계가 다양해지고 가족관계 또한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 자립 후 달라진 삶: 사회활동 증가, 삶의 질 만족도 상승, 도전행동 완화
탈시설 후 사회생활 활동 횟수와 범위가 많이 늘어났다. ‘사회통합활동’은 대중이 존재하는 16개 장소로 1달간 외출한 횟수로 측정하는데, 시설에 있을 땐 사회통합활동이 평균 9.68회였지만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에는 55.68회로 증가했다. 사회통합활동 중 가장 많이 증가한 건 ‘식료품점 가기’다. 1.13회에서 14.16회로 늘었다. ‘대중교통 이용’은 0.9회에서 11.63회로 증가했다. ‘공원 또는 운동장에 가기’ 또한 1.16회에서 10.45회로 대폭 늘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선택과 자율성도 시설에 있을 때보다 크게 늘었다. 이 항목은 100점 만점으로 제시됐다. 점수가 낮을수록 자율성이 낮다.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을 것인지’가 시설에 있을 때는 12점이었는데 자립 후에는 59점으로 자율성이 약 5배 증가했다. ‘집안 또는 밖에서 누구와 놀 것인지’ 항목은 시설 27.27점, 자립 후 69.32점으로 이 또한 크게 늘었다. ‘애완동물을 기를 것인지의 여부’는 시설 10점, 자립 후 80점으로 8배나 상승했다.
삶의 질 만족도 또한 시설에 있을 때는 51.95점이었지만 자립 후에는 71.44점으로 상승했다. 외부활동 만족도가 38.46점에서 75점으로 크게 늘었고, 음식 만족도 또한 56점에서 82점으로 대폭 상승했다. 전반적인 삶의 질 만족도는 46.88점에서 71.88점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도 달라졌다. 시설에 있을 때는 시설 직원(43.28%), 거주장애인(28.36%), 활동지원사(11.94%) 순서로 가까운 관계라고 여겼다. 그러나 자립한 이후에는 지원주택 직원(26.04%), 활동지원사(19.79%), 친구(16.67%) 순서로 달라졌다. 여전히 서비스제공자 비율이 가장 높지만, ‘친구’가 3위를 차지하면서 관계 내용이 보편적 형태로 점차 변화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과 타인에게 문제를 일으키는 ‘도전행동’은 자립 후 4.6배 정도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숙경 소장은 “탈시설을 둘러싸고 중증장애인의 도전행동 심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것을 감안할 때 이 데이터의 의미는 크다”며 “도전행동이 장애로 인한 게 아니라 당사자가 살아가는 환경으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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