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일반 표현·면책특권 주장
재판 불출석·사과 안 해

인권위 ‘방지’ 권고도 무시
‘낮은 감수성’ 민낯 드러나

“일반적인 법적 절차를 거쳐 이의제기를 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한없이 미진하기만 한 거죠. 장애인들의 품위를 지켜주는 건 결국 정치의 몫 아닐까요?” 지체장애, 시청각장애, 정신장애가 있는 다섯 명의 차별구제 소송을 맡고 있는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29일 이렇게 말했다.

그간 정치인들이 다른 당 정치인을 비난하는 데 사용한 ‘장애인 모욕성 표현’의 부당함을 다투는 것이 최 변호사가 대리 중인 소송의 내용이다. ‘외눈박이’ ‘꿀 먹은 벙어리’ ‘성격장애’ ‘절름발이’…. 2019년 8월부터 1년간 정치인들이 공개석상에서 언급한 장애인 비하 표현만 17개에 달한다. 이 사건 선고는 다음달 15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지난해 4월20일, 장애인의날에 소를 제기한 지 약 1년 만이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사진)의 장애인 혐오 발언 논란이 크지만,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정치권의 무딘 감수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 변호사가 대리하는 장애인 차별구제 소송에 불성실하게 임하는 전·현직 의원들의 태도에서도 이런 행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피소된 전·현직 국회의원 7명 중 세 번의 변론기일에 한 번이라도 법정에 모습을 비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변호인 선임도, 서면 제출도 뒤늦게 했다. 재판장이 “피고 측도 좀 더 성의 있게 (재판) 대응을 하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피소된 전·현직 의원들은 “‘정신분열’ ‘외눈박이’ ‘벙어리’ 등의 표현은 일반화된 표현이고 장애인 비하 표현이 아니다”라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곽상도 전 의원은 ‘외눈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다가 피소됐다. 곽 전 의원은 지난해 6월4일 법정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외눈박이는 자연 상태에서 1만6000분의 1의 확률로 발생하는 기형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한쪽 눈만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어 만화나 동화 속의 가상 개체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국회의원들이 장애인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것을 두고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반박한 경우도 있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해 6월18일 법정에 제출한 답변서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 2월 기자회견에서 ‘집단적 조현병’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피소된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법정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직무상 발언이기에 면책특권의 대상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낸 장애인들은 해당 전·현직 의원들의 사과와 징계,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한다. 최 변호사가 말했다. “우리 사건 당사자분들이 그래요. 이제는 우리가 국회 앞에서 삭발이라도 해야 귀 기울여주는 거 아니냐고요. 절차적으로 이의제기를 했더니 어떤 정치인도 이 사건에 제대로 임하고 있지 않다고요. 모든 장애인운동이 처음부터 극단적이기만 했을까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어요.”

강연주 기자 play@ 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