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대표님,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작성자 2022-04-11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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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페이스북이었다.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 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3월25일 오전 8시45분 게시 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같은 취지의 글을 또 하나 올렸다. 이후 그는 주말 동안에만 장애인 지하철 시위를 비난하는 글 일곱 건을 올렸다.
시위가 예정된 3월28일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 앞은 취재진과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뒤엉켜 혼잡했다. 그러나 주말 동안 거듭 “시위가 지속될 경우 제가 현장으로 가서 따져 묻겠다”던 이준석 대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같은 당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안내견 조이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발달장애를 가진 가족이 있는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그의 곁에 섰다.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적절한 단어 사용이나 소통을 통해서 여러분과 마음을 나누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정치권을 대신해서 제가 대표로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김예지 의원이 무릎을 꿇었다. 김 의원의 갑작스러운 동작에 당황하던 조이가 엉거주춤 자세를 낮추고 엎드렸다. 플래시가 터졌다. 휠체어에 탄 장애인 활동가들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거나 눈을 감았다.
무릎을 꿇은 김예지 의원이 발언을 이어갔다. “또한 출근길 불편함을 토로하는 많은 국민들이 계십니다. 그 또한 우리 국민들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출근길 불편함은 상상만 해도 화가 나고 짜증나는 일입니다.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한 일 때문에 여러분이 불편함을 겪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장혜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정치가 필요한 자리는 바로 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스물다섯 번째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가 시작됐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출근 시간대에 맞춰 지하철을 타는 이 시위는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앞둔 지난 2월3일부터 이어져왔다. 이동권을 포함한 장애인의 기본권리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예산안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는 장애인 이동권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출근길에 지하철을 탑니다. 장애인도 탑니다. 아니 탈 수 있어야 합니다. 출근길에 지하철을 탄다는 말이 왜 특별한 말이어야 합니까.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해서 교육받지 못하고, 교육받지 못해서 일하지 못합니다. 이동권은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것 그 이상의 권리입니다.”
오전 8시17분, 안국역 방향으로 가는 3호선 열차의 문이 열렸다. 7-1번 승강장에는 휠체어를 탄 활동가 일곱 명이 있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지하철 보안관이 들고 있던 발판을 재빠르게 깔았다. 휠체어 바퀴가 승강장 틈에 빠지지 않도록 막는 장치였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외쳤다. “승강장 틈이 넓어서 바퀴가 빠지는 거지 이준석 대표 말처럼 일부러 끼워 넣는 게 아닙니다. 만약 승강장에 틈이 없고 높낮이 차이가 없다면 애초에 이 발판이 왜 필요합니까. 바퀴를 끼워 넣으려 해도 끼워 넣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문 사이에 걸쳐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맨 마지막에 있는 동료가 다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애인도 동료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사이 지하철 보안관 십수 명이 인파를 밀고 들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자리를 좀 만들어주세요. 옆 칸으로 이동해주세요. 이분들 못 타면 어차피 지하철이 출발을 못해요.” 기관사가 안내방송을 반복했다. “현재 장애인 지하철 시위로 인해 열차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출발하겠습니다.”
제일 앞에 있던 이형숙 회장이 인사를 건네며 인파를 뚫었다.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입니다. 저희가 왜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지 궁금하시지요?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고 계단을 올라가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2002년 발산역에서도 사람이 떨어져 죽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는 21년째 죽지 않고 이동하기 위해 싸워오고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외치면 ‘그래 이동해야지’, 장애인 교육권을 외치면 ‘그래, 교육받아야지’ 하는 말뿐입니다. 그동안 그 말에 책임지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저희가 직접 나왔습니다.”
다른 승객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아씨, 또 시작이야.” “아니 이걸 대체 언제까지 해.” “저 병_신들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 한도 끝도 없네.” 묵묵히 욕을 듣던 이형숙 대표는 “불편을 드렸다면”이라고 말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매일 말하지만 매번 이해할 수 없어서 끝맺기 어려운 문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욕설은 멈추지 않았다. “탈 거야 말 거야? 빨리 좀 움직여요.” “거지 같은 것들이 왜 지_랄이야.” “우리는 일하러 가야 돼, 너네는 직장이 있어 뭐가 있어?” 느린 휠체어를 탄 이들은 사람들의 욕설과 흘기는 시선을 피하려야 피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는 대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이형숙 회장의 전동휠체어 계기판에는 0.2㎞/h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수많은 욕설을 들은 척하기에도, 듣지 못한 척하기에도 곤혹스러운 속도였다.
지하철 보안관이 ‘교통정리’를 해주는데도 휠체어를 탄 사람 일곱 명이 지하철을 타기까지 8분이 걸렸다. 그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4호선 승강장으로 환승하는 데 다시 10분이 걸렸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비장애인 중 내려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없었다.
4호선 열차를 타도 험악한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사 카메라가 플래시를 비추고 노트북과 녹음기를 든 기자들이 있었지만 일부 승객들의 욕설은 거침없었다. 옆 칸에서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치던 한 남성은 열차 간 통로 문을 쾅 닫은 뒤 도로 노약자석에 앉았다. 한 남성은 내리기 전 이형숙 회장에게 다가가 말했다. “다 좋아요, 다 이해하는데 여기 와서 얘기해봤자 소용없으니까 인수위에 가서 이야기하세요.” 이형숙 회장이 대답했다. “인수위에 가서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신 만큼만 인수위에도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장애인의 속도가 이것밖에 안 돼서⋯.” 그는 다시 숨을 들이켰다. “죄송합니다.”
2008년부터 활동에 참여해온 이형숙 회장은 최근 들어 시위 현장에서 마주치는 젊은 세대의 반응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중장년층은 비록 욕을 하시긴 해도 ‘당신들 처지는 이해하는데 왜 나한테까지 피해를 주냐’는 거거든요. 그런데 젊은 청년들은 그게 아니에요. ‘내가 너 때문에 피해 입으면 어떻게 보상할 거야’라는 반응이에요. ‘당신들 처지는 이해하지만’이라는 앞 문장이 완전히 사라진 거죠. 이해를 못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이해를 아예 안 하겠다는 거예요. 그런 날것의 반응을 정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는 거고요. 그분은 ‘이제 더 이상 착한 척하는 정치인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던데, 착한 척하라는 게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대에게 합법과 불법을 운운하며 조롱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둘이 구분이 안 되나요.”
혜화역에 도착한 이들은 시위를 마무리했다. 박경석 대표는 이준석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말들이 전체적인 논리 차원에서도, 구체적인 팩트 차원에서도 모두 왜곡됐다며 하나하나 반박했다. “첫째, 저희가 3·4호선을 타는 이유는 서민들의 발목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3호선 경복궁역에 인수위 사무실이 있고 4호선 혜화역에 저희 사무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호선을 가리지 않고 모두 탔습니다. 둘째, 박원순 전 시장이 약속한 걸 왜 오세훈 시장이 책임져야 하느냐고 묻는데 서울 전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처음 약속한 건 2002년 이명박 시장 때고요, 그다음이 오세훈 시장이었습니다. 물론 두 분 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죠. 저희는 정권에 상관없이 항상 투쟁해왔습니다. 셋째, 탈시설과 평생교육법과 지하철 타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물으셨는데 이동권이 확보가 돼야 탈시설도 가능하고 평생교육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활동가들은 이준석 대표가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투쟁’을 ‘엘리베이터 설치 요구 투쟁’으로 축소시키는 점에 대해 우려했다. 실제로 엘리베이터가 모든 역에 100% 설치돼도 장애인은 원하는 목적지를 한 번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마다 한 대씩 있는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다시 동선을 짜서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안내하는 표시가 드물고, 있더라도 비장애인 눈높이에 맞춰져 있는 경우가 많다. 승강장 틈과 높낮이 차는 말할 것도 없다. 무엇보다 여기까지의 논의조차 모두 서울 지하철 중심이라는 데 한계가 있다. 저상버스와 장애인 콜택시 등 다른 공공교통을 늘리는 문제나 지역에 사는 장애인들의 공공교통에 대한 논의는 ‘엘리베이터 100% 설치’ 논박에 가려져버리고 말았다.
활동가들은 왜 이준석 대표가 갑자기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꽂혔는지’ 알 수 없다며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이준석 대표가 장애인 이슈를 말할 때마다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본인이 하버드 대학 다닐 때 선배 휠체어를 밀어봐서 그 고충을 잘 이해한다고요. 그래서 본인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분야에 대해 나름 선의와 동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줬는데, 이 사람들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계속 투쟁한다는 점에 대해서 화가 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이형숙 회장이 말했다.
3월28일 시위가 끝난 뒤 인수위원회에서 전장연과 면담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자 이준석 대표는 다시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불법시위를 해야 의견이 관철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기면 안 됩니다.” 이튿날 오전 인수위원회 사회복지문화분과 임이자 간사와 김도식 인수위원이 박경석 대표와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면담이 끝난 뒤 최용기 회장은 “많이 실망했습니다. 답변을 기대한 자리였는데 또 저희가 설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일단 장애인 차별철폐의 날인 4월20일까지 기다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라고 밝혔다.
이튿날 전장연은 약속한 4월20일까지 출근 시위 대신 매일 한 명씩 머리를 미는 삭발 시위를 하며 인수위 측의 답변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전장연이 다수의 일반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지해서 다행이고 환영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에 박경석 대표는 “인수위의 정중한 요구에 관해 답변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바꾼 저희의 행동에 대해 마치 비난 여론의 압박과 자신의 발언으로 인한 승리인 것처럼 자찬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느낍니다. 다시 한번 진중하게 공개 사과를 요구합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 대표가 “전장연의 불법 및 강경 투쟁이 전체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착화시킨다”라는 성명을 낸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의 영상을 공유하며 앞으로 해당 단체와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는 글을 게시한 데 대해서도 장애인 단체끼리 이간질시키는 행동을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첫 삭발에 나선 사람은 이형숙 회장이었다. 삭발에 앞서 박경석 대표가 말했다. “우리는 불법이라는 이유 때문에 다 처벌받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벌금을 냈고요, 수억 원의 돈을 냈습니다. 불법은 불법으로 처벌받는데 법에 명시된 장애인 권리에 대해서 지키지 않는 국가나 이 사회에 대해서는 누가 처벌합니까. 대통령은 누가 뽑고 시장은 누가 뽑습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머리를 민 이형숙 대표는 동료 활동가들과 따로 떨어진 채 혜화역까지 이동했다. 열차를 지연시키지 않으려면 함께 열차를 타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여기저기서 욕설이 날아들었다. 이준석 대표의 페이스북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활동가들이 경복궁역에서 혜화역까지 이동하는 동안 또 페이스북 게시글을 올렸다. 같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 비장애인보다 곱절의 시간이 걸리는 장애인들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사과 안 합니다. 뭐에 대해 사과하라는 건지 명시적으로 요구하십시오.”
혜화역에 도착한 박경석 대표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웃음을 지었다. “너무 빠르네요. 하버드 출신이라서 그런가 봐요. 이런 발언을 하면 또 페이스북에 올리시려나요.” 삭발 시위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지지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로 응답했다. 지지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이분들이 얼마나 많은 죽음과 상실을 디디면서 이 자리에 왔는지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감히 권력을 가진 자가 함부로 SNS에 언론 플레이를 할, 그런 투쟁의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 이제야 우리가 불편하다는 것은 기존의 삶이 이동권이라는 특혜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동권은 원래 특혜가 아니라 기본권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 특혜를 너무 모르고 멋대로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인질 삼아서 장애인을 협박하는 정치인들에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인질이 아닙니다. 혐오로 당신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서 저를 이용하려 들지 마십시오. 저는 이 시위가 불편하지 않습니다. 불편했던 사람은 언제나 장애 당사자였습니다.”
시위를 마칠 무렵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한 박경석 대표가 웃음을 터뜨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사이에 이준석 대표가 또 페이스북 게시글을 올렸어요. ‘김은혜 인수위 대변인이 언급한 당선자의 저상버스 공약을 만든 게 이준석입니다’라고요.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만든 저상버스 공약은 정말 너무나 허술합니다. 만약 인수위에서 고려하고 있는 공약이 그 공약이라면, 수정해주십시오.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머리를 민 이형숙 대표도 크게 웃었다. “같이 간다고 해서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짓밟고 올라서고 그러지 않습니다. 이준석 대표님, 너무 겁내지 마십시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2041105501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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