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연내 탈시설 조례 제정’ 발표한 서울시, 또 거짓말
작성자 2022-03-24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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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서울시는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를 연내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이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세 달이 지났지만 서울시는 “찬반 의견이 첨예해서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야 초안이 마련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계는 23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장애인탈시설지원조례 즉각 제정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서울시에 탈시설 정책 이행을 요구했다.
- 거주시설에 서울시 장애인복지예산 절반 편성, 탈시설 예산과 열 배 차이
서울시는 2021년 3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탈시설을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로 명문화하는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탈시설 정책 추진 시, 마땅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이에 관한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서울시 차원의 조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발표는 ‘제2차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2018~2022)’에 대한 2021년 시행계획 중 하나였다. 서울시는 4대 주요 정책 방향으로 △전국 최초 장애인 탈시설 조례 제정 △장애인 거주시설의 탈시설 지원 확대‧강화 △탈시설 욕구조사 등 프로세스 보완 △탈시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위한 주거 관리 효율성 개선을 꼽았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해 8월 정부가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에 따라 탈시설 정책 시범사업 지자체로 선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약속한 연내 조례 제정조차 하지 않았다. 장애계는 “현재 지원주택, 활동지원서비스 등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지원은 ‘서울시 지원주택 공급 및 운영에 관한 조례’와 같은 개별 조례에 일부 내용이 담겨 시행될 뿐, 탈시설 정책 전체를 아우르는 조례는 없다”면서 “따라서 탈시설 조례 제정 시 안정적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가 컸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2020년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서울시엔 281개의 거주시설이 있으며 여기엔 3654명의 장애인이 살고 있다. 현재 서울시 내엔 공동생활 가정 190개(723명), 단기거주시설 43개(464명), 중증장애인거주시설 25개(1454명), 지적장애인시설 15개(704명)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거주시설 운영에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예산의 절반가량이 쓰이고 있다. 올해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예산은 2817억 9109만 원으로, 이중 장애인거주시설 운영비가 47%를 차지한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한 해 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거주시설 운영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 35.0%(987억 8792만 원), 단기거주시설에 7.1%(200억 8265만 원), 공동생활가정에 4.9%(140억 2196만 원)가 들어간다.
반면 탈시설 관련 예산은 거주시설 예산의 10분의 1인 4.3%에 불과하다. 장애인지원주택 운영에 2.5%(70억 21만 원), 자립생활주택 1.4%(41억 8531만 원), 탈시설 정착금 등 탈시설 협치추진에 0.4%(13억 9160만 원)가 편성되어 있다.
- 복지예산은 지역사회 장애인 위해 쓰여야, 지방선거 전에 조례 제정 촉구
이수미 씨는 성남의 장애인 개인시설에서 15년, 서울의 단기보호센터에서 1년을 살다가 탈시설했다. 현재는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활동가는 “시설에선 자유도, 선택권도 없었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했고 차별적인 말을 들어도 갈 데가 없어 참고 지내야 했다. 지금은 자립하여 자유롭게 일하고 공부하면서 꿈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면서 “시설에 사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평등하고 사람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 권리가 있다. 서울시는 약속한 탈시설 조례 제정을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열 배가량 차이가 나는 거주시설과 탈시설 예산의 규모가 탈시설에 대한 서울시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오늘 기자회견 참가자 절반 이상이 탈시설 장애인들이다. 거주시설은 감옥이라고 이들이 증언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여전히 거주시설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면서 “서울시는 언제까지 거주시설에 장애인복지예산을 쓸 것인가. 이 예산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의 개인별 지원서비스에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울시는 작년에 탈시설 지원조례 제정하겠다고 보도자료까지 발표해놓고 왜 지금까지 제정하지 않고 있나. 거주시설 운영자가 무서운 것인가, 아니면 탈시설 반대하는 부모들이 무서운 것인가”라면서 “개인별 지원체계가 마련된다면 장애인 당사자가 감옥 같은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부모들은 절대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시가 탈시설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 않으니 부모들이 반대하는 것 아닌가”라고 규탄했다.
이 회장은 “6월 1일 지방선거 이전에 탈시설지원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조례 제정을 위해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선포했다.
-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장애인 권리
탈시설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 19조, 일반논평 5호에 명시된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다. 최한별 한국장애포럼 사무국장은 지난해 서울시에서 발생한 신아재활원 인권침해 사태에 대한 유엔의 목소리를 전했다. (관련 기사 : 장애계, ‘시설에서 죽어야 하는 사회’ 철폐하는 한 해 만들겠다)
최 사무국장은 “제라드 퀸(Gerard Quinn) 장애 특별보고관은 ‘신아원 사태는 협약의 가장 핵심적 조항인 5조(평등과 비차별)를 위반했다’고 지적한다”면서 “‘집은 사생활과 친밀함이 보장되는 공간이자 타인과 분리되어 쉴 수 있는 공간이면서도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공공영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하지만 시설은 이러한 집의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헌법에 근거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최 사무국장은 일반논평 5호에 규정된 당사국의 의무를 서울시가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최 사무국장은 “시설화가 만족스러운 정책으로 여겨지던 시절은 아주 오래전에 끝났다. 협약에 명시된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입법적·행정적 조치를 채택하고, 장애인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생활할지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법들을 폐지하는 것이 지금 바로 서울시가 해야 할 의무”라면서 “서울시가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조례를 만든다면 앞으로도 부끄러운 서울시의 현황을 계속해서 국제사회에 알려 나가겠다”고 경고했다.
- 서울시, 탈시설 반대 부모들 목소리 거세 조례 제정에 어려움 겪어
이러한 장애계의 목소리에 서울시는 “이제까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며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유섭 서울시 장애인탈시설팀 주무관은 23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작년 보도자료 발표 후 네 차례의 민관협의체를 통해 작년 말~올해 초에 초안이 마련됐다”면서 “민관협의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조례안을 만들다 보니 더 빨리하기엔 힘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민관협의체에는 장애인권단체, 학계(전문가), 장애인거주시설협회 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탈시설에 반대한다고 알려진 부모단체는 없다. 이에 대해 이 주무관은 “민관협의체 참여를 권했으나 거부하셨다. 탈시설 자체를 찬성할 수 없으니 조례안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대하는 부모들의 의견은 유선을 통해 수렴하고 있다”면서 “다양한 입장을 들어야 하다 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추진하기엔 어렵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즉, 탈시설 반대 부모 측은 논의 자리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당사자를 배제한 탈시설 조례 제정’이라는 목소리를 꾸리고 있는 것이다.
초안 내용에 관한 질문에 이 주무관은 “상위법이 없다 보니 조례 내용도 한계가 있어 선언적인 내용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또한, ‘찬반이 나뉘는 지점은 어떤 부분이냐’는 물음에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상반기에 서울시의회에 조례안을 발의해 올 하반기 조례 제정을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출처 :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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