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타인의 삶을 듣고 쓴다. 심각한 인권침해를 겪었거나 ‘소수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대상이다. 활동이 쌓이면서 그간 별러온 구술기록의 경험을 이야기하게 될 때가 생겨났다. 강의를 반복하면서 어디에서도 통용될 인터뷰와 기록의 기본원칙이라 할 만한 것들이 정리됐다. 그 경험과 기술이 어느 날 부서지기 시작했다. 다른 언어와 다른 감각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다.
만화 <똑같이 다르다>의 한 장면 / 사계절
가령, 이런 것이다. 인터뷰할 때는 구술자의 말 이외의 다른 표현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한다. 이것이 기본원칙일 수 없음을 깨달은 건 강의를 듣던 비장애인들 사이에 있던 한 시각장애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다. “아, 비장애인들에게는 그런 게 중요하군요.” 타인과 만날 때 그에게 예민해지는 감각은 청각이라고 했다. 목소리의 질감과 높낮이, 말투와 단어 선택이 주는 정보를 시각에 의존하는 나보다 더 많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언어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과의 대화는 비장애인들의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말과 글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했다. 어떤 중증발달장애인과는 몇시간 대화를 하고도 ‘의미 있는’ 말을 채 몇장도 채우지 못했다. 정말로 곤란했던 건 내가 그의 세계에 얼마나 다가갔는지, 우리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가늠조차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것이 아예 불가능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더 부끄럽게 했다. 다른 세계 앞에서는 세계를 인식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꿔야 했다. 그러한 깨달음 이후 나와 다른 몸, 다른 감각을 지닌 사람,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의 접점을 넓히는 일에 좀더 부지런해지려 애쓴다.
김성희의 만화 〈똑같이 다르다〉는 특수학급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된 ‘나’의 이야기다. ‘나’는 “교실에 있을 때 아이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 더 잘 보였다”고 말한다. 다른 존재를 만날 때 ‘나란 사람이 갖는 여러가지 선입견’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이 발견으로 ‘나’는 “이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지낸다는 건 무엇일까” 질문하기 시작한다.
한국에는 23만명이 넘는 발달장애인이 있다. 대다수 비장애인이 발달장애인과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기 낯설어한다. 특수교육법 시행 후 14년이 흘렀지만, 통합교육은커녕 특수학교를 지어달라고 부모들이 무릎을 꿇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시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이 3만명, 그중 8할이 발달장애인이다. 장애인이 시설을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 장애계가 여의도에서 농성투쟁에 나선 지도 300일이 넘었다.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발달장애인들과 동료 시민 되기를 시작해보면 어떨까? 김성희의 〈똑같이 다르다〉에 이어, 여기 발달장애인과 주변인들의 삶을 담은 만화를 몇편 소개한다. 장차현실의 〈또리네 집〉, 유영의 〈열무와 알타리〉, 한수자의 〈우리는 핑퐁가족〉, 네이버 베스트도전에서 연재 중인 노아의 〈제제와 함께〉는 모두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여성들이 그리는 가족 이야기다. 돌봄을 주로 여성들이 맡는 현실이 엿보인다. 김금숙의 그래픽노블 〈준이 오빠〉는 자전적 이야기는 아니지만 실화에 바탕을 뒀다. 픽션인 강풀의 〈바보〉, 이준의 〈다정한 겨울〉 등을 포함해도 언급할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박희정 기록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