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의 양육 분투기] ① 편견에 맞서다
작성자 2022-02-2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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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의 양육 분투기] ① 편견에 맞서다
딸 사진을 찍지 못하는 엄마. 이하림(가명·29)씨는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가진 시청각 중복(데프블라인드·Deaf-Blind) 장애인이다. 시력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청력은 보청기를 껴야 가까운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보청기를 껴도 안방의 아기 울음소리를 거실에서는 잘 못 듣는다. 두 살 많은 남편도 시각장애인. 두 사람은 양가 부모 도움 없이 아기를 키우는 ‘장애인 부모’다.
부부는 고교 시절 특수학교 선후배였다가 하림씨가 스무 살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동거하다 재작년에 아이를 가졌고, 결혼식 없이 출산 전 혼인신고를 했다.
대구에서 태어난 하림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서울 큰 병원에도 가봤지만 시력을 되돌릴 수 없었다. 13세 때 특수학교로 전학했는데 이윽고 귀도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각장애 3급 판정을 받아 14세 때부터 보청기를 착용했다. 보청기를 빼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태가 된다.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가진 시청각 중복장애인 이하림(가명)씨가 지난달 14일 자택에서 딸을 일으키고 있다. 권현구 기자
임신은 순전히 계획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아이를 갖고 싶던 부부는 2018년부터 난임 치료를 받았지만 잘 되지 않아 포기하고 있었다. 마음을 비우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들어섰다.
아이를 원한 이유를 묻자 하림씨는 “장애인이기 전에 나도 인간”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떠나 그냥 여자로서, 한 사람 인간으로서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고 싶었어요.” 딸은 지금까지 검사에서 장애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재작년 임신을 처음으로 확인한 산부인과 의사는 축하한다는 말 없이 ‘테스트기에서 임신으로 나옵니다’고 했다고 한다. 의사는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그전까지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아 처음 간 곳이었다. 계획 임신이라고 말해주니 그제야 안심한 눈치였다.
하림씨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아기를 키운다. 활동지원사는 평일 오전 4시간가량 식사준비와 청소, 빨래 등 가사 일을 하고 아기도 조금 봐 준다. 하림씨는 중증장애여서 더 많은 활동지원 시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지원을 더 받을 생각이 없다. “그래도 제가 엄마잖아요. 진짜 어려운 부분만 부탁하고 최대한 제가 양육하고 싶어요.”
시청각 중복장애 엄마의 육아는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하루는 새벽 3시쯤 아기 몸이 너무 뜨거웠다. 보통 한 번 먹일 분량의 해열제를 미리 준비해두는데 이날은 준비된 해열제가 없었다. 응급실도 갈 수 없어 119에 전화를 했다. “부모가 시각장애인인데 아이가 열이 많이 나요. 와서 체크만 해주세요.” 구급대원의 도움에 열은 곧 내렸다.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가진 시청각 중복장애인 이하림(가명)씨가 지난달 14일 자택에서 14개월 딸과 눈을 맞추고 있다. 권현구 기자
책을 읽어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점자책을 대여했지만 아이는 책을 장난감으로 알고 찢으려 했다. 일반 책을 아이가 들고 올 때마다 난감하다. “무슨 그림인지 알 수 없고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여기 그림이 있네’ 정도로 말해줄 수밖에 없어요.”
부모가 장애인이라 세상이 아이를 함부로 대할까 걱정이다. “TV에 아동학대 이야기 많이 나오잖아요. 비장애인도 빨리 눈치를 채기 어려운데 저희는 더 어려우니까요. 이런 상황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림씨 부부는 시각장애인 일자리 사업 등으로 일을 한다. 현재 월 200만원가량 수입이 있어 기초생활수급자도, 차상위계층도 아니다. 활동지원 외에 장애 부모로서 아이를 키운다고 받는 정부 지원은 없다. 하림씨는 “장애 아이가 있을 경우 지원이 많은데, 부모가 장애인이고 아이가 비장애인인 경우는 지원이 하나도 없다”면서 “아이를 키우는 장애 부모가 있다는 게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분명한 점은 장애인 여성의 출산이 해마다 1000건 이상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2020년 9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장애 여성 출산 건수는 2017년 1574건, 2018년 1434건, 2019년 1323건이다. 2019년 전체 출생아 수가 30만2700명이었으므로 태어나는 아이의 0.4%는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장애인 부모는 아이도 자신처럼 장애를 가질까 봐 두려워한다. 복지부가 2019년 펴낸 ‘40주의 우주’(장애인 부부를 위한 임신·출산 매뉴얼)에 따르면 시각·뇌병변·지적장애 부모에게서 이런 두려움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장애는 유전될 것이라는 인식은 세간에서도 팽배하다. 그렇지만 아이는 비장애인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2020년 실태조사에서 장애인의 96.7%가 ‘자녀가 장애가 없다’고 답했다. 장애의 80%가 후천적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장애인이고 아이는 비장애인(혹은 장애인)인 가족. 이런 가족은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장애인 가족을 ‘장애인 아이와 그 애를 키우는 비장애인 부모’로 여기는 통념 탓이다. 장애인 부모는 장애 그리고 이로 인한 가난 탓에 육아와 양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충분한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장애인은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에 상처받는 경우가 많다. 결혼한 성인의 보편적인 욕구이자 권리인 임신, 출산, 양육의 기회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헌법 제36조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돼 있다.
취재팀이 지난달 5일 전북 전주 미경씨 집을 찾았을 때 아이 두 명이 집안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큰딸 은하(11)와 아들 하늘(9)이었다. 막내 은서(8)는 유치원에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장애가 없다.
미경씨는 장애 탓에 식사준비, 청소 등 가사일을 할 수 없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우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아주지 못했다. 육아에서 물리적인 일은 모두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다.
아이 셋을 키우는 장미경씨의 전북 전주 자택 곳곳에 가족 사진이 걸려있다. 전주=이한결 기자
그렇지만 정서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생활수칙을 정해 지키도록 한다. 오후 8시에 자기, 욕하지 않기 등이다. 규칙을 잘 지키면 칭찬 도장을 찍어 준다. 학교와 유치원 등·하교도 미경씨가 장애인 콜택시를 불러 동행한다.
미경씨 가족을 10년 동안 지켜봤다는 활동지원사 박기쁨(32)씨는 “장미경씨가 애들한테 애정을 정말 많이 쏟는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엄마를 엄청 많이 따르고 의지하죠. 문제가 생겼을 때 엄마한테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하고요. 엄마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 다녀온다고 하면 애들 셋이 나란히 앉아서 대성통곡 수준으로 울어요.”
큰딸 은하가 올해 소망을 쓴 종이를 취재팀 기자에게 보여줬다. ‘엄마가 병원을 아예 안 갔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엄마랑 함께 비행기를 타고 싶다’ 등이 적혀 있었다.
뇌병변장애인 장미경씨의 큰딸이 지난달 5일 전북 전주 자택에서 직접 적은 2022년 소망을 들어보였다. 딸은 '엄마가 병원에 아예 안 갔으면 좋겠다 (응급실X)'라고 적었다. 전주=이한결 기자
미경씨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세 살에 시설에 맡겨졌다. 아버지는 중학교 때 시설에 한 번 찾아왔지만 그 뒤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23세에 시설에서 나온 미경씨는 장애인 자립생활을 돕는 체험홈에서 살았다. 장애인권익운동을 하던 중 비장애인 남편을 만나 결혼해 아이들을 낳았지만 재작년 이혼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생계급여와 주3일 장애인 일자리로 버는 돈 등 월 140만원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미경씨는 “가족 없이 자라서 아이를 낳고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네 몸도 힘든데 왜 아이를 낳니’ 하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런 의식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장애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아팠고, 못 걸었고, 손도 불편했어. 그래도 너희를 사랑한단다.”
2018년 서울대 석사학위 논문 ‘여성장애인의 양육 효능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를 쓴 김혜빈씨는 논문에서 여성 장애인의 경우 ‘정상적인 여성’의 상실이라는 사회적 시선에 대항하고자 출산과 양육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장애 수준이 중증일 때, 차별 경험이 높을수록, 자녀와의 상호작용 만족도가 높을수록 장애인의 양육 효능감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취재팀과 만난 장애 여성들도 출산과 양육에 큰 가치를 부여했다. 뇌병변장애인으로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손윤경(가명·40)씨는 “아기들이 주는 행복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내가 비록 불편하게 태어났지만 이렇게 자식을 세상에 남겨놓을 수 있다는 건 너무 경이롭고 축복받을 일인 것 같아요.”
세 살 딸을 키우는 시각장애인 한선화(가명·36)씨도 “결혼했으면 아이를 낳고 싶은 게 당연한 것 같다. 내 분신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장애인의 양육은 아직 낯선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편견이 오히려 더 많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비장애인 605명을 대상으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69.4%가 ‘부모가 장애인일 경우 자녀가 장애를 가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69.9%는 ‘직접 양육이 어려운 장애인 부부는 임신이나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답했다. 다만 94.0%는 ‘국가와 사회는 장애인 모·부성권 보장을 위해 임신, 출산, 양육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2020년 장애 부모의 자녀 양육에 관한 현안 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장애인이 결혼하기 쉽지 않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굉장히 깊은 편견이 우리 사회에 있다”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이동환 권민지 기자 keys@kmib.co.kr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2021504071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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