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 양육 분투기] ③ 험난한 자녀의 사춘기
작성자 2022-02-25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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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부모입니다-장애인 25인 양육 분투기] ③ 험난한 자녀의 사춘기
“미안해, 엄마가 안 보여서.”
시각장애인 정승아(51)씨는 초등학교 참관수업이 끝난 뒤 아들에게 사과했다. 다른 엄마들은 아들, 딸이 손을 흔들면 눈을 맞추고 미소로 답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그는 멀뚱멀뚱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승아씨는 아들이 받았을지 모를 상처가 걱정됐다. 어려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귀가한 아들 손에 들린 가정통신문을 읽을 수 없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 내용을 파악한 뒤에는 숙제를 도와야 했다. “왜 이렇게 엄마가 해줘야 하는 숙제가 많은지 너무 고생했죠. 활동지원사 선생님들도 연세가 많아 만들기를 같이 해주거나 문제를 풀어줄 수는 없거든요.”
지금은 23세, 17세가 된 두 아들을 키우는 동안 승아씨는 자신의 장애로 아이들에게 불이익이 생길까 독하게 마음을 다잡았다. 남들이 하는 경험은 다 시켜주고 싶어 주말마다 연극, 뮤지컬, 주말농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다. 아들 친구들이 장애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시로 집에 초대했다. 손을 데어가면서 음식을 해 먹였다. “(장애 탓에) 못 해주는 것에 대한 콤플렉스인가 생각이 들 만큼 많이 신경 썼어요. 아들에게도 ‘장애는 그냥 불편한 거지, 절대로 이상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야’라고 자주 말해줬죠.”
첫째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한 뒤 양육 난도는 더욱 상승했다. 과목별 학원 정보를 얻는 것부터 일이었다. 이름난 학원에 보내려면 여러 준비물부터 레벨 테스트 준비까지 챙겨야 할 게 많았다. 승아씨에겐 학원 정보를 공유할 다른 학부모가 없었다. 장애로 학부모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용기 내 참여한 모임에서도 은근히 배척당하거나 무시당했다.
중증 지체장애인 최혜진(가명·왼쪽)씨와 첫째 딸 심은혜(가명)양이 지난달 20일 서울 구로구 자택 앞 골목을 걷고 있다. 최씨는 자신의 장애로 딸이 사춘기를 더 힘들게 겪을까 걱정이다. 최현규 기자
학원 문제보다 무서웠던 건 ‘중2’ 아들에게 찾아온 사춘기였다. 순하기만 했던 아들은 그 무렵 변해갔다. 엄마와 함께했던 복지관 체험 활동에 나가는 걸 거부했다. 읽고 쓰는 영역에서 엄마를 도왔던 일도 더 하기를 주저했다. 서운한 마음에 “엄마가 널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데”라고 말하는 승아씨 가슴에 아들은 비수를 꽂았다. “(엄마가 데리고 다닌 곳들) 난 가기 싫었어. 시각장애인 자녀로 사는 건 참 피곤해.”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가는 아들을 승아씨는 붙잡을 수 없었다.
‘중2’는 둘째 아들에게도 찾아왔다. 어느 날 귀가한 아들이 “친구들이 내 옷을 보고 ‘그 브랜드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며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승아씨는 그동안 바자에서 저렴한 옷을 사 입혔다. 아이들이 어떤 브랜드 옷을 입는지 몰랐다. 그 길로 아들 손을 붙잡고 백화점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 가 100만원을 카드로 긁었다. 현재 두 아들은 승아씨의 든든한 지원군이지만 청소년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각각 뇌병변장애와 중증 지체장애를 가진 구미선(49)·노재옥(55)씨 부부는 19세, 12세 아들 둘을 키우면서 자신들의 장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심했다. “아빠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어려울 테지만 누가 대신해줄 수 없고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재옥씨는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렇게 말해줬다. 마음을 단련시키려고 태권도를 가르쳤다. “어려움이 있으면 엄마나 아빠, 삼촌, 이모 누구에게든 털어놔라. 이야기하고 풀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재옥씨 부부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려고 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그런데도 위기는 찾아왔다. 첫째 아들은 사춘기에 자주 울며 집에 들어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이 부모의 장애를 들먹이며 놀리고 따돌리는 것 같았다. 미선씨와 재옥씨는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하지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학교에 가서 항의할 수 있겠지만 애들이 널 더 놀릴까 걱정돼. 엄마 아빠의 장애는 지금 어떻게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야.” 가슴은 아팠지만 어떤 보호도 해줄 수 없었다.
어느 날 아들은 부모 앞에서 죽음을 입에 올렸다. 어렵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지관을 찾아 상담을 받으며 상황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후에도 왕따 문제로 힘들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도 타들어 갔다.
중증 지체장애인 임형찬(오른쪽)씨가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자택 앞 놀이터에서 철봉 운동을 하는 아들 두현군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결 기자
중증 지체장애인 김정미(가명·54)씨도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딸의 성장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미씨는 24세 때인 1992년 교통사고로 척수장애가 생겨 사실상 전신이 마비인 상태다. 남편도 오른쪽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딸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친구들로부터 ‘너희 엄마 아빠는 장애인이고 외계인이야’란 놀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정미씨가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그건 나쁜 말이야. 그런 말 쓰지 말라고 이야기해”란 당부뿐이었다.
부모의 장애를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이는 듯했던 딸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엄마와 함께 다니는 걸 피하기 시작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짜증 섞인 반응도 보였다. 정미씨는 “엄마, 아빠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친구들이 볼까 봐 염려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미씨는 딸의 정서가 걱정이다. 장애가 심한 그는 밤낮으로 활동지원사 도움을 받는다. 지금도 활동지원사 5명이 교대로 그를 지원한다. 어린 딸로서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이 시간대마다 다르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사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아 딸의 보조 양육자는 계속 교체됐다. 야단치거나 잔소리하는 사람이 시간대마다 바뀌자 딸은 방에만 틀어박혀 있는 등 정서적인 불안함을 노출했다. 다만 장애가 비교적 덜한 정미씨 남편과는 애착 관계가 형성됐다. 정미씨는 “아빠는 같이 장난도 칠 수 있는 친구 같은 사람이고 엄마는 약간 무섭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장애인 부모들도 자녀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양육 어려움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장애인 부모들이 각자 알아서 해야 했다. 이 시기 장애인 부모 양육에 도움을 주는 제도적인 장치는 사실상 공백 상태이기 때문이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서 만 49세 이하 여성장애인의 13.3%가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자녀 양육지원을 꼽았다. 이는 활동지원사(11.3%) 출산비용 지원(10.2%)보다 높은 수치다. 2020년 장애 부모의 자녀 양육에 관한 현안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장애인 부부가 자녀를 낳는 확률이 굉장히 높지만 지원은 출산 상황 정도에 그치고 양육 과정에 대해선 지원제도가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자녀 양육 시기 장애인 가족을 위한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이들의 심리적인 측면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박지주 서울장애여성인권연대 대표는 “성장기 아이들은 사회적으로 부모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충격이나 상처를 떠안게 된다. 부모의 장애로 놀림감이 된다거나 ‘어딘가 부족하지 않을까’란 시선을 받기 때문”이라며 “장애 부모를 둔 초·중·고생 관점에서 감정·정서·사회성을 코치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교사·학부모와의 연대에서 소외되기 쉬운 장애 부모가 학업 관련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주 대표는 “부모가 참여하는 수업 프로그램이나 학부모 모임에 장애 부모들은 참여가 어렵다”며 “학부모 네트워크나 자녀 멘토링 활동 같은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증 지체장애인 임형찬(47)씨는 스스로 장애를 받아들이고 아들 두현(14)군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애쓰고 있다. 뇌성마비로 다리를 잘 쓰지 못하지만 운동회, 상담 등 학교 프로그램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중증 장애인 스포츠 ‘보치아’를 아들과 함께 즐긴다. 서울 노원중증장애인독립센터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그는 “우리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중증 지체장애인 임형찬(왼쪽)씨와 아들 두현군이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자택 앞에서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두현이는 자신 있는 모습으로 주변 사람을 대하는 아빠의 모습에 장애를 왜곡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몸이 안 좋은 부모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제 곁에 항상 있어 주시고 잘 챙겨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형찬씨는 자녀를 키우는 장애인 가족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빨래 할 수 있는 사람한테 빨래 서비스를 지원하고 비행기 탈 일 없는 사람들한테 장애인 할인 50% 해주는 건 예산 낭비”라며 “획일적인 소득 기준에 따른 지원이 아니라 필요한 게 뭔지 파악해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과 호주 등 복지 선진국에선 부모의 장애 유형이나 장애 가정별 특수성에 따른 맞춤형 지원 서비스가 있다. 전담팀이 각 가정에 파견돼 장애 부모를 면담하고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허민숙 조사관은 “우리나라는 장애인 부모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신청에 따라 복지의 유무가 결정된다”며 “장애 부모의 필요에 부응한 지원이 폭넓게 제공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슈&탐사팀 권기석 이동환 권민지 기자 huan@kmib.co.kr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20217000318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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