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툴지만 내 의지대로..탈시설 장애인들의 '처음 만나는 자유'
작성자 2022-01-05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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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박창능씨가 지난달 31일 일을 마친 뒤 스스로 편의점에서 담배를 구입하고 결제를 하고 있다. 박씨의 모든 일과에는 활동보조사가 동행한다. |양천구 제공
장애인 탈시설은 문재인정부가 집권 초기 내걸었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장애인이 집단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는 것으로, ‘그 어떤 인간도 거주의 자유를 제한받아서는 안된다’는 명제를 근거로 한다.
정부는 그러나 지난해 8월에서야 탈시설 로드맵을 내놨을 뿐 이렇다할 정책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명시하고 탈시설 전후 지원체계 구축 등을 담은 ‘장애인 탈시설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의 탈시설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기저에는 ‘장애인이 과연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깔려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장애인지원주택에서 최근 만난 박창능씨(61)는 이런 의구심을 무색하게 했다.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갖고 있는 박씨는 왼쪽 팔과 손이 몸쪽으로 굽어 거의 쓰지 못한다. 대화는 네다섯 살 아이 수준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일상생활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박씨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인 ‘누리홈’에서 살았다. 거의 평생을 수십 명이 한 집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같은 시간에 먹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잤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밥 안 먹고 싶어도 선생님이 ‘가서 밥먹어’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다.
‘자유’는 그가 59세가 되던 2020년 9월에야 찾아왔다. 박씨가 어릴 적부터 지냈던 시설인 ‘해맑은 마음터’와 성인이 된 이후 머문 ‘누림홈’은 모두 옛 석암재단(현 프리웰) 소속 장애인 집단거주시설이다. 석암재단에는 또다른 시설인 ‘향유의집’도 있었다. 향유의집은 지난해 4월 국내 최초로 법인 스스로 시설을 폐지했다. 2019년부터 이 법인 산하 3개 거주시설에서 지원주택으로 탈시설한 장애인은 박씨를 포함해 82명에 이른다.
탈시설장애인 허모씨가 지난달 31일 집 근처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직접 식사준비까지 하고 있다. 허씨는 뇌병변중복장애가 있지만 시설을 나온 후 많은 일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양천구 제공
박씨는 서울시가 제공한 지원주택에 거주한다. 지원주택은 현재 양천·구로·성북·노원·강동·동대문·은평 등 7개 구에 124가구로 조성돼있다. 그가 사는 양천구에는 21가구 지원주택이 있다. 2020년 누림홈에서 ‘독립’한 그는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지은 2개동 규모의 다세대주택 투룸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다만 이들의 독립과 자립에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충분한 돌봄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원주택에 사는 장애인에게는 활동지원 서비스가 1인당 월 60~480시간 제공된다. 만 6세 이상~65세 미만 중증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로, 신체·가사·사회활동을 포함한 일상 및 직장생활에 필요한 활동 전반을 지원한다.
와상·사지마비 장애인이나 탈시설 장애인 등은 기능제한 점수에 따라 월 400시간까지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슈퍼바이저’ ‘주거코디네이터’ ‘주거코치’ 등으로 불리는 활동지원사가 지원주택에 상주하며 입주 지원부터 주택관리 등 생활 전반을 돕는다.
박씨의 집에는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활동지원사를 겸한 근로지원사가 방문한다. 매주 화요일에는 한글 선생님도 온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때 라면을 먹고, 인근 시장과 대형마트를 가는 것 모두 박씨가 지원주택으로 옮기면서 누리게 된 새로운 일상이다. 직업도 생겼다. 그는 주 4회 근로지원사와 함께 장애인편의증진 모니터링 및 장애인권익옹호 활동을 한다. 취미활동으로 자립생활지원(IL)센터 하모니카 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탈시설장애인지원주택 내부. 1인실 내부에는 방 2개와 거실, 화장실, 부엌을 갖추고 있다. 화장실문은 모두 미닫이문으로 돼 있다. 양천구 제공
시설을 나온 장애인들은 ‘내 것’을 가지는 권리를 처음 누리고 있다. 매일 아침 트로트 방송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박씨가 시설을 벗어나고서야 누리게 된 자유다. 김정하 프리웰 이사장은 4일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왜 탈시설을 해야하느냐’고 묻지만, 오히려 ‘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로 가야하는가’라고 묻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명희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실장도 이날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독립한 후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아가는 자유를 경험하고,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며 “일부 장애인 부모 등이 탈시설을 반대하고 있으나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지역사회에 충분한 장애인돌봄 인프라를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20104163010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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