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없인 장애인이 다닐 수 없는 세상 [삶과 문화]
작성자 2021-11-03 최고관리자
조회 531
딸아이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모습. 한국 장애인콜택시는 등록장애인만 전화나 앱을 이용해 부를 수 있다. 다른 교통약자는 이용할 수 없다. ©홍윤희
"휠체어로 지하 공연장에 간다고요? 보호자 없어요?"
얼마 전 대학로 공연장의 휠체어 접근성을 알아보다가 한 건물 경비원에게 들은 얘기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지하 공연장으로 내려가는 버튼이 안 눌러진다. 무조건 계단으로 내려가야 한단다. 짐을 나르는 목적으로 지하 공연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올 수는 있게 해놨단다. '보호자'가 계단으로 지하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라는 설명이었다.
"휠체어 이용자가 반드시 동행인과 함께 오라는 법 있어요? 혼자서 공연 보고 싶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말하고 돌아나오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부쩍 휠체어로 혼자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딸아이가 이곳에 왔더라면 분명히 속이 상했을 터였다.
딸아이가 가장 속상해했던 외출 순간이 떠올랐다. 친구 집에 가느라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를 탔는데 버스기사가 "왜 혼자 타? 다음부터는 보호자와 함께 타!"라며 소리를 질러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봤을 때였단다.
협동조합 '무의'에서는 비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접근성 조사 활동을 한다. 접근 가능한 장소가 10곳에 1곳꼴인데 그나마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도 '휠체어는 안 받아요'라며 노골적으로 차별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주 애매한 차별이 있다. 종업원들이 휠체어 탄 사람 아닌 옆사람에게 주문하라며 바라볼 때다. 단지 동행인일 뿐인데도 말이다.
장애=병, 장애인=환자로 흔히 표현하면서 동행인=보호자라고 표현하는 것 아닐까. 이런 등식이 위험한 이유는 병원에서 환자를 병실에서 보호하는 것처럼 장애인도 보호란 명목으로 별도의 공간에 분리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하고, 분리하면 인식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뉴욕의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일반택시. 길에서 쉽게 잡을 수 있는 대신 요금이 높다. ©홍윤희장애학생 중 일부는 일반학교에 다니다가 장애학생들을 모아 놓은 특수학교로 전학 간다. 부모들이 쉽게 내리는 결정일까? 아니다. 일반학교에서 해당 학생에게 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거다.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분리되면 배제 대상이 되기 쉽다. 엘리베이터가 있는데도 휠체어 관람객을 고려하지 않은 공연장에서 '장애인은 모두 보호자와 함께 다니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는 이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는 물리적 공간의 통합은 중요하다. '더불어 삶'을 고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장애인단체들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지하철과 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에 장애인 탑승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무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택시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 일반택시에 휠체어를 갖고 타기란 거의 불가능한 데다가 장애인콜택시는 대기시간이 길고 시내만 다닐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장애인콜택시 이용 시 '보호자'가 있어야 탈 수 있다. 이동의 자유가 현저히 제약되는 셈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이 더 많이 생겨난다는 것은 단순한 교통수단 확대가 아닌 자유의 확대다. 뉴욕 거리에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택시를 잡아서 탔을 때의 자유를 한국에서도 느낄 수는 없을까. 거리에 더 많은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다니게 되면 장애인이 '보호 대상'이 아니라 이동의 자유가 있는 권리의 주체임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휠체어가 아닌, 다른 이동이 불편한 많은 사람들까지 편리해지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11102220007344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