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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대한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아"

작성자 2021-03-04 최고관리자

조회 681

 

"나는 위대한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아"

 

 

 

[레드컬튼X랜선관극] 연극 '플라타너스' 리뷰


지난 2월 26일부터 공연실황 OTT 플랫폼 '레드컬튼'이 숨은 보석같은 연극·뮤지컬 작품들을 발굴해 선보입니다. 공연장에서는 막을 내렸지만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실황 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수작들을 소개합니다. 소개된 작품들은 모바일 앱 'PL@Y2'(플앱) 내 '레드컬튼 프리뷰'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기자말>

[김동민 기자]

▲  연극 '플라타너스' 스틸컷
ⓒ 극공생집단 야기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이 장애인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장애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그들을 '보통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 사회에 진입하려 할 때, 이런 시선은 '보호'와 '도움'이란 미명 하에 확산하고 고착화한다. 정작 본인은 '나를 특별하게 대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연극 '플라타너스'는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 사회의 이런 시각을 적나라하게 펼쳐보이는 작품이다. 어느 사립고등학교 1학년 한 반을 배경으로, 새로 전학 온 장애 학생과 같은 반 비장애 학생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3월 초입, 연극 '플라타너스'가 학교란 사회를 지나온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남길 수 있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무고등학교 2학기 기말고사 무렵이다. 뇌전증을 앓던 장애 학생 남수련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형사가 학교를 찾아 같은 반 학생들을 심문한다. 모범생인 반장 백장미와 수다스런 성격의 주유자, 짓궂은 남학생 홍석류와 덜렁거리지만 순진한 노대추, 그리고 쌀쌀맞은 체육특기생 황율까지. 형사는 수련의 자살 이면에 다섯 아이들의 따돌림이 있었을 거라 의심하지만, 아이들은 하나같이 이를 부인한다. 하지만 이들이 1년 간의 학교생활 동안 수련과 얽힌 기억을 털어놓으며 수면 아래 있던 사실들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  연극 '플라타너스' 스틸컷
ⓒ 극공생집단 야기
 
'플라타너스'는 장애 학생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비장애 학생들의 괴롭힘이 있었을 것'이란 1차원적 추측을 절묘하게 꼬집는다. '극단적 선택'을 '왕따'로 치환하는 단순한 논리 이면에는, 어른들에겐 결코 중요하지 않았던 감정의 파동들이 담겨 있었다. 다섯 아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수련의 학교 생활을 돕기도 하고, 그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기도 한다. 수련이 장애인이란 사실은 오히려 그를 배려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의 핵심 쟁점은 바로 '장애인이란 이유로' 벌어지는 주변인들의 태도다. 수련의 엄마는 뇌전증 환자인 수련에 대해 일종의 '행동수칙'을 규정하고, 학교는 도우미 학생을 지정해 수련의 학교생활 전반을 돕게 한다. 수련은 여학생 장미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에 가기도 하고, 장미를 짝사랑하는 황율의 '큐피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2학기 수련의 도우미가 된 대추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는 와중에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낀다.

'플라타너스'에는 선과 악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엄마와 다섯 아이들, 담임 선생님까지. 수련 곁의 인물들은 각자 나름대로 수련을 돕고자 한다. 하지만 연극은 이들의 '도움'이 진정 수련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날카롭게 되묻는다. 누군가는 수련을 통해 생활기록부에 좋은 내용을 남기고 싶고, 또 누군가는 자존감을 높이고 싶은 것처럼.
 
▲  연극 '플라타너스' 스틸컷
ⓒ 극공생집단 야기
 
극 중 수련은 말한다. "나는 위대한 장애인이 되고 싶지 않다"고, "그저 평범하고 싶다"고. 비장애인과 구분되고 장애인이라 규정되는 것 자체가 그에겐 고통스러웠던 셈이다.

"약자라고 해서, 그 사람이 선하다는 건 아니에요."

장미의 이 대사 역시 의미심장한 지점이다. 약자를 동정해야 할 대상으로, 강자를 의심하고 비판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실은 허점투성이란 얘기다. 약자(장애인)인 수련과 강자(비장애인)인 다섯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를 연상한 형사처럼 말이다.

이렇게 '플라타너스'는 관객에게 해결 대신 숙제를 남긴다. 심문 막바지 발견되는 수련의 일기를 통해서다. 말로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그의 심경은 '장애'와 '자살'이란 무거운 단어들 사이에 숨은 미세한 감정들로 서술된다. 여느 열일곱 즈음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수련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받거나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건 다른 다섯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위해 어른이 해야 하는 건, 몸의 불편함에 앞서 마음의 불편함을 보듬어 주는 건지도 모른다.
 
▲  연극 '플라타너스' 포스터
ⓒ 극공생집단 야기
 

 

 

 

 

 

 

출처 : https://entertain.v.daum.net/v/202103031739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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