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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비장애..'다름'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고, 창조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①]

작성자 2021-02-17 최고관리자

조회 580

 

장애와 비장애..'다름'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고, 창조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이길보라의 논픽션의 세계 ①]

 

 

 

나의 세상을 확장하는 도구, 논픽션

[경향신문]

이길보라가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농인 부모의 삶을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스틸컷. 영화사 고래 제공

농인 부모의 반짝이는 세상을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의 시선으로 그린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가 일본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자는 소회를 고백하며 말했다.

“처음으로 번역한 한국 문학작품이에요. 자랑스럽고 기뻐요.”

아, 논픽션(Non-fiction)도 문학에 포함되는 것이었지. 새삼 놀랐다.

어렸을 때부터였다. 오래된 빌라의 반지하층에 살 때 호떡을 팔러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동생은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 했지만 리모컨은 두 살 많은 나의 차지였다.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반지하 너머의 세상이 존재했다. 커다란 고래와 상어가 유영하는 깊고 무궁무진한 바닷속의 세계,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고유한 문화를 영위하며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의 세상.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 너머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세상의 창이었고, 이들의 삶을 그린 르포·에세이 문학은 생의 지도를 한 뼘씩 넓혔다. 농인 부모는 직접 가보고 먹어보고 만져보고 만나보며 세상을 접하라고 가르쳤지만 그러지 못할 때면 논픽션 작품은 대신 보여주고 그려내며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상상하게 했다. 그렇게 논픽션 영역에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글쓰기와 영화 만들기, 누군가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지만 내게 그 둘은 아주 비슷하고 같았다. 나의 세계를 확장해나가는 도구이자 매체, 논픽션.

왼쪽부터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 포스터와 책 <실수투성이 가족>(일본판)과 <서로 다른 기념일>의 표지.

그걸 확신하게 된 것은 2020년 여름에 출간된 농인 사진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책 <서로 다른 기념일>을 읽고 나서였다. 청인 집안에서 농인으로 태어나 일본어 음성언어 교육을 받은 저자가 농인 집안에서 농인으로 태어나 수화언어로 소통하며 자란 마나미를 만나고, 둘 사이에서 낳은 청인인 코다 이쓰키를 키우며 사는 이야기를 그린 에세이다. 저자가 이쓰키와 함께 장을 보러 간 때였다. 이쓰키는 귀에 집게손가락을 대고 눈을 감으며 말한다. “음악, 있어!” 그러나 저자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이다. 당황할 법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이 있구나, 이쓰키에게는. 엄마, 아빠, 음악 없어! 대신 음악을 봐.”

이쓰키는 그렇게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부모의 세계를 처음으로 마주한다. 저자 역시 다른 세상을 살아갈 이쓰키를 바라본다. 그러나 그 순간은 슬프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이쓰키는 음악을 듣고 사이토는 음악을 볼 뿐이다. 당신과 내가 다르기에 기쁘고 즐겁다고 말하는 저자는 서로의 다름을 마주할 때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축하할 것을 제안한다. ‘다름’으로 확장될 세계를 기대하며 그 차이를 마주한 순간을 ‘서로 다른 기념일’로 삼자는 거다.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울고 웃었다. 가까이 있기에 제대로 보기 어려웠던 농인 부모의 세계를 만났다. 청인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마주한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지 이들을 통해 간접경험을 했다.

딸이자 감독의 시선으로 농인 부모의 세상을 담은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를 만들고 동명의 책을 썼지만 한 번도 되어 보지 못한, 그래서 알 수 없었던 농인 부모의 이야기였다. 잠이 들기 전,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이쓰키의 몸에 최대한 몸을 맞대고 잔다는, 그렇게 몸으로 소리를 듣는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해 혹시라도 아이가 죽을까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는 엄마의 이야기와 보청기를 끼면 미세한 소리를 감지할 수 있어 퇴근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 몸으로 잔존 청력에 의지하며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아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다. 농인 부모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소리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듣는다. 소리는, 그렇게 온몸으로 듣는 것이다. 세상이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내가 농인 부모 아래 태어난 청인으로서 농사회와 청사회를 오가는 경험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은 농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코다의 세상을 그린다. 둘은 비슷했지만 아주 달랐다. 코다가 기록하는 농인의 삶과 농인이 바라보는 코다의 삶은 ‘다름’으로써 두 개의 세상을 연결하고 확장한다. 언젠가 나의 부모도 자신의 삶을 글로, 영상으로, 혹은 다른 매체로 담아낸다면 내가 그린 세계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를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 자신의 경험을 책과 매체 연재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 일본 코다, 다이 이가라시를 만났다. 코다의 시각을 통해 바라보는 사회의 소수자 이야기를 기획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는 그는 농인 부모에 대한 혐오와 분노를 가지고 성장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첫 연재 글로 실었다.

“스무 살 때였어요. 옷을 사러 나갔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며 엄마와 수어로 대화했어요. 사람들이 다 쳐다봤지만 그냥 이야기를 했죠. 도착하자 엄마가 고맙다고 하더군요. 뭐가 고맙냐고 물으니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수어로 이야기해주어 정말 기뻤다고 하고는 누가 쳐다볼까봐 빠르게 걸어갔어요. 저는 그만 멈춰 서서 통곡하고 말았는데요. 그런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낄 정도로 엄마를 외롭게 했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나 그는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지금도 확신하기 어렵다고, 가끔은 장애를 가진 부모와 차별로 가득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어지럽게 겹치곤 한다고, 아직 자신을 코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하는데 이런 내가 계속해서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 두렵다고 했다. 그는 일본 사회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출간한 코다였다. 코다의 다양한 정체성과 모습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차라 반가웠다. 모든 코다가 자신의 농인 부모와 코다 정체성에 긍정적일 수는 없다. 다름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이 존재하는 비장애인·청인 중심 사회에서 다름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장애를 전면적으로 드러내기를 택했어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부모가 장애인이지만 행실이 바르고 공부를 잘하면 오히려 칭찬받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깨달았고, 그렇게 살기를 전략적으로 택했어요. 어쩌면 지금도 코다 정체성을 드러내며 창작하는 건 그래야 유리하다고,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나는 내면의 방황과 고민을 내보이는 것이 오히려 다른 코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왜냐면 세상에는 긍정적인 정체성을 확립한 코다보다 과도기에 머무르거나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코다가 더 많을 테니까. 그와 나를 포함한 다양한 코다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한다면 이런 나도 코다구나, 하며 안도감과 소속감을 갖는 코다가 늘어날 테니까.

그의 눈에, 혹은 그를 바라보는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다이는 할아버지 장례식 풍경에서 펼쳐진 일을 코다의 시선으로 담은 책 <실수투성이 가족(しくじり家族)>(한국 미출간)을 출간했으며 농인 어머니와 코다인 자신의 관계를 그린 에세이를 엮어낼 예정이다. 그의 글은 일본과 한국에서 코다로 산다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러나 코다라고 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수화언어와 음성언어를 습득하며 두 사회를 오가며 자랐지만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법과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이처럼 논픽션은 나를 둘러싼 세상을 확장한다. 코다라고 해서 다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코다의 시선에서 바라본 농인의 세계와 농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코다의 세계가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당신의 세계가 나의 것과는 다르고 그렇기에 이는 충분히 기념하고 축하할 만한 것이라고 말이다.

누군가는 내가 만드는 논픽션 영역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장르 영화라고 불러도, 내가 쓰는 에세이를 문학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나는 나의 세계를 확장하고 잇는 이 논픽션을 사랑해 마지않는다. 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내는 논픽션의 세계를, 논픽션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길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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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자 작가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저서로는 <길은 학교다> <로드스쿨러>(공저) <반짝이는 박수 소리> <우리는 코다입니다>(공저)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가 있고, 연출한 영화로는 <로드스쿨러>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이 있다.

이길보라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10120060015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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