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시설 기능 전환’ 요구 무시하고 시설 폐쇄 결정
종사자는 직장 잃고, 탈시설 장애인들은 지원시스템 공백에 빠져
“종사자가 자립생활 지원하게 시설 기능 전환해야” 서울시에 요구
장애인거주시설 ‘도란도란’에 거주하던 장애인 전원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게 되면서 도란도란은 오는 30일, 드디어 폐쇄된다. 장애인 전원의 탈시설-자립생활 배경에는 시설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자립생활지원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설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남은 문제 또한 있다. 시설이 탈시설-자립지원의 방향 속에서 시설 기능 전환을 모색하기보다 시설 폐쇄를 결정하면서 자립생활에 나선 거주인들의 삶은 지원시스템 공백에 빠졌고, 이들을 지원한 시설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게 됐다.
이에 대해 18일 오전 11시,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란도란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체계 구축과 시설 기능 전환을 통한 노동자 고용 승계 보장을 서울시에 촉구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회복지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 도란도란은 2009년 염전노예사건 등으로 알려진 학대 피해 장애인의 일시 거주 쉼터(정원 20명)로 출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쉼터 설립 근거가 없어 장애인생활시설로 등록됐다.
도란도란 사회복지노동자 김치환·강자영 씨는 2016년 5월에 입사했다. 두 사람은 입사 당시부터 시설이 탈시설 지원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지원 업무는 이들에게 당연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탈시설 업무를 열심히 할수록 시설 측은 두 사람을 업무에서 배제하고 직장 내 왕따, 괴롭힘 등 조직적 방해를 서슴지 않았다. 그러한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일, 마지막 시설 거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을 시작하면서 ‘거주인 18명 전원 탈시설-자립생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끌어냈다.
도란도란의 탈시설-자립생활 역사는 2018년 7월 1일부터 시작됐다. 2018~2019년에는 영구임대아파트에 선정되는 대로 들어가다 보니 강서구 LH영구임대로만 세 명이 갔다. 작년 4월에는 서대문구 SH재개발임대주택으로 또 한 명이 자립했다. 이후 관악구에 있는 SH·LH임대주택에 14명이 입주했다. 이 중 10명은 충현복지관을 통해 주거지원서비스(지원주택 입주)를 받고 있는데 나머지 4명은 활동지원서비스 외에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법인이 의지만 있다면 시설 기능 전환을 통해 주거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거주인들의 자립지원을 계속하는 방법도 있다. 즉,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기존 시설 종사자들이 자립지원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때 현재 제기되는 자립지원 공백과 종사자 고용 승계라는 두 가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성질처럼 보이는 두 가지 문제는 결국 닿아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성공회 법인은 관악구청에 시설 폐지 신고를 한 상태다. 이후 시설 국고보조금은 지자체로, 후원금은 법인으로 반납하게 된다. 오랜 시간 시설에서 거주한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이지 않는 것이다.
도란도란 사회복지노동자인 김치환 공공운수노조 사회복지지부 부지부장은 “현재 관악구에 있는 4명은 저희가 지원하고 있으나 3월 이후 고용이 끊기면 신분을 보장받지 못하니 계속 지원하기가 어려워진다. 서울시 입장에선 행정편의적으로 ‘충현복지관으로 넘겨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건 아무런 대안이 없을 때 이야기다. 현재는 ‘우리’라는 대안이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김 부지부장은 “우리는 거주인들에 대한 서비스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시설 사업을 전환하라고 지난 3년간 법인에 계속 요구해왔다. 그러나 법인은 시설을 폐지하겠다고 하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현재 도란도란에는 시설장을 포함해 총 8명의 종사자가 있다. 이 중에는 김 부지부장과 같은 사회복지노동자도 있고, 조리사, 간호사도 있다. 김 씨는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때도 간호사와 같은 건강관리 인력이 필요하며, 이들에게 음식 조리 등 식사지원을 해줄 사람(조리사)이 필요하다. 조리사가 주거코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만약 어렵다면 유사직종으로의 전환도 고민해볼 수 있는데 현재는 고용 전환에 대한 대책이 전무하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거주인 전원이 발달장애인이다 보니 오랜 시간 쌓아온 관계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중요하다. 그러한 소통이 이뤄질 때 욕구에 기반한 체계적이고 정확한 서비스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설에서 나가는 순간 관계는 단절된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탈시설과 함께 기존 관계망이 단절되는 게 장애인 당사자에겐 트라우마로 남기도 한다”며 탈시설 준비 과정에서 우호적 관계를 다져온 이들과의 관계 지속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자영 도란도란 자립지원팀장은 “도란도란의 사업 방향에 맞게 1차 목표인 탈시설을 이루어냈고, 이제 지역사회에서 탈시설 당사자 지원 서비스를 이어가는 목적만이 남았다”면서 “새로운 환경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에 종속되거나 고립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도록 계속 만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당사자가 언제든 편안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언제든 요청할 수 있는 서비스 지원 관계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당사자뿐만 아니라 시설도 함께 지역사회로 나와야 한다. 탈시설 후 지원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면서 서비스가 보다 다양하고 두터워져야 진정한 탈시설이 시작된다”면서 “지난 1년간 집중적으로 서울시와 여러 차례 이에 대해 논의해왔다. 서울시는 사업 전환의 주체를 법인으로 한정 지을 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고민해달라”며 서울시에 책임 있는 탈시설-자립생활 정책 이행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