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노역투쟁했던 장애인활동가들 서울구치소 출소
4440만 원 벌금기금 모여… 노역 중단 결정

장애인 투쟁에 가해진 벌금을 거부하고 ‘노역투쟁’을 선택했던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20일, 구치소에서 나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구치소에서 나온 사람들과 함께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길벗체로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우리의 투쟁은 이어진다”고 쓰여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장애인 투쟁에 가해진 벌금을 거부하고 ‘노역투쟁’을 선택했던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20일, 구치소에서 나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구치소에서 나온 사람들과 함께 서울구치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현수막에는 길벗체로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우리의 투쟁은 이어진다”고 쓰여 있다. 사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 투쟁에 가해진 벌금을 거부하고 ‘노역투쟁’을 선택했던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20일, 구치소에서 나왔다. 노역투쟁을 시작한 지 3일째다.

노역투쟁을 한 사람은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으로 총 4명이다. 이중 전신마비 장애가 있는 최용기 회장은 건강 악화로 노역 첫날인 18일 밤, 노역을 중단해야 했다.

노역투쟁을 선택했던 4명의 활동가는 거리에서 ‘장애인도 버스 타고 이동하고 싶다’,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생존권 예산을 보장하라’라는 당연한 권리를 외쳤을 뿐이나, 정부는 이들의 외침에 4440만 원이라는 벌금을 부과했다. 이처럼 부당한 처벌에 저항하기 위해 활동가들은 노역투쟁을 선택했다. 잘못된 것에 대한 ‘정당한 저항’이었다.

정당한 저항에 대한 지지는 매우 뜨거웠다. 노역투쟁 직후부터 벌금 모금을 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에 따르면 20일 현재, 예상보다 빠르게 벌금기금이 모여 속히 노역투쟁 중단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장연은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들이 다음 주까지는 노역을 지속하겠다고 했지만 많은 분들이 마음을 모아주셨다. 하루라도 빨리 몸조리해 앞으로의 투쟁을 함께 만들기 위해 급하게 노역투쟁 중단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저녁 8시경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활동가들은 매우 지친 기색이었다. 구치소에는 장애인 편의시설이 없으며, 활동지원사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교도관이 지나갈 때마다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아주 기초적인 지원밖에는 받을 수 없다. 가장 힘든 점은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방에 씻을 곳이 없어 세수, 양치질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식사도 의식적으로 적게 먹어야 했다고 한다. 중증장애인이 흔히 겪는 경련에도 대처해주지 않아 계속 노역을 이어가다간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들의 모습. 왼쪽부터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사진 하민지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노역투쟁을 결의한 활동가들의 모습. 왼쪽부터 권달주 전장연 상임공동대표, 최용기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 이형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 사진 하민지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환경 등 장애인 편의시설 미비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별도로 진정할 예정이다.

총 세 번의 노역투쟁을 했던 이형숙 대표는 “전에는 화장실에 안전 바가 없었는데, 이번에 안전 바는 설치돼 있었지만 여전히 화장실이 너무 좁아서 이용하기 힘들었다. 전동휠체어 승인을 겨우 받아서 월요일쯤 받을 수 있었는데 그 전에 나올 수 있게 됐다”라며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는 안에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밖에 있는 동지들이 더 고생했을 것 같다”며 다른 활동가에게 공을 돌렸다.

처음 노역투쟁에 참가했던 권달주 대표는 “첫 경험이었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경험할 만했다”라면서도 “화장실이 너무 더러워서 소변도 참고 대변도 참고, 무엇보다 너무 추웠다. 방을 계속 바꿔야 했다. 입소 다음날 엑스레이 찍고 피 검사를 하는데, 검사를 한다고 사전에 알려주지도 않았다. 먹던 약을 먹지 못하게 해서 실랑이를 하기도 했다”라며 고충을 털어놨다.

건강 악화로 노역투쟁을 중단했던 최용기 회장은 “구치소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검사를 하는데 내 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하고, 그들이 짜놓은 계획에 따라야 했던 것이 매우 수치스러웠다”라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고, 오지 말아야 할 곳이다. 장애인 차별과 야만에 맞서 노역투쟁을 했던 분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아팠다”라고 말했다.

2014년 한 차례 노역투쟁을 했던 박경석 이사장은 “구치소에서 읽은 홍은전 작가의 책 ‘그냥 사람’에 ‘차별이 없어지는 것은 세상이 망하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싸우는 사람이 없는데 차별이 없어지면 망한다는 의미다. 차별받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은 같지 않다.”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차별받지만 싸우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저항하는 사람이다. 구치소에서 나가면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다짐했다”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