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5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49재를 맞아 분향소를 설치하고 설 연휴 동안 6박 7일간의 조문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참가자가 박명애 대표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고, 뒤편에는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다. 사진 이가연
“설요한 동지의 사진을 보십시오. 정말 어리지 않습니까. 저 동지가 자기 몸에 맞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저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더 멋지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눈물) 이놈의 나라는 비장애인·장애인이 다른 것도 모르는 썩어빠진 곳입니다. 몸에 맞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받았던 돈들을 다시 내놓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그 돈이 얼마나 무겁게 다가왔으면 그랬겠습니까. 설 동지는 옥상에서 밑을 내려다볼 때의 그 무서움을 무릅쓰고 뛰어내렸습니다. 살아있는 현실이 너무 지옥 같으니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2일 오후 5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고용노동부의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다 사망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49재를 맞아 분향소를 설치하고 설 연휴 동안 6박 7일간의 조문투쟁을 선포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조현수 전장연 정책실장은 서울역 대합실에 분향소를 설치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조 정책실장은 “고용노동부 측에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에 대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과와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의 개선을 위한 요구사안을 전달했지만,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코앞에 두고도 아직 답이 없다”면서 “이에 귀성객분들에게도 사안의 중대함, 그리고 중증장애인의 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오늘부터 이곳 서울역에서 6박 7일간 조문투쟁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2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열린 조문투쟁 기자회견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이날 연대발언으로 장길완 인권운동더하기 활동가는 “우리는 모두 노동을 하며 산다.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의 시각에서 노동을 단순히 이윤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임금을 버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리고 노동시장에 진입할 자격을 비장애인 기준의 효율성과 경쟁력으로만 판별한다면, 그렇게 진입한 노동시장이 불평등하고 불안정한 일자리만 존재하는 곳이라면 우리는 또다시 제2의 고 설요한 님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라며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유흥희 비정규직 이제그만 집행위원장 또한 얼마 전 마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문중원 경마기수에 대해 언급하며 “고 문중원 기수의 장례를 설 전에 치르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지만, 경찰과 국가권력에 가로막혀 결국 설 명절에도 투쟁하게 되었다. 고 설요한 동지에게도 아무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니 우리는 지금 설 명절에도 투쟁하지 않는가”라며 분노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정부는 항상 예산 타령만 하지만 (중증장애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무시하기에 예산 마련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올해, 열사 정신을 기리며 장애인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겠다”라고 외쳤다.
이어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는 “성년이 된 자녀들이 직장에 다니고 취미 생활을 하면서 어엿한 성인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게 장애인 자녀를 둔 우리 부모들의 소망”이라며 눈물을 내비쳤다. 이어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제대로 된 중증장애인의 노동권을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면서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당당한 노동자로 설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이 스카프를 보이며 중증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가연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한국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보랏빛 스카프를 보여줬다. 이어 박 이사장은 “2018년 11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 한 어머니가 중증장애인 아들이 선물한 스카프로 직접 아들 목을 졸라 살해했지만, 수원지방법원 형사15부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면서 살인자에게 아름다운 눈물을 흘려줬다”라고 분노했다. 이어 “가족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중증장애인들은 이 한 사람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다. 그것이 중증장애인이 처한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한 박 이사장은 중증장애인 100명 중 72명이 비경제활동인구라며 “중증장애인들에게 비장애인 기준에 맞춘 효율성을 강요할 게 아니라 중증장애인 기준에 맞춘 권리 중심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를 추모하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꼭 조문할 수 있도록 힘차게 투쟁하자”고 외쳤다.
한편 전장연은 이날(22일) 저녁 7시 30분부터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 49재 추모문화제를 열고 6박 7일의 노숙투쟁에 돌입할 예정이다. 오는 23일에는 매년 설날에 귀성인사를 하기 위해 서울역에 들리는 정당 지도부 및 정부부처 관계자에게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죽음에 대한 조문을 요구할 예정이다.
서울역 대합실에 고 설요한 동료지원가의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사진 이가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