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性·사랑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작성자 2020-02-07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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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性·사랑에 대해 얼마나 아시나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지음, 강영희 옮김, 사계절, 324쪽, 1만7000원
왜 장애인 화장실은 대부분 남녀 공용인가. 예산이 모자라거나 공간이 부족해서인가. 지체장애 변호사인 김원영은 저서 ‘희망 대신 욕망’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우선 많은 이들은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긴다. 성 정체성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적 욕망까지 허투루 넘겨짚는다. 급기야 “장애인의 성적인 성숙은 아파트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성대처럼 불필요하고 귀찮은 것”으로 인식한다. 시혜와 연민의 대상으로만 여기니 대중매체 속 장애인은 항상 수용시설이나 휠체어에서 “천사처럼 웃고 있어야” 한다.
책엔 이렇게 적혀 있다. “여린 몸에 하얀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 여성들이 자위행위를 한다면 믿어지겠는가. 사람들은 그런 ‘순수’의 영역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 김원영은 이런 말을 덧붙인다.
“손상된 몸으로 자유를 실천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내 영웅이며, 그들이 더 매력적인 존재가 되는 것, 더욱더 야해지는 것, 더욱더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핫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 많은 이들을 자유의 세계로 이끌 것이라고. 그렇게 우리는 ‘병+신 육갑한다’라는 저 오래된 명제에 온몸으로 저항해가는 것이다.”
가장 뒤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
최근 출간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소개하기 전, 희망 대신 욕망에 담긴 이야기부터 옮긴 것은 두 책에서 다뤄진 내용 중 포개지는 부분이 적지 않아서다. 김원영은 ‘사랑을 말할 때…’의 첫머리에 추천사 성격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이 책이 갖는 미덕을 치켜세우면서도 “이 책이 소개한 어떤 주장들은 듣고 있기가 불편했다”고 적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매우 문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도대체 ‘사랑을 말할 때…’은 어떤 작품이기에 이런 평가를 받는 것일까.
출판사가 보낸 보도자료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가 여기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을 말할 때…’은 비장애인들이 경원하거나 백안시하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정면에서 다룬 신간이다. 대만의 저널리스트인 천자오루가 썼다. 그는 장애인과 그들의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와 특수학교 교수 등을 두루 취재해 문제작을 만들어냈다.
오랫동안 장애인의 성은 무지와 편견의 장막 뒤편에 있었다. 우생학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는 장애인 강제 불임시술이 횡행했다. 종교계에서조차 저항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책에는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했고, 아무도 간명하게 단언할 수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가령 지적장애인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를 띠는가. 저자가 “이해한 바로는” 그들에게 사랑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감정이며,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스킨십의 최대치는 뽀뽀나 포옹 정도다. “그들이 (성적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격려할 것인가? 혹은 그들이 그냥 천진난만하게 어울리게만 할 것인가? 깊이 알지 않는 쪽이 더 낫지 않은가? 이는 단순한 결정이 아니다.”
간단치 않은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컨대 지적장애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그들이 누릴 성적 즐거움을 부모가, 혹은 사회가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 한 특수학교의 도우미는 이렇게 말한다. “잘 먹고 잘 자면 그것으로 됐지, 또 무슨 행복과 즐거움을 바란다고.” 저자는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멸시, 이것이야말로 장애인이 가장 소름끼쳐 하는 적일 것”이라고 적어두었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다양한 쟁점이 다뤄진다. ‘장애인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가’ ‘성폭행 피해를 당한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나 돌봄 노동자는 그들의 사생활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 저자는 이들 질문에 걸맞은 사례를 통해 깊이 고민해봄 직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는다. 하나같이 예민하지만 전부 중요한 내용들이다. 장애인의 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어떻게 ‘정상’을 규정하고 ‘차이’를 대하는지를 연구하는 출발점”일 테니까 말이다.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
사랑은 누군가의 숨결과 향기와 감촉과 심장 소리를 느낄 때 완성된다. 하지만 장애인의 사랑은 그렇게 완성되기가 쉽지 않다. 지체장애인의 몸은 이상하게 받아들여지고, 지적장애인의 구애는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가장 논쟁적인 이슈인 장애인을 상대로 하는 성 서비스 이야기까지 파고든다.
대만에는 ‘손천사’라는 성 자원봉사 단체가 있다. 장애인이 서비스를 신청하면 장시간 회의를 벌인 뒤 서비스 여부를 결정한다. 서비스는 애무를 해주거나 자위를 돕는 수준이다. 자원봉사 단체인 만큼 돈을 주고받진 않는다. 여성을 상대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자는 손천사의 활동을 소개하면서 성경 말씀인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를 언급하면서, “손천사는 ‘천사’의 정의를 가장 급진적으로 해석해냈다”고 평가한다. 화이트핸즈(일본) SEHP(스위스) LoverGiver(이탈리아) 등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 소개도 곁들인다.
여기까지 읽으면 저자가 매춘처럼 여겨지는 이런 행위를 옹호하는 것 아니냐고 예단하기 쉬운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책에 담긴 문장으로 저자의 입장을 갈음하자면 이렇다. “(이들 단체는) 자신의 더듬이를 뻗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가 과거에는 하잘것없다고 여겨지던 문제로 파문을 일으키고, 중요하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아직 뚜렷하게 규명되지 않은 의제를 우리가 생각해보게끔 했다.”
저자는 대부분의 이슈에서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독자의 생각이 어떤 결론에 가닿도록 유도하는 것도 아니다. 깊숙한 취재를 통해 길어 올린 장애인들의 러브 스토리를 담담한 어조로 들려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스스로 묻고 말하고 이해해야 하는 장애인의 사랑을 되새겨보게 된다. 섹슈얼리티가 빠진 인권 문제는 얄팍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아마도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게 되는 부분 중 하나는 프랑스 물리학자 마리 퀴리가 남긴 명언일 듯하다. “살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은 그저 이해되어야 할 뿐이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출처 : https://news.v.daum.net/v/20200206202707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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