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마로니에 공원에서 석암재단 장애인거주시설 비리에 맞선 마로니에 8인 기념 동판 설치 기념식이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왼쪽부터 석암재단에서 탈시설한 하상윤, 김동림, 김진수 씨와 또 다른 탈시설 장애인 황인현 씨. 사진 박승원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초석을 만들어낸 ‘마로니에 8인’ 투쟁의 뜻을 되새기는 동판이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 설치됐다.
4일 오전 마로니에 공원에서 석암재단 장애인거주시설 비리에 맞선 마로니에 8인 기념 동판 설치 기념식이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주최로 열렸다.
2009년 6월 4일, 석암재단(현 프리웰 재단) 베데스다요양원에서 발생한 시설 비리와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며 거주인 8명이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초석을 만든 이들은 이후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렸다.
장애인이 시설에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당시,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은 전무했다. 하지만 장애계는 서울시를 상대로 탈시설전환국 설치, 전환주거 제공, 활동보조 생활시간 확대 및 대상제한 폐지 등을 요구하며, 62일간 노숙농성 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서울시에 서울시복지재단 산하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가 설립되어 거주시설에서 탈시설을 희망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게 됐다. 또한 체험홈·자립생활가정(현 자립생활주택) 등 주거정책이 시행되어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의 가장 시급한 문제인 주거 문제를 지원하는 등 전국 지자체 최초로 서울시에 탈시설 정책이 마련됐다. 이는 2013년 ‘서울시 1차 탈시설 계획(2013~17)’으로 이어졌다.
김진수 비대위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사진 박승원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김진수 비대위 활동가는 “시설에 갇혀 원치 않는 일상을 반복할 바에 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아무런 탈시설 지원 정책이 없는 상황에서 나가는 것은 삶을 건 도박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죽나 밖에서 죽나 마찬가지 아닌가 싶었다”라며 “바로 이 자리에서 베데스다요양원 문제에 맞서기 위해 동지들과 짐을 싸고 나와 천막을 치고 노숙 투쟁을 시작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김 비대위 활동가는 “투쟁의 성과로 서울시에서 1호로 체험홈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길음에 마련한 체험홈에서 6개월 정도 있다가 자립생활주택이 만들어져 화곡동으로 이사하였다”라며 “자립생활주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마로니에 8인 가운데 4명이 결혼했다. 이렇듯 자립하기 위해 탈시설한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 삶을 꾸리면서 잘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동림 비대위 활동가는 정부의 더딘 탈시설 정책을 비판하며 탈시설 투쟁을 결의했다. 그는 “이제는 내가 있던 베데스다요양원이 ‘향유의 집’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올해 안으로 탈시설한다고 한다. 내가 나오고 나서도 10년이 지나서야 나오게 된 것”이라면서 “아직도 시설에 남아있는 장애인들이 3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모두가 탈시설할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투쟁 의지를 밝혔다. 서울시는 프리웰재단(구 석암재단)과 인강재단 산하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해 2020년까지 폐쇄하고 탈시설을 지원할 방침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이사장은 “탈시설 지원 정책의 역사를 만든 이곳 마로니에 공원에서 단순히 우리 성과를 동판에 기념하고자 이 자리를 가진 게 아니다”라며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꿈을 새기기 위해서, 우리 투쟁 의지를 새기기 위해서 오늘을 함께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법 제정을 향해 끝까지 함께 투쟁하면 좋겠다”라고 외쳤다.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초석을 다진 ‘마로니에 8인’ 투쟁을 기념하는 동판이 10년 전인 2009년 당시 투쟁 장소에 새겨졌다. 동판에는 “장애인 탈시설 선언 헌장. 2009.6.4. 마로니에공원. 자유로운 삶 지역사회로! 시설 거주인 8인 여기서 탈시설-자립생활을 외치다”라고 적혀있다. 사진 박승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