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420공투단이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을 촉구하며 수원역 광장 교차로를 막아서면서 교통이 통제됐다. 사진 박승원
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애인에 대한 억압’을 상징하는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서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알리고 있다. 사진 박승원
장애인 활동가 400여 명이 경기도에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와 탈시설 자립생활을 촉구하며 경기도청에서 수원역까지 대규모 행진을 한 뒤, 수원역에서 18일까지 노숙 투쟁에 돌입했다.
경기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경기420공투단)은 5일 경기도의회에서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준비를 위한 장애인 정책토론회’를 진행한 뒤 경기도청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 촉구 경기 지역 농성 선포 전국집중결의대회 및 2019년 경기420공투단 출범식’을 개최했다.
경기420공투단이 경기도청 앞에서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집중결의대회 및 2019년 경기420공투단 출범식을 개최했다. 사진 박승원
경기420공투단은 “2019년은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는 해로써, 31년 만에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해이다. 이제는 시혜에서 인권으로, 고립에서 사회의 일원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할 때”라면서 “중증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변화의 출발 앞에 서 있는 시기”라고 밝혔다.
이어 “현 정부는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장애인 정책 방향으로 밝혔지만, 예산 확대, 거주시설 신규 입소 금지 등 핵심 내용에서는 지난 정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장애등급제 폐지라고 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수의 장애인이 살아가고, 가장 많은 장애인거주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곳이다.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발표한 ‘2018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국 장애인거주시설 1,517개, 거주시설 생활인구는 30,693명에 이른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는 314개(20.7%)의 장애인거주시설과 6,286명(20.48%)의 장애인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이는 1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큰 규모다.
경기도는 이미 2016년에 중증장애인 탈시설 자립생활 중장기 계획을 수립했지만, 그 계획대로라면 거주시설 장애인이 지역사회로 나오기까지 500년이 걸린다. 이에 경기420공투단은 “중증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실질적 정책이 될 수 있도록 중장기 계획의 전면적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420공투단은 “지난 2017년 10월, 결사반대 기자회견과 TF 면담에도 경기도는 결국 개인운영신고시설의 법인설립 기준을 완화하고 그 허가를 지자체에 통보한 바 있다. 전국에서 장애인거주시설이 가장 많다는 오명도 모자라, 보란 듯이 54곳에 해당하는 개별 시설을 확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는 개인운영신고시설의 사회복지법인화를 통해 관리∙감독의 책임과 권한을 각 시설에 떠넘기려는 행정 편의주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경기도는 최근 사회복지법인 성심동원, 향림원 등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침해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비단 경기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과거 에바다농아원, 프리웰(구 석암재단), 대구청암재단, 성람재단, 인강원, 남원평화의 집, 대구시립희망원, 충주 성심맹아원 등 시설이 있는 곳은 인권침해와 비리가 잇따랐다. 장애계가 개별 문제 시설이 아닌 ‘시설 그 자체’의 폐쇄적 구조를 지적하며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을 정부와 지자체에 촉구하는 이유다.
따라서 경기420공투단은 “이 사회가 아직도 시설문제에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수용시설 정책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정책 도입과 탈시설 지원 확대를 경기도에 촉구한다”라고 강조했다.
조민제 대구시립희망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박승원
경기420공투단과 함께 연대하기 위해 대구에서 15명의 활동가와 함께 찾아온 조민제 대구시립희망원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대구시립희망원에서 일어난 인권유린과 비리를 해결하고자 전국에 있는 동지의 힘을 빌려 정말 오랜 시간 싸워왔다. 마침내 재작년 3월 말 장애인 거주시설인 ‘시민마을’을 폐쇄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조 공동집행위원장은 “경기도는 ‘지역사회 인프라가 없다’는 논리로 시설 폐쇄 문제를 차일피일 미뤄 흐지부지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시설을 줄이고 폐쇄한다’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여태까지 장애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라”면서 “장애를 가진 이유로 어딘가로 격리되고 배제되고 갇힐 권리는 없다. 힘차게 함께 투쟁해서 성심동원 시설을 ‘즉각 폐쇄’하고 탈시설 권리를 함께 쟁취해나가자”고 외쳤다.
경기도청에서 경기420공투단 출범식 후 수원역으로 행진하는 사람들. 사진 박승원
박명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최근 성인 발달장애자녀를 살해한 60대 모친이 집행유예 받은 사건을 이야기하며 장애인의 돌봄을 가족에게 떠밀지 말고 국가가 책임질 것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장애인은 대체 무슨 죄로 이렇게 죽어야 하나. 우리 장애인들은 부모에게 죽임당하고, 권리가 없어서 국가로부터 또다시 죽임당하고 있다. 이제 더는 그런 억울한 죽음을 멈춰야 한다”며 울부짖었다.
박 대표는 “여전히 국가는 시설에다가 수백억원의 돈을 처붓고 탈시설에는 쥐꼬리만한 예산을 쓰고 있다”고 분노하며 “시설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을 막아서 지역사회 예산으로 돌리자.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고 외쳤다.
경기420공투단은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 및 탈시설 자립생활 쟁취를 위한 경기도의 책임 있는 약속을 촉구하며 경기도청에서 수원역까지 대규모 행진을 했다. 수원역 앞 광장 교차로에 도착한 이들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법 제정’이라고 적힌 플랜카드를 들고, ‘장애인에 대한 억압’을 상징하는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고는 1시간여가량 도로를 점거하며 장애인이 처한 현실을 알렸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행진 대오를 막아서고 장애인 활동가들의 사다리 침탈을 시도하면서, 경찰과 경기420공투단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후 이들은 수원역 로비에 농성천막을 치고 18일까지 노숙 농성을 이어나간다고 밝혔다.
경기420공투단 활동가들이 수원역 광장 교차로를 점거하려고 하자 경찰들이 방패로 막아서고 있다. 회색 정장을 입은 경찰이 장애인 활동가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고함치고 있다. 사진 박승원
수원역 광장 교차로 앞에서 경기420공투단이 사다리를 꺼내 들자 경찰이 이를 빼앗으려고 하면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사진 박승원
경기420공투단이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을 촉구하며 수원역 광장 교차로를 막아서면서 교통이 통제됐다. 멈춘 버스 안에서 창문 너머 경기420공투단을 바라보는 시민들. 사진 박승원
수원역에 ‘장애인거주시설폐쇄법(조례)’ 제정을 촉구하는 천막이 설치됐다. 천막 정면에는 “경기도는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 수립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사진 박승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