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2시, 서울시청 후문에서 '2기 서울시 탈시설 계획'을 규탄하고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권리 보장을 위한 무기한 농성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사진 최한별
서울시 탈시설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폐쇄 조례’를 제정하라며 장애인 당사자들이 서울시청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12일 오후 2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등 장애인권 단체들이 서울시청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차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아래 2차 탈시설계획)이 실제로는 '장애인 수감 계획'이라며 전폭적인 수정을 요구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8년 1월 발표한 2차 탈시설 계획을 통해 향후 5년 동안 총 300명(연간 60명씩)에 대한 탈시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장차연은 이러한 계획이 지난 2013년 발표한 1차 탈시설 계획에서 ‘5년간 600명에 대한 탈시설 지원을 하겠다’는 목표 수치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특히 현재 서울시 산하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은 총 45개이고, 시설 거주 장애인이 2657명임을 감안할 때, 서울시의 2차 탈시설 계획으로는 모든 장애인이 탈시설하기까지 45년이 걸린다. 서울장차연은 이를 지적하며 "'탈시설'이 아니라 나머지 2천여 명의 장애인을 45년간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방치하겠다는 '수감 계획'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1차 탈시설 계획 이행 결과,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목표인 600명보다 더 많은 604명이 탈시설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서울장차연은 이것이 수치 중심의 부풀려진 성과라고 꼬집었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운영하는 그룹홈과 체험홈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도 탈시설 인원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서울장차연은 "시설 운영 체험홈과 그룹홈에 거주하는 당사자 절반 이상이 시설로 복귀하기 때문에 탈시설 인원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라며 "이렇게 따져보면, 지난 5년간 실제로 탈시설한 사람은 286명에 불과하다"고 정정했다.
기자회견 참석자가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감옥유치 45년 계획'이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최한별
서울장차연은 "장애인들이 입 모아 '감옥'이라고 외치는 장애인거주시설이 10년 이내에 모두 폐쇄되고, 중증장애인이 서울시 지역사회에서 완전하고 통합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화를 위해 '서울시 장애인거주시설폐쇄조례'와 '서울시 장애인탈시설조례' 제정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장차연은 각종 인권침해와 비리로 이사회가 교체된 인강재단과 프리웰(구 석암재단) 산하 시설부터 조속히 폐쇄하고, 이러한 시설 거주인들에 대한 탈시설 지원 방안을 당장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프리웰 재단 산하 시설 향유의집에는 52명, 해맑은마음터에는 70명, 그리고 누림홈에는 5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강재단 산하 시설 인강원에는 58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울장차연은 프리웰과 인강재단 산하 시설 거주인 236명을 포함해 2020년까지 총 300명에 대한 탈시설 지원 계획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향유의집에서 탈시설한 이건창씨는 "시설 서류에는 내가 '1970년생 이건창'이라고 되어있지만, 내가 정말 70년생인지, 내 이름이 정말 이건창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라며 입을 열었다. 이 씨는 "시설에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꿈꾸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이런 곳이 바로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탈시설 후 지금은 정말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작년에는 제주도 여행도 다녀왔다. 시설에서 계속 살았다면 이런 자유는 꿈꿀 수 없었을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시설에 갇혀있는 동료들이 빨리 지역사회에서 내가 누리는 자유를 가진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향유의집에서 탈시설한 이건창 씨가 기자회견에서 AAC를 이용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최한별
황선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박원순 시장은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즉 범죄 사실이 한 번만 있어도 시설을 바로 폐쇄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라며 "그 말대로, 이미 각종 인권침해와 비리 사실이 드러난 인강재단과 프리웰 산하 시설들도 당장 폐쇄하고, 거주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예산과 제도를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2020년까지 서울시 산하 45개 장애인거주시설에 대해 단계적인 탈시설 인원 증가 계획 수립 △탈시설 장애인에 대한 24시간 지원체계 마련 △2020년까지 장애인지원주택 200호 마련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탈시설지원센터, 지역사회기반 장애인거주시설 제공기관 공공화 등을 요구했다.
서울장차연은 이러한 요구안을 가지고 서울시청 후문에서 무기한 농성을 선포했다. 그러나 경찰이 농성 물품 조달을 가로막으면서 이에 항의하는 서울장차연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대치 상황은 약 30분가량 이어지다가 경찰이 천막을 제외한 일부 물품의 전달을 허용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서울장차연 회원들이 농성 물품을 시청 후문으로 가져오려고 하자 경찰이 이를 막아서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진 최한별
경찰과 대치중인 서울장차연 회원들. 사진 최한별
그 사이 서울장차연 대표단은 서울시청 안에서 기봉호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과 면담을 진행했다. 서울장차연은 이미 지난 3월 21일, 서울시에 오늘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요구안을 전달했고, 12일 면담에서 요구안을 가지고 협의하자는 답을 서울시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12일 오후 3시 진행된 면담에서 서울시는 '면담이 있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애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너무나 허탈하고 화가 난다. 서울시는 ‘답변을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시 검토해보겠다는 말이었다. 4월은 바쁜 기간이니 5월 7일에 다시 이야기하자’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농성을 결의할만큼 중대한 탈시설 의제가 서울시 공무원에게는 잊혀지는 일이라는 게 무엇보다 화가 나고 슬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문 대표는 “우리는 탈시설 정책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계획을 10년 넘게 기다려왔다. 그런데 무려 23일 전에 전달한 요구안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우리가 농성할 것도 뻔히 알면서 또다시 한 달 가까이 기다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노스러운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서울장차연은 서울시에 요구안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장차연이 농성 천막을 반입하려고 하자 서울시 청원경찰이 이를 무리하게 막으려고 시도하면서 다수의 부상자가 생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한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경찰의 물리력 행사로 인해 차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어 응급실로 이송된 상태다.
서울장차연 회원들이 대표단과 서울시의 면담 결과를 기다리며 시청 벽면에 '45년 기다리다 시설에서 죽겠다', '서울시는 장애인 탈시설 정책 즉각 발표하라!' 등의 문구를 써서 붙여놓았다. 사진 최한별
서울시청 후문에 '2기 서울시장애인감옥수감계획 폐지'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최한별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과 면담을 마치고 나온 문애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의 이야기를 회원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사진 최한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