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면서 17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서울시 탈시설 계획은 “45년 중증장애인 감옥수감 계획에 불과하다. 감옥 같은 시설에 있다가 죽어서 나오는 경우가 현 서울시 탈시설 정책의 현주소”라고 꼬집으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사진 박승원
“아이고, 아이고, 45년을 기다려 겨우 시설을 나왔는데…”
서울시청 앞에서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옥 같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어렵게 나온 장애인은 곧바로 모조 관에 가서 누웠다. 현재 서울시가 추진하는 ‘탈시설 계획’의 미래 모습이다. 서울시 탈시설 계획에 따르면, 서울시 산하에 있는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모두 나오려면 45년이 걸린다. 지금으로부터 45년이니, 사실상 죽을 때가 다 되어서야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애계는 “서울시 탈시설 지원 계획은 ‘45년 중증장애인 감옥수감 계획’에 불과하다”라며 “10년 내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에 나섰다.
장애인거주시설폐쇄 조례 제정을 요구하며 서울시청에서 농성 6일째에 접어든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는 서울시 탈시설 계획에 대한 전면 수정을 촉구하며 17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내용을 전면 수정하라”면서 17일 오후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 박승원
같은 날, 서울시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장애인의 날 기념식을 열고 ‘제2기 서울시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2019~23)’을 발표했다. 2기 계획엔 노동권, 이동권, 주거권, 탈시설 지원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중 탈시설에 관한 내용은 지난해 발표한 ‘제2차 장애인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2018~2022)’에 따른다. 이를 보면, 서울시는 향후 5년 동안 서울시에 있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매년 60명씩 총 300명에 대한 탈시설을 지원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서울시에는 장애인거주시설 총 45개, 2657명(2017년 말 기준)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것을 고려하면 45년이 걸린다”라고 서울장차연은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10년 안에 모든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5년에 300명’이 아닌 ‘1년에 300명’, 5년 안에 1,500명 탈시설 추진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용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서울시가 제1차 탈시설화 추진계획에서는 ‘5년간 장애인 600명의 탈시설을 지원하겠다’라고 했지만, 2차 계획에서는 ‘5년간 300명’으로 탈시설 계획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김혜진 라이프라인 자립진흥회 활동가가 발언하는 모습. 사진 박승원
28년 동안 시설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김혜진 라이프라인 자립진흥회 활동가는 2014년 4월 시설에서 나왔다. 김혜진 활동가는 “어릴 때부터 시설에서 살아서 세상 사람들 모두 시설에서 사는 줄 알았다”라며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하면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자기결정권 한번 행사하지 못하고 지내야 하는 시설이 얼마나 감옥 같은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이어 “서울시 거주시설에 사는 모든 장애인이 자립하려면 45년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설에서 살아보고 45년이 걸려도 된다고 여기는지 알고 싶다”라며 “시설을 완전히 폐쇄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서울장차연 측이 서울시청 앞에서 결의대회를 여는 동안 서울장차연 대표단은 서울시와 면담을 진행했으나 예산 문제로 결국 합일점을 찾지 못했다. 면담에 참여한 문애린 서울장차연 공동대표는 “탈시설에 필요한 세 가지는 ‘탈시설 정착금, 활동지원서비스 시간, 집’이다. 여기에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이를 논의해야 할 백일훈 서울시 예산과 과장은 두 번의 면담 자리에 모두 나오지 않았다”라며 개탄스러워 했다.
문애린 공동대표는 “서울시는 탈시설 지원 준비를 ‘5년 안에 차근차근하겠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1년에 300명 탈시설을 지원해야 한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프리웰 재단 산하 시설 향유의집에는 52명, 해맑은마음터에는 70명, 그리고 누림홈에는 56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강재단 산하 인강원에는 58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울장차연은 프리웰과 인강재단 산하 시설 거주인 236명을 포함해 2020년까지 총 300명에 대한 탈시설 지원 계획을 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현재 ‘문제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만 탈시설해도 서울시 목표치에 다다르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장차연은 “서울시 2기 장애인 인권증진 기본계획 전면 수정을 요구한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사회 서울시가 앞장서라”라고 외치며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서울장차연은 “박원순 시장은 약속한 ‘범죄 비리∙시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즉, 범죄 사실이 한 번만 있어도 시설을 바로 폐쇄하는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라며 “지금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시설비리∙인권침해 문제는 끝까지 일벌백계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장차연 측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사진 박승원
서울장차연 측은 결의대회를 마치고 서울시청에서 광화문광장까지 행진했다. 사진 박승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