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도 함께 희로애락 즐길 날 올까?
방통위의 재방송 비율 단계적 축소 실효성 없어
현실적으로 드라마 본방 화면해설은 ‘그림의 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02-15 09:10:49
할 게 많아진 세상이 돼버린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여가활동 중 첫손에 꼽는 건 TV 시청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8 국민 여가활동 조사’ 결과를 보면 해마다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TV 시청이 여가활동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TV 시청은 비단 비시각장애인만의 여가생활은 아니다. 시각장애인들도 제한적이긴 하지만
화면해설을 통해 다수의 TV 프로그램을 TV 등으로 시청하고 있다.
그러나 시청률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드라마는 본방송이 나간 뒤 최소 3일은 지나야
화면해설과 함께 즐길 수 있어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겐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아무리 드라마를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세상이지만, 본방송이 나가고, 그와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지고 난 뒤에 드라마의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할 때쯤
화면해설 드라마가 방송되면 드라마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드라마를 좋아하거나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겐 다소 문화충격을 받을만한 소식이 정초에 전해졌다.
지난 25일
넷플릭스(온 디맨드 비디오, dvd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국내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
킹덤’을 선보였다. ‘
킹덤’은 죽었던 왕이 되살아나자 반역자로 몰린 왕세자가 향한 조선의 끝, 그곳에서 굶주림 끝에 괴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비밀을 파헤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2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
킹덤’은 국내 최초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이자 ‘싸인’, ‘시그널’ 등의 극본을 쓴 김은희 작가와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부터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런 기대감이 글쓴이가 ‘
킹덤’이라는 드라마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 건 아니었다.
킹덤에 가장 관심을 끌게 한 요소는 드라마 공개와 함께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뿐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 동시에 제공되는 것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화면해설이 시각장애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드라마 본방송이나 영화 개봉과 동시에
화면해설을 접하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라고 여겼던 시각장애인들에겐 문화충격과 함께 묘한 감동까지 느끼게 할만한 소식임이 분명했다.
마치 비장애인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함께 쓰는 스마트폰 기종이 업데이트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함께 두근거렸던 마음을 공유하며 “시각장애인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두근거릴 수 있는 게 있구나”라는 동질감이 들면서 “시각장애인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구나”라는 걸 느끼며 가슴 벅차 했던 그 순간과 흡사했다고나 할까?
이 두근거림과 문화충격은 시각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함께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마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현실을 알고부터 실망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럼 왜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방송통신위원회는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사업자의
화면해설방송 의무 편성비율 가운데 재방송 비율을 단계적으로 축소해 시각장애인의 시청권을 확보키로 했다.
화면해설방송의 재방송 편성비율 목표치는 올해 40%에서 내년 35%, 2021년 30%다.
언뜻 보면 의무편성 재방송 비율이 지켜지게 될 경우 “드라마 본방송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화면해설 방송이 재방송 비율에 포함되는지 방통위에 문의한 결과 “처음으로 방송되는
화면해설 방송은 본방송으로 본다”라는 답변을 받았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화면해설 방송은 재방송 비율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방송사나 정책 당국 입장에선
화면해설 방송이 최초로 방송된 게 본방송이라 규정지을 수 있지만, 그 방송을 시청하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이미 나간 방송에
화면해설이 포함된 방송을
화면해설 본방송으로 여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 수밖에 없다.
이런 본방송 및 재방 비율 기조가 유지된다면 안 그래도 학습용 교재나 읽고 싶은 신간 도서를 일정 시간이 지나야 공부하고 읽을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들은 재미있는 드라마마저 일정 시간이 지나야 즐길 수 있는 불편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2017년에 작성된 환경변화에 따른 장애인방송의 역할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미연방시행령(CFR)에서는 신규 미디어환경의 서비스, 플랫폼 및 단말기에서 자막 및
화면해설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고 미국에 수출되는 타 국가의 제품에도 장애인방송 기능을 갖추도록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미디어환경에 장애인미디어 서비스가 지원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법으로 정해진 의무화를 이행하기 위해 자막 및
화면해설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넷플릭스는 국가의 공공재를 빌려서 방송을 제작 배포하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시각 및 청각장애인들의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재를 이용하지 않는 기업마저도 시각 및 청각장애인들의 즐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방통위의 ‘장애인방송 편성·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는 시각 및 청각장애인의 TV 시청권을 보장할만한 강력한 규정이 없다.
지상파 및 국가 기간 통신망이라는 공공재를 빌려쓰는 방송사가 당연히 보장해야 할 시각 및 청각장애인의 시청권을 보장하지 않는 건 이들을 자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꼴인 것이다.
시각장애인들 대부분은 비시각장애인과 만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보내는 눈빛 그들이 행하는 비언어적 대화들도 시각장애인들에게 큰 괴리감으로 다가오지만, 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시각장애인들은 큰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개봉 후 한 달 뒤에 볼 수 있는
화면해설영화, 방송 후 3일이 지난 뒤에나 즐길 수 있는
화면해설 드라마는 절대 당연한 게 아니다.
오히려 이런 기조들이 지속되면 시각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과의 소통이 단절될 수 있고, 단절이 지속되면 시각장애인들의 사회성은 떨어질 게 뻔하다.
드라마
화면해설이 본방송과 함께 제공되지 않는 게 절대 가벼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거창하게 장애인차별금지법 조항을 대지 않더라도 시각장애인의 TV 시청권 보장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일이 이른 시일 내에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시각장애인들도 재미있는 드라마를 같은 시간에 함께 즐기며, 울고, 웃고, 화내고, 떠들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다는 슬픈 드라마가 빨리 종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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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권순철 (kscwin07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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