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진(시각장애 1급) 씨는 아이가 세 명이다. 5살, 8살, 9살로 모두 비장애인이다. 그는 아이를 네 명 낳을 계획이었지만 “양육이 너무 힘들다. 여기서 그쳐야겠다”며 웃었다. 사실, 그가 말하는 ‘힘들다’는 양육 그 자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이렇게 말했다. “같이 살아야 가족이 된다. 내가 키워야 저 아이도 나에게 맞춰 클 테고 나도 아이에게 적응이 될 테니까. 겪어보니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고. 그를 힘들게 만든 건 되레 아이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들이었다. 산부인과로부터 들어야 했던 기분 나쁜 이야기,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 등 제도의 공백,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주위 엄마들의 반응 등.
지난 10일, 그의 집 앞 카페에서 만나 호진 씨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인터뷰의 어느 순간에는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이야기를 풀어 놓다가도, 장애여성의 양육을 온전히 지원하지 않는 제도나 그를 둘러싼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꺼내놓을 때면 한숨을 쉬었다.
어려움이 닥쳐도 상황에 맞게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차별적인 시선, 홈헬퍼, 활동지원 시간 부족 등으로 어려움 겪어
어렸을 때부터 시각장애가 있었던 호진 씨였지만, 그는 스스로를 ‘겁이 없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낳는 것도 겁나지 않았고 그전에도 조카들을 돌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육아에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렇지만 걱정은 약간 있었다. ‘아이 밥은 어떻게 먹이지’, ‘놀이터에 데리고 갔을 때 다른 곳으로 갑자기 가버리면 어떡하지’ 등등. 닥쳐보지 않은 상황이나 상상 밖의 일들을 미리 걱정한다고 뾰족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므로, 생각을 깊게 하지는 않았다. 고민을 하더라도 결론은 항상 ‘그 순간이 오면 다 할 수 있다’였다.
오히려 주위에서 난리였다. 그의 시댁에서는 ‘남편도 시각장애인(5급)인데 장애가 유전되면 어떡하냐’고 했다. 그가 갔던 산부인과에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산부인과 의사가 태아의 몸무게와 머리둘레를 재고 난 뒤 초음파 사진 촬영을 권유했다. 아이의 눈이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는 이유였다. 호진 씨는 화가 났다. ‘애 눈 안 좋으면 지우라고 하실 건가요?’라고 응수했다. 의사가 말을 흐렸다. 호진 씨는 아이가 눈이 안 좋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알면서 열 달 동안 마음 졸이느니 차라리 모르고 있겠다고 말했다. 의사의 모욕은 이어졌다. ‘돈이 없어서 초음파 사진을 찍지 않는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기가 막혔다. 호진 씨는 ‘돈이 필요하셔서 그런 거라면, 그냥 드릴게요. 저 내버려 두세요’라고 다시 응수했다.
그렇게 2010년에 첫째가 태어났다. 상상하지 않은 것들,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닥치면 두려움을 느끼면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호진 씨는 달랐다. 그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고 차근차근 상황을 헤쳐나갔다. 첫째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갈 때는 신발에 방울 두 개를 달아 위치를 파악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겼다. 그는 “방울 소리가 얼마나 귀여운지 아느냐”며 깔깔댔다. 책을 읽다가 아이가 모르는 글씨를 물어보면 손바닥에 쓰게 했다. 아이 손을 잡고 글자의 한 획, 한 획을 함께 그어가며 한글도 가르쳤다.
하지만 제도는 그의 양육을 온전히 지원하지 않았다. 2010년 첫째가 태어났을 때, 그는 장애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등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홈헬퍼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 당시 홈헬퍼 서비스는 60일 이내 신생아를 둔 경우 1일 최대 6시간(월 최대 120시간)을 이용할 수 있었고, 만 9세 미만의 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경우에는 1일 최대 4시간(월 최대 70시간)까지 이용이 가능했다. 이 홈헬퍼 서비스와 활동지원 서비스(월 94시간)를 모두 이용해 첫째를 키웠고 2011년 태어난 둘째도 키웠다. 둘째가 태어나고 몇 년 뒤, 그는 서울시로부터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두 서비스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홈헬퍼는 경제 사정이 어려운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었으므로 무료였고 활동지원은 자부담이 있었지만 호진 씨는 활동지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홈헬퍼 지원시간에 비해 활동지원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시각장애를 가진 김호진 씨는 양육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며 이야기를 풀어 놓다가도, 장애여성의 양육을 온전히 지원하지 않는 제도나 그를 둘러싼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 등을 꺼내놓을 때면 한숨을 쉬었다.
그는 ‘홈헬퍼와 활동지원을 둘 다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민신문고 등에 항의했다. 하지만 답변은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라’였다. 아이돌봄 서비스는 아동을 둔 맞벌이 가정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아이돌봄 서비스는 자부담 요금이 있어서 경제 사정이 어려웠던 호진 씨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그가 살고 있었던 관악구에서 육아와 관련한 활동지원을 월 50시간 지원해준 덕택에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후 호진 씨의 가족은 강서구로 이사를 왔고 2014년에 셋째를 낳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장애여성의 육아를 지원하는 제도는 여전히 촘촘하지 못했다. 2017년 말 그는 홈헬퍼를 다시 한번 신청했다. 그해 9월부터 홈헬퍼와 활동지원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도록 정책이 바뀐 상태였지만 그는 여전히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강서구 측은 ‘홈헬퍼 관련 예산이 실질적으로 증액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청은 할 수 있지만 예산 부족으로 기존 이용자만이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활동지원을 늘려야만 했다. 강서구 장애인복지과에 찾아갔다. 호진 씨는 “여기서 울며 애원도 해봤지만 ‘강서구는 장애인 대비 관련 예산이 적어서 추가 지원이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아래 공단)에도 연락해 활동지원 추가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거절당했다. 공단은 그에게 ‘활동지원 제도는 장애인 당사자만 지원하는 것이지 아이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까지 지원하는 것은 부정수급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했다. 호진 씨는 반박했다. ‘나를 지원한다고 했는데, 그럼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 김호진’은 어떻게 지원해 줄 것이냐’고. 공단은 ‘부정수급’이라는 단어만 반복했다.
현재 호진 씨는 활동지원 94시간의 대다수를 아이에게만 쓴다. 활동지원은 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제도이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자신이 쓸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는 것이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부터 남편이 퇴근하는 8시까지 약 4~5시간 정도를 활동지원사와 함께한다. 부족한 활동지원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그는 초등학교 2학년인 9살 첫째의 손을 빌린다.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에게까지 양육의 부담이 가는 셈이다. 호진 씨는 “여기에서 딱 50시간만 추가되면 좋겠다. 그러면 양육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는 나를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그가 양육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홈헬퍼와 활동지원 시간 부족 등의 제도적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동네맘 커뮤니티’에 들어가는 일도 중요해진다. 여기에서 양육 정보와 학교 소식도 나오고 아이와 친구 간의 관계 형성 등도 이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진 씨는 소외감을 느꼈다. 그는 “나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와보니 아이 엄마들이 많았고 ‘저 엄마는 시각장애여성인 나를 보면서 아이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적응이 몹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엄마들은 자녀라는 키워드로 서로 친구가 된다. 그러나 호진 씨에게는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엄마들과 함께 반 단체카톡방이나 도서관 단체카톡방 등에 가입은 되어 있었지만, 호진 씨는 정작 이들이 자신을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톡방에 엄마들끼리 맥주 한잔을 하자거나 밥을 먹자는 이야기가 나와도 그는 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그 모임에 있었다. 아이들의 친구 관계에 혹시나 문제가 생길까 싶어 엄마와 아이들의 동반 모임은 반드시 참석했다. 호진 씨는 “고통이었고, 이때 우울증도 생겼었다”고 고백했다. 직장을 다니며 소속감이 생기자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했다. 그리고 활동지원 시간이 더 늘어나 지금보다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면 고립감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집 앞 놀이터에서 엄마들 떠드는 소리가 들리면 다른 세상에 남겨진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건 여전하다.
장애여성이 겪는 육아의 어려움과 비장애여성이 겪는 어려움이 본질적으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호진 씨는 “만약 누군가 나에게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라고 말했으면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태어난 후 처음부터 서로가 하루하루를 맞춰 나가며 ‘낯섦’을 줄인다. 익숙해지는 거다. 장애여성이건 비장애여성이건 아이를 키우는 것은 모두가 처음이니까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사회는 이 ‘처음’을 엄마와 아이 간의 사적인 관계로 축소하며 당사자만 육아에 익숙해지면 될 일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김 씨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 장애여성의 육아는 촘촘한 지원이 필요하다. 출생률이 걱정이라며 정부는 온갖 대책을 쏟아내지만, 그 안에는 장애여성을 위한 육아 대책은 부족하다. 그는 그 공백을 메꾸려 온몸으로 아이를 키워내고 있었다. 장애여성도 출산할 수 있고 가족과 함께 육아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사회는 언제쯤 인정하게 될까. 호진 씨의 경험은 사회에 그 물음을 계속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