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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샀다, 하지만 버스 못탔다, 몇년째 계속

작성자 2018-09-27 최고관리자

조회 755

 

 

 


표를 샀다, 하지만 버스 못탔다, 몇년째 계속

 

 

 

 

 

 

 


[9월 평등UP ②]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고속도로에서 호두과자 먹기.. 내년엔 가능하겠죠?

[오마이뉴스 양유진 기자]

'민족 대명절'이라는 추석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이 날은 고향에 내려가 가족과 친지를 보는 시간이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한편 누군가에게 추석은 가족 내, 일상의 차별을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성별, 장애, 고용형태, 성적지향 등에 따라 마주하는 다양한 추석명절의 경험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명절'이 되기 위한 고민들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2014년 겨울이었다. 설 명절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러 갔다. 고향에 가려고 버스터미널로 향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알고 있었다. 표를 가지고 있어도 탈 수 없다는 것을. 아마도 그곳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표를 흔들며 버스를 태워달라고 소리치기 전까지는.

그해 봄, 송국현이 죽었다. 시설에 27년을 갇혀 살다 지역사회로 나온 지 6개월 만에 집에 불이 났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국가에 요청했지만, 장애등급이 낮기 때문에 안된다는 말만이 되풀이 되던 순간, 송국현은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갇혀 살고, 장애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정당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단지 '장애'가 이유가 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분하고 억울하다.

탈 수 없는 버스에 표를 끊고 타보기를 수없이 했다. 탈 수 없는 것을 이미 알면서도 터미널에 가는 마음은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 만원 버스라 타지 못한 적은 있어도, 아예 탑승이 불가능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 비장애인으로 불리는 나는 표를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이 되어 보상을 받을 수도,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표가 있어도 고객이 될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싶었던 우리 모두는 송국현을 추모하고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집에 자주 방문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가까운 곳이 그의 집이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갔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장애가 있든 없든 고속버스 타고 여행도 다녀보고 싶었고, 송국현의 억울한 죽음에 사과도 받고 싶었던 해, 그 해가 강렬하게 아직도 빛난다.

우리도 버스 타고 싶다
  
 2014년 12월 강남고속터미널 장애인 이동권 투쟁장면
ⓒ 비마이너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시외이동은 기차로 한다. 왜냐하면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0'대이니까! 하지만 기차는 철로가 있는 곳까지만 운행을 할 수밖에 없다. 자연스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딱, 거기까지만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2014년부터 부지런히 명절은 물론 기회만 닿으면 버스타기 투쟁을 하러 버스터미널에 갔다.

시외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몇몇 당사자들은 수많은 호두과자 중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 좀 먹어보자며 외쳤다. 물론 개인 차량이 있으면 못 먹을 것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나를 포함해 내 동료들은 개인차량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고속버스 휴게소 호두과자를 먹을 수 있는데, 내 동료들은 그렇지 못한 현실이 억울했다. 내가 사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서 사먹고 싶었다.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고속·시외버스가 되어서 어디든 갈 수 있길 바라는 간절하고 재미있는 구호였다. 바로 그것이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외쳐야하는 구호가 된다.

일상에서부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종종 시민사회계에서 OO버스를 타고 투쟁의 현장으로 가는 프로젝트를 하거나, 내가 활동하는 곳에서 단체로 지역을 이동해야 할 일이 발생한다. 그럴 때 참으로 난감하다. 분명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서는 보장구는 신체의 일부라고 하는데, 우리는 신체의 일부를 분리해서 버스를 타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렵다. 먼저, 장애인과 함께 이동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다. 물리적 환경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미리 물어봐주거나 사전에 점검해야 할 것을 챙겨주는 분들에게 참 고맙다. 물어봐주기! 장애인과 함께 사는 삶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 너무나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기가 중요하다.

또 하나는, 장애인도 당연히 단체 이동을 하는데 탑승 가능한 리프트 장착 버스가 너무 없다는 것. 장애를 가진 성인의 평생교육 기관인 노들장애인야학은 1년에 한 번씩 모꼬지를 가는데, 정말 전쟁이 따로 없다. 장애인 당사자가 많은 곳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에 미리 재빠르게 버스 대절을 준비라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설 업체들이 개별적 운영을 하고, 그 숫자마저 매우 적으니 대여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이 사는 것은 이러한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버스도 같이 타고, 내 옆집에 함께 살고, 나의 일터에 동료로 함께하며, 학교 안에서도 내 친구로 있는 것이다. 바로 '일상'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특별한 매뉴얼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애주기 안에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함께 했었는가가 장애인식개선교육보다 때로는 더 값진 것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오랫동안 탈 수 없는 버스를 타러갈지 몰랐다."

함께 활동하고 있는 한 활동가의 말이다. 나 역시 그랬고, 2014년 설 명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는 것이 이리 어려운 일이라니!! 명절만 앞두면 이번엔 어떤 제목으로 현수막을 맞춰볼까 고민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는 언제까지 명절을 터미널에서 보내야 하나 생각하며 평화로운 명절을 꿈꾸기도 했다.

2017년 추석명절에 국토부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교통약자 이동권 증진을 위한 민관 협의체를 꾸리고, 2018년 8월까지 4차례의 논의를 진행했다. 논의를 바탕으로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내용을 발표한다. 시외이동권을 포함하여 시내 저상버스 도입 100%를 위한 방안, 마을버스와 농어촌 버스의 저상화, 특별교통수단의 운영, 단체이동을 위한 교통수단 등의 내용을 담았다.

마침내 2019년 하반기부터 고속·시외버스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9월 19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국토교통부는 광화문광장에서 훨체어탑승설비를 갖춘 고속버스 시승 행사를 열기도 했다.

내년 추석에는... 버스 타고 고향으로!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시외버스 시승회에서 한 장애인이 탑승 체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2015년에도 시범사업 예산이 국회까지 갔으나 국회에서 증발해버린 사건이 있었다. 큰 좌절과 씁쓸함을 맛보며 더욱 단단해진 우리다. 버스타고 호두과자 먹으러 휴게소 가는 것이 소망인 우리다. 그렇기 때문에 기분은 나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또 쉬지 않는 겨울을 보내고, 내년 하반기 내 동료들과 고속버스 타고 여행을 약속할 것이다.

그래도 많이 왔다. 처음 국토부는 인권위의 권고를 받아 2020년까지 고속버스 모델을 연구하고 2021년부터 시범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지금은 2019년 하반기부터 시범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고속버스로 이동하기 위해 4년 동안 타지도 못할 버스 티켓팅을 하고, 15번의 버스타기를 했다.

물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하기도 했고, 시외이동권 차별을 구제하는 소송도 했고, 국회의원들과 함께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도 했다. 차별을 차별이라 말하고, 권리를 권리로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존엄한 인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역사는 이렇게 변하고, 권리는 이렇게 확장되고 만들어지는 것을 매번 배운다.

앞으로 전 노선 100% 리프트 장착 버스가 운행될 수 있게 하려면, 그리고 그 어디에서도 배제되지 않으려면, 또 몇 번이고 무엇인가를 반복하며 외치고 길 위의 춤을 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동에서뿐 아니라 또 어디선가에서 차별이라는 벽에 마주할 것이다. 그때마다 벽에 균열을 내는 것.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 시켜내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의미 아닐까 싶다.

"내년 하반기, 그러니까 2019년 추석부터는 버스타고 고향 갈 수 있겠지요? 우리 같이 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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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양유진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도 실립니다.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92219420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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