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이 서울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하는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5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5월부터 운영한 ‘서울 특수교육 발전 추진단’의 운영결과와 특수교육 계획을 발표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장애학부모들이 조희연 교육감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과 한방병원 설립에 협의했다는 사실에 항의하면서, 장애학부모와 교육감과의 비공개 면담으로 간담회 시작은 30여 분간 지연됐다.
- 장애부모들 “특수학교 설립 협조 위해 ‘대가’ 지불하는 ‘나쁜 선례’ 남겨” 항의
1년 전인 2017년 9월 5일, 서울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이적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주민토론회에서 장애학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며 무릎 꿇는, 일명 ‘무릎 호소’ 사태가 있었다. 이로 인해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후 교육청은 부교육감을 단장으로 하고 28명의 TF위원 및 특수교육 전문가로 구성된 ‘서울 특수교육 발전 추진단’을 5월부터 운영해 왔다. 추진단은 ‘무릎 호소’가 있던 9월 5일에 맞춰 추진단 결과를 발표하고 특수학교 및 통합교육 현장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발표 시작 전인 오전 9시 30분,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아래 서울부모연대), 서울특수학교학부모협의회, 전국통합교육학부모협의회는 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날(4일) 교육청이 강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한방병원 부지 제공 등을 반대 측 주민과 합의한 것에 대해 규탄했다. 교육청은 4일, “특수학교 설립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표면화된 이후 1년 만에 교육청과 지역주민들이 협력을 위한 합의를 이루게 되었다”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편익 증진을 위해 ‘인근학교 통폐합 시 그 부지를 한방병원 건립에 최우선으로 협조’하는 것에 대해 김성태 의원, 강서특수학교 설립반대 비상대책위원회와 약속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태 의원은 교육청 땅에 한방병원 설립 공약을 내세우며 지역 갈등에 불을 지펴온 장본인이다.
이에 대해 서울부모연대 등은 “이 합의는 학부모들과 이야기된 바 없으며 무엇보다 특수학교가 기피시설인 듯한 인식을 강화하고 특수학교 설립 때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이미 학교설립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반대 측과의 합의는 불필요한 행정적 절차였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조희연 교육감과 서울부모연대 등은 간담회 전 3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지면서 추진단의 발표는 30분 지연됐다. 비공개 면담에 참석한 김남연 서울부모연대 대표는 “교육청과 향후 이번 합의 내용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간담회 시작 전, 장애학부모들은 서울시교육청이 강서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한방병원 부지 제공 등을 반대 측 주민과 합의한 것에 대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간담회가 시작되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9월 5일은 특수교육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서두를 떼며 “그 의미를 두텁게 하기 위해 추진단이 준비했던 계획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이 간담회 자리와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이들과의 합의를 이끌어 냈다. ‘아름다운 손잡기’라고 생각해 어제 기쁜 마음으로 발표했는데 이런 의견이 나와서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교육감은 “협의 과정 실무선에서 장애인 학부모들과 충분히 소통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스러웠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이야기하며 이후 과정에서는 장애학부모 의견을 꼼꼼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합의로 여지를 내어주었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무릎 호소’ 이후로 특수학교 설립에 대해 대통령, 국무총리, 교육부 장관이 관심을 보였다.”면서 “예컨대 올해부터는 특수학교를 둘러싼 지역주민의 다양한 요구나 민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정부에서 20억 예산이 배정됐다. 특수학교 설립은 확실한 궤도에 올랐다”면서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고 해명했다.
- 서울시 특수교육, ‘제대로 된 통합교육’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장 의견 담아
이날 추진단에 따르면, 서울 특수교육 혁신 목표는 특수학교 설립 및 제대로 된 통합교육, 현장 중심을 체감하는 특수교육 지원이다. 이를 위해 △정의로운 차등을 위한 특수교육 지원 체제 개선 △모두가 공감하는 따뜻한 통합교육 △맞춤형 진로 직업교육 및 취업 지원 체제 구축 △수요자 중심 특수교육지원센터 혁신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특수교육 지원 체제’ 개선을 위해 지원 조직 체계 개선, 장애학생 종합 지원 코디네이터 도입, 특수학교(급) 재구조화, 특수교육 교원 역량 강화를 핵심과제로 삼았다. ‘통합교육’을 위해선 특수학교 예산 통합지원, 통합교육 역량강화, 통합교육을 위한 장애인식 개선을 핵심과제로 두고 이를 위해 교원학습체 운영 및 지원, 통합교원·특수교원 공동 연수, 통합교육 지원비, 통합학급 운영 매뉴얼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장애학생을 위한 취업 지원 체제 구축을 위해선 장애영·유아 교육 운영 지원, 서울형 개별화교육 매뉴얼 개발, 진로·직업거점센터 운영, 취업지원 유관기관 협의체 구성, 장애학생 취업 멘토 제도 도입 등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특수교육지원센터 혁신을 위해선 특수교육 플랫폼인 센터 역할을 강화하고 서비스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중장기 과제로는 서울특수교육원 설립을 내세웠다.
이날 모인 장애학생 학부모들과 특수학교 및 통합교육 현장의 교장, 교사, 교수, 교육부 및 교육청 특수교육 관계자 26명은 현장에서의 경험과 조언을 꺼냈다.
양옥수 서울중흥초등학교 교장은 통합교육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학교에서는 현재 월례회의 등 지속적인 소통으로 통합학급 교사와 특수학급 교사의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통합학급도 잘 운영된다. 하지만 통합교사와 특수교사의 전공이 달라 자체적으로 통합교사가 알아서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특수교사는 일반교육을 알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양 교장은 “교육청에서 각자의 전공, 수업방식 등에 대한 연수를 일괄적으로 해준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욱 증진되어 통합교육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장애학부모들의 도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장은 “장애학생 학부모에게 ‘특수반과 통합반에 번갈아 가며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말할 때, 학부모들은 ‘(장애학생인 사실이) 티나지 않게’ 해달라고 하신다”면서 “학생들 간의 공존에 대해 부모들에게 말하지만, 장애학생이 특수반으로 옮겨가거나 학생 옆에 도움 주는 사람이 있게 되는 것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해 이들이 협력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노출하고 싶다”며 학부모들이 통합학급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교육청에서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서울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교육감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장옥화 서울등원초등학교 교장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이라는 경계선은 되레 어른의 구분”이라면서 교육청이 오로지 ‘장애학생’에 초점을 맞춰 물적·인적 자원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 학생이 스스로 일상을 만들어 가되 그 중심에 또래 친구들이 있도록 정책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관계를 만들어내는 일상에 주목해 장애학생이 ‘대상화’되는 것을 경계하자는 뜻이다. 그는 지난 여름방학 때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함께했던 스쿨핑 이야기를 사례로 들었다.
장 교장은 장애학생 부모를 설득해 모두가 함께하는 캠핑을 진행했다. 이 캠핑에는 특수교사, 통합학급 교사, 학부모들이 있었지만 학생들에게 도움 주는 것을 최소화했다. 학생들은 이를 알고 당황했지만 식사준비, 쓰레기 버리기 등 할 일을 스스로 배분하며 협력했고 장애학생도 예외는 없었다. 자폐가 심해 인사도 하지 않고 누군가 지원해주어야만 일을 했던 장애학생도 도움 없이 맡은 일을 스스로 해냈다. 장 교장은 “캠핑은 성공적이었다. 선생님들도 다 놀랐다. 통합교육은 장애학생 ‘지원’이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그 또래들이 함께해낼 수 있는 영역을 더 넓히는 것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통합학급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국은 중학교부터 입시 위주의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의 중학교 통합교육은 쉽지 않다. 장애자녀를 둔 장민희 강서장애인가족지원센터 팀장은 “장애학생들은 일반 중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배려받으면서 수련회, 수학여행 등을 같이 가는 것이 눈치 보였다. 대안으로 일반학교에서도 장애학생을 위한 직업훈련, 성교육, 현장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면 좋겠다”면서 나아가 고등학교에서도 통합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경근 단국대 특수교육과 교수는 통합학교, 특수학교라는 구분을 떠나서 학교현장 자체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쟁 입시로 돌아가는 학교에선 장애학생뿐만이 아니라 다른 다양성을 가진 학생들도 배제되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학교 개혁이 먼저 이뤄진다면 장애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양성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특수학교가 ‘분리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보통 통합교육은 일반학교에서만 이야기된다. 하지만 특수학교에서도 통합교육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며 현재처럼 특수학교가 통합교육으로부터 분리된 장소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견들에 조희연 교육감은 “스쿨핑 이야기 등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학생 스스로가 주체로 나설 수 있는 통합교육의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