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의 희망원 합의 파기에 대해 규탄하며 '근조 희망원사태 해결 합의' ⓒ전근배
지난 6일, 대구시가 2018년 연말까지 대구시립희망원 내 장애인수용시설 ‘시민마을’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치 무언가라도 하는 듯이 보이고 싶겠지만, 사실상 이번 대구시의 발표는 장애계와의 ‘합의 파기’를 선언하는 것이다. 장애계가 우려한 ‘내쫓기식 폐쇄’, ‘비자의적인 강제 전원’을 감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 사태로 인해 상처받고 희생된 피해자들이 결국 대구시의 무책임한 행정조치로 인해 이름만 바뀐 다른 수용시설로 대다수 재입소하게 된다. 대구시는 이를 ‘혁신과제’의 이행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이다.
대구시가 밝히듯, 올해 1월 희망원 장애인 탈시설 욕구조사 결과, 기존 시설서비스를 그대로 받고 싶다는 경우는 20여 명에 불과했다. 조사기관이었던 대구경북연구원은 전문가 의견을 통해 “거주시설에 남겠다고 응답한 사람 외에는 ‘모두’ 탈시설 대상”이라는 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시는 ‘권리구제’가 필요한 이들을 두고 탈시설하려면 ‘개인 의지’가 중요한데, 정확히 욕구 표현을 못 한 발달장애인들(무응답층)을 다른 시설로 입소시키겠다고 했다. 거기다 탈시설을 희망하더라도 인지장애가 있거나 연고자가 반대하면 이 또한 ‘자립 불가자’로 판단해 다른 시설로 입소시킨다고 한다. 즉, 이러한 비상식적 조치에 대한 이유가 ‘장애인의 장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올해 말 폐쇄조치되는 ‘시민마을’ 거주자 67명 중 50명 이상을 다른 시설로 재입소시키겠다는 계획을 지난 6일 발표했다.
한국이 비준한 UN장애인권리협약은 장애인의 거주 이전의 자유와 탈시설 및 지역사회에서의 통합을 권리로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욕구보다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탈시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애초 지역사회에서 분리되어 시설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본인 욕구에 의한 결과물이 아니었기에, 다시 이들이 나오게끔 지역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헌법과 사회복지사업법, 장애인복지법 역시 시설입소에 앞서 지역사회서비스 제공을 우선으로 할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국제기준과 국내법은 희망원 사태를 일으킨 가장 큰 책임 주체인 대구시에 장애인을 ‘자립 불가자’나 ‘욕구 없는 자’로 낙인찍고, 통합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다른 시설로 강제 입소시킬 권한을 주지 않았다.
대구시의 희망권 합의 파기에 대해 지난 7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전근배
시설 폐쇄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구시가 이런 기만적인 행정조치를 발표한 것은 결국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예산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3월 대구시는 대다수의 장애인을 다른 시설로 보내고 2020년까지 시설을 폐쇄하겠다는 내용을 ‘혁신대책’으로 발표하였는데, 이에 대해 시민사회는 “누구를 위한 혁신이냐”며 공분했다. 이후 희망원대책위,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로 구성된 희망캠프의 34일간의 농성 투쟁으로 작년 5월, 대구시는 올해까지 거주 장애인 70명 이상을 탈시설하고 시민마을을 폐쇄하는 것에 합의했다. 즉, ‘탈시설 추진을 통한 범죄시설 폐지’가 시민사회와의 합의였다. 그런데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 와서, 합의 이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예산조차 마련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장애인들의 장애를 탓하며 지자체가 기본적으로 이행해야 할 탈시설 지원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는 상상 이상으로 아무런 대책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최근 희망캠프의 요구로 열린 대구시 보건복지국장 면담에서 담당자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희망캠프와의 공식협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인정함은 물론, 희망원 관련 부처들 간에도 탈시설 지원 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담당자는 합의 내용 자체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시인하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구시 자료에 의하면 지난 2017년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희망원 전체 거주인(1049명→943명, 3명 신규 입소)은 109명 감소했지만, 이 중 자립지원을 받은 자는 고작 9명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사망(42명)하거나, 입원(38명)함으로써만 시설을 ‘나갈 수 있었다’. 그동안 지원이 아닌 방치를 해 온 셈이다.
대구시는 시민사회와의 합의를 내팽개친 채 그 어떤 행정적·재정적 조치도 취해오지 않았다. 대구시는 지난 3월, 자신들이 발표한 ‘대다수 전원을 통한 시설 폐쇄’ 기조를 그대로 유지해 왔으며,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예산을 빼놓은 채, 인권유린과 비리사태가 일어나면 여느 지자체나 말하듯 “탈시설은 준비가 되어야 한다”, “장애인 그 스스로 욕구가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둘러대고 있다. 준비를 안 해 온 것은 정작 대구시인데도 말이다.
탈시설이 아닌 재입소를 시키는 대구시의 행태는 대구시가 약속한 탈시설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것이자, 탈시설 정책을 역행하는 꼴이다. 2015년 대구시가 1차 탈시설 계획을 수립하던 당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시설 신규 입소 금지’였는데, 당시 시설 법인들의 불만은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지금 대구시는 그 시설들에 ‘협조’를 구하고서 장애인들을 신규 입소시켜야 한다. 이제까지 아슬아슬하게 지켜져 온 그나마의 원칙마저 붕괴될 수 있다.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에겐 더 적합한 예산을 책정하여 지원하면 될 일이다. 올해 폐쇄되는 희망원 시민마을에는 연간 21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시민마을의 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해 대구시는 즉각 21억 원 이상의 긴급 예산을 확보하여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사태가 애초 ‘장애인들의 장애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듯, 그 사태의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다면, 적극적인 권리구제를 위해 권영진 대구시장이 더 늦기 전에 나서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