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화 기기, 장애인은 어떻게 쓰라는 겁니까
작성자 2018-09-11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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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화 기기, 장애인은 어떻게 쓰라는 겁니까
[경향신문] ·장애인 접근성 갖춘 기기 거의 없어… 정부 차원 현황조사도 안 해 손을 뻗어봤지만 원하는 메뉴에 닿지 않는다. 몇 번을 반복해도 달라질 기미는 없다. 애초에 무리한 시도였다는 걸 다시 한 번 절감하고 점원이 있는 카운터로 향한다. 패스트푸드점의 주문 전용 무인화 기기(키오스크)를 쓰려다 실패한 휠체어 장애인 이모씨(29)의 이야기다. 비단 패스트푸드점에서만 겪는 일은 아니다. 가장 흔히 키오스크를 접할 수 있는 곳들을 찾을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영화관, 공항 등 기계가 사람을 대신해 발권을 도와주는 곳이면 대개가 비슷하다.
서울역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주문용 무인화 기기(키오스크)를 이용해 손님이 주문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그래도 휠체어를 탄 사람은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시각이나 청각장애인, 손을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장애인처럼 장애도 여러 모습이 있는데 이런 분들은 장애인 접근성을 갖춘 기기가 아니면 아예 메뉴를 보고 조작하는 것조차 할 수 없거든요.” 이씨는 이런 다양한 장애에 맞춰 장애인도 어려움 없이 활용할 수 있게 만든 기기는 극히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애를 입게 되는 신체부위가 한두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모습의 장애에 대응하는 접근성 보장방식도 여러 형태다. 결제를 위해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넣고 빼는 위치를 조정하거나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단자를 만들고 점자 키보드를 설치하는 등의 보완방법을 마련하면 장애인들도 무인화 기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애인 접근성을 갖춘 기기를 현실에서 보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다.
공항·기차역·버스터미널 등 거의 전무 그나마 장애인을 위해 무인화 기기에 제도적으로 접근성을 보장한 기관은 지방자치단체와 시중은행을 들 수 있다. 각 지자체의 민원발급용 기기 등에서는 전체의 약 59%가, 은행 자동화기기에서는 약 93%의 기기가 장애인 접근성이 보장돼 있다. 미진하다고는 해도 비교적 높은 비율이다. 그러나 이들 기관을 제외하면 민간 차원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이 설치한 키오스크에도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기의 비율은 극히 낮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대명 입법조사관의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제고방안’ 보고서를 보면 키오스크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음에도 사용 현황이나 장애인 접근성 보장 여부 등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기준 전국에 3400여대의 키오스크가 설치된 것으로 추산될 뿐, 이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여부 현황 파악조차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산발적으로 파악된 키오스크 설치 현황을 봐도 장애인 접근성 기기 비율은 현저히 낮다. 전국의 공항에 설치된 전체 175대의 기기 중 장애인이 쉽게 쓸 수 있는 기기는 단 4대뿐이다. 철도공사나 공항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기차역과 공항에 설치된 키오스크 대부분은 휠체어를 타고 손이 닿기 어려운 것은 물론, 시각장애인을 위한 이어폰 단자나 전용 키패드가 마련돼 있지 않고 밝기나 화면 모양을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기자가 기차역과 버스터미널, 패스트푸드점, 영화관 등의 키오스크를 확인해 본 결과 장애 형태에 따라 필요한 다양한 접근성 기능을 갖춘 기기는 한 패스트푸드점 업체의 기기에 휠체어 장애인이 앉아서도 손이 닿을 수 있게 화면 크기를 줄이는 기능이 들어간 것이 전부였다. 은행 자동화기기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이라면 기기 하단에 있는 이어폰 단자에 이어폰을 꽂고 음성안내에 따라주기 바란다’는 안내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무인화 기기를 운영하는 주체들은 인건비를 절감하는 한편 이용자들의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기기 보급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에 대한 접근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기기만을 설치하고 있는 데는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의 자동화기기나 지자체의 민원발급기 등도 반응시간을 조정하는 등의 기능은 없어도 물리 키보드와 이어폰 단자 등을 갖추는 등의 보완책을 갖추고 있는 것은 관련 고시와 표준규격 등의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오스크 전반에 대해 장애인 접근성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아예 없다. 김대명 입법조사관은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2조는 국가기관 등이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이 웹사이트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키오스크도 포함하는 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자체와 시중은행만 접근성 높은 편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각종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얼굴을 마주보고 응대할 수 있는 직원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 발달로 무인화가 이미 빠르게 진행 중인 현실을 감안할 때 기술적인 보완책으로 장애인도 쉽게 키오스크를 활용하게 하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공공단말기 접근성 가이드라인(KS X 9211)’이 국가 표준으로, ‘금융자동화기기 접근성 지침 1.0(KCS.KO-09.0040)’이 정보통신단체 표준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표준을 의무화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해외의 경우 미국에서 2013년부터 미 연방규정집14에 공항 등에 설치된 키오스크가 장애인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등의 의무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설치한 무인 민원발급기 등의 키오스크는 2015년부터 행정안전부 차원에서 장애인 접근성 규격을 갖추도록 한 결과 현재 59%까지 보급률이 높아져 있다. 사용연한이 다된 기존 기기를 대체해 새로운 기기를 설치할 때는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기가 설치되기 때문이다.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가이드라인 제정에 참여한 김석일 충북대 교수는 “사용연한이 5년 내외인 키오스크 기기를 교체할 때 기술표준을 따르는 기기로만 바꿔도 보급률은 높아진다”며 “제정된 표준을 준수해 설계된 키오스크는 일부의 중증장애인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이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정보화진흥원도 장애인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한 정보 접근성 간담회를 여는 등 기술 발달과 사회적 파급에 따른 장애인 접근성 현안에 대한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법제화 문제에 대해서는 이 사안을 다룬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 등이 올해 2월 국회에 발의된 바 있지만 아직 계류 중이어서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접근성을 보완하면 장애인뿐만 아니라 시력이 낮은 고령자 등의 비장애인도 더욱 편리하게 기기를 이용할 수 있는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빠를수록 이용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용석 장애인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지하철 전역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도입 요구 당시엔 비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지만 설치 이후에는 모두가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장애인을 위한 정책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며 “누구나 늙고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의 편리를 위해 접근성을 보장하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라고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출처 : https://news.v.daum.net/v/20180909103225549?rcmd=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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