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2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장애인학대 현황 보고 및노동력 착취 정책 대안 마련'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었다.
지난 6개월간의 장애인 학대 사례를 분석한 결과, 피해자 10명 중 7명은 지적장애인으로 드러났으며, 피해 장애인들은 학대 중에서도 ‘경제적 착취’를 가장 많이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오후 2시,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은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과 함께 ‘장애인학대 현황 보고 및 노동력 착취 정책 대안 마련’ 토론회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실에서 열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애인학대 예방·방지 의무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제59조의11에 근거해 지난 2017년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세워졌다. 옹호기관은 장애인 학대 의심사례를 접수받고, 장애인 학대 조사, 응급조치, 피해자 등에 대한 회복지원, 사후모니터링 등의 사례지원을 하고 있다. 현재 옹호기관은 지자체 17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들은 올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전국에서 접수된 장애인학대 신고현황을 분석하고, 가장 많이 발생한 장애인학대 유형 중 경제적 착취, 이른바 ‘장애인 노예사건’으로 불릴만한 노동력 착취 사건을 중심으로 대책을 짚었다.
학대받은 장애인 10명 중 7명이 지적장애인… ‘경제적 착취’ 가장 많아
장애인복지법 제2조 3항에 따르면 장애인학대는 장애인에 대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언어적, 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 경제적 착취, 유기 또는 방임을 의미한다. 이 기준에 따라,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접수된 1,843건 중 장애인 학대 의심사례는 53.4%에 해당하는 984건이며, 나머지는 일반상담(859건, 46.6%)이었다. 의심사례 중 학대조사, 사례회의 등을 거쳐 학대로 판정된 사례는 532건(54.1%)으로 전체 학대의심사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장애 유형별로 보면, 장애인 학대로 판정된 532건 중 지적장애가 347건(69.7%)으로 가장 많았다. 여기에 자폐성장애, 정신장애를 포함하면 전체 장애인 학대 피해자의 77.1%가 정신적 장애인(지적장애·자폐성장애·정신장애 통칭하는 용어)이다. 그다음으로는 지체장애 44건(8.8%), 뇌병변장애 27건(5.4%) 순이었다. 이미현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대리는 “정신적 장애인은 학대 고위원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국가 및 지자체에서 정신적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를 옹호할 수 있는 교육, 읽기 쉬운 학대 예방 교육 자료 등의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학대 판정 사건 532건을 신체적, 정서적, 성적, 경제적, 유기, 방임 6가지 학대유형으로 나눈 후, 학대 유형을 중복 집계한 767건 중 가장 많이 차지한 유형은 경제적 착취로 218건(28.4%)에 달했다. 그다음으로는 신체적 학대가 186건(24.3%), 방임 176건(22.9%), 정서적 학대 116건(15.1%), 성적 학대 58건(7.6%), 유기 13건(1.7%) 순으로 나타났다.
‘염전 노예’ 사건 같은 노동력 착취 사례 27건 집중 분석해보니
1차 산업에서 장시간 근로, 거주지는 학대행위자 주변
이날 발제를 맡은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은 여러 종류의 경제적 착취 중에서도 신안 ‘염전노예’ 사건처럼 사회적 이슈가 되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그는 경제적 착취 218건 중 ‘노동력’ 착취에 해당하는 사례 27개를 분석해 △피해자 △피해 내용 △피해자 거주지 △신고자 및 학대행위자에 대한 후속 조치 등을 분석했다.
성별로 보면 총 27명의 피해자 중 남성이 23명, 여성이 4명이다. 노동력 착취 피해 기간은 평균 16.5년, 중간값은 15년이었다. 피해장애인의 연령대는 50대가 10명, 60대가 6명, 20대가 5명, 20대, 30대, 70대가 각각 2명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연령은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고 조사가 실시된 시점의 연령으로, 피해자들이 노동력 착취를 당하기 시작한 시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해자의 주 연령대는 40~60대이고 신고접수 당시 나이의 중간값은 55세이므로 결국 40세 이전에 노동력 착취가 시작돼 15년 정도 지속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정민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팀장
피해자들이 가장 많이 종사한 노동영역은 농사, 농장, 비닐하우스, 허드렛일, 축사에서 가축 돌보기로 총 18명이 이 영역에서 일했다. 그 외에 식당일(3명), 고기잡이(3명)가 있었으며, 건설노동자·청소·폐기물 처리 일을 한 사람이 각 1명이었다. 이러한 일들을 대부분 1차 산업에 속하는 일로 고도의 기술이나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낮은 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로 대체로 기피 직업에 속한다. 이 팀장은 “농촌 지역에서는 농산·축산·어업 노동자로, 도시에서는 식당·공사현장·쓰레기장 등 장소를 달리했을 뿐 대다수가 단순 노동에 종사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의 노동시간은 장시간이었다. 하루에 8시간 이상 일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만 11건이었으며, 이 중 10명의 피해자들은 하루에 12시간 이상, 최대 17시간까지도 일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말이나 휴일이 없거나 언제든 부를 때는 나가서 일해야 한다는 진술도 있었다. 나머지 14건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한 것인지 특정조차 어려웠다. 특히 농촌의 경우 일이 다양하고, 피해자들 대부분 지적장애가 있어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거나 정확하지 않았다.
피해자 거주지 대다수가 학대행위자의 주변에 있었다는 점 역시 피해를 키웠다. 피해자 대다수가 주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았고 학대행위자 혹은 그의 가족과 동거하거나 학대행위자의 거주지 내에 있는 방 한 칸, 창고, 컨테이너 등 학대행위자 관할 공간에서 생활했다. 학대행위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거주지는 5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령 물리적으로 주거지가 분리된 경우에도 바로 옆집이거나 이웃에 살고 있을 정도로 예속되어 있었다. 주거환경도 냉난방이 전혀 되지 않거나 화장실이 제대로 구비 혹은 관리되지 않았고 악취, 곰팡이 등 엉망이었다.
위 27건 중 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는 총 9건이었고 모두 공무원이었다. 나머지 18건은 비신고의무자에 의한 신고였는데, 이 중 16건은 관련 기관 종사자 10건, 타인 6건이었다. 신고자가 피해자 본인이거나 피해자의 가족인 경우는 2건에 불과했다.
이정민 팀장은 “장애인에 대한 경제적 착취는 ‘현대판 노예제’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의 의지에 반해 노동이 이뤄지고, 이를 거부할 경우 유·무형의 불이익이 따랐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상황에 대한 변경 가능성이나 타인이 지배하는 부동산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종합할 때 이는 강제노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사 과정에서 제대로 지원도 못 받고 쉼터도 부족, 가해자 처벌은 ‘미흡’
문제는 이렇게 학대피해자가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학대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기 힘들며 처벌도 미흡하다는 점이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가 약취와 유인에서부터 지속적인 강제노동으로 이어지는 연속체적인 행태임에도 관련 규정이 형법, 장애인복지법, 근로기준법 등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대표적 노동법인 근로기준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법원은 장애인 노동력 착취를 단순 법령위반, 통상적인 임금 미지급 사건으로 보는 경향이 커서 피해자가 몇십 년을 일했건 학대행위자에게 일반적으로 3년치의 임금을 계산하도록 상호 합의하에 사건을 정리한다. 임금채권의 소멸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장민영 한국법제연구원 박사는 “장애인 노동력 착취는 ‘농노’에 가까운 유형임에도 국내법에 이에 관한 금지 및 처벌 규정은 없다. 반면 영국 노예법(2015)의 경우 노예, 예속, 강제노동 및 인신매매에 대한 최고 법정형을 종신형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염전노예’ 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은 6개월 징역형, 150만 원 벌금형 또는 1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그쳤다”며 수십 년간 노동력 착취를 당하는 장애인 학대의 경우 피해자의 특수성 및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현재와는 다른 양형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수사 과정상의 문제도 지적됐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의 경우 피해자가 사실상 사용자에게 신체적, 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조사 편의를 위해 사용자와 피해자를 같은 날 불러 대질심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대다수가 지적장애인임을 고려했을 때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신뢰관계인이나 의사소통 조력인을 배치해야 함에도, 상당수 근로감독관이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르고 있고 수사기관은 피해 당사자와의 의사소통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여겨 통상적인 형식으로 조사가 이뤄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학대 피해를 당한 장애인이 학대행위자로부터 분리되어 쉴 수 있는 공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현재 학대 피해장애인 쉼터는 전국 8개소(1개소는 운영 준비 중)에 불과하며, 정원도 4명 내외다. 이미현 대리는 “현재 응급조치 46건 중 쉼터로 간 경우는 27건이었다. 쉼터로 가지 못하는 경우 부득이하게 장애인거주시설 등을 수소문해 가고 있다.”면서 “피해장애인쉼터 외에 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 등이 있지만 장애를 이유로 입소를 제한하거나 꺼리는 경우도 있어 해당 보호시설을 이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피해장애인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17개 시도별로 최소 1개 이상은 설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피해 회복 이후 쉼터에서 나와 피해자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며 살 수 있는 주거 지원체계 마련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장애인 노동력 착취 근절을 위한 여러 제언이 이어졌다. 최정규 경기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은 “노동력 착취사건을 살펴보면 신고받게 된 경로에 따라 각 사건의 수사진행 기관이 제각각 달랐다.”면서 “노동부, 복지부 등 서로 사건 해결을 미루고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초 신고받는 기관이 노동청이라면 장애인복지법 위반 등 추가 조사를 경찰청에서 할 수 있도록 하고, 반대로 최초 신고 접수기관이 경찰청이라면 기본적인 수사는 경찰청에서 진행하고 노동 관련 법령 위반은 노동청이 추가로 수사하는 등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은 “권익옹호기관 같은 기관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역 면사무소, 지역 경찰만큼 지역 상황과 그 안에 장애인의 상황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없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인 행정청과 경찰청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역별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은 이후 장애를 고려한 대응과 지원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김경민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사무관은 근로감독관은 장애인 고용이 많이 되어 있는 사업장 중심으로 조사하기에 1차산업에서 경제적 착취를 당하는 장애인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까지는 한 해 사업장 근로감독계획을 세울 때 중앙에서 계획을 세우고 하달했지만, 올해부터는 각 지역의 업종을 반영해 감독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농업, 어업, 축산업, 영세업 등 장애인 경제적 착취가 많이 일어나는 곳을 중심으로 수시감독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1400명에 불과한 근로감독관을 증원할 계획이라면서 장애인 노동력 착취 사건을 맡을 수 있는 전담 감독관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