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며 작성한 수급신청사유서. 이 사유서는 신청에 필요한 정식 서류가 아니며, 구청에서 임의로 만들어 신청자들에게 요구해온 서류다. (사진 제공=김윤영)
“안녕하세요. 독거노인 ○○○할머니입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염치불구하고 주민센터에 찾아왔습니다. 기초연금, 장애연금 25만 원으로 생활을 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휠체어 타고 다니는대 물리치료도 못 가고 관리비(아파트) 부담스럽습니다. 자녀는 있지만 가정형편이 안 좋아 경제적 지원 못 해주고 있습니다. 신청서 잘 읽어주시고 도와주세요.”
얼마 전 서울에 사는 한 할머니가 자필로 작성한 ‘수급신청사유서’ 내용이다. 국민기초생활수급 신청 서류뭉치 마지막에 있던 이 종이는 ‘정식 양식’이 아니다. 복지부에 확인한 결과, 해당 구청에서 관례적으로 요구해 온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기초생활수급신청은 무척 어렵다. 준비해야 하는 서류도 많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 신청 이후에 반복되는 면접조사는 신청자들을 위축시킨다. 초기조사, 확인조사, 거주실태조사, 활동능력평가 등 면접조사의 이름도 다양하지만 질문은 대동소이하다. 왜 가난해졌는지, 언제부터 일을 못 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왜 도움을 받지 못하는지, 집 계약은 어떻게 했고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반복해서 대답해야 한다. 이 과정에 대해 한 수급신청자는 ‘아무래도 저를 의심하니까 반복해서 묻는 것이겠지요’라고 말했다.
당사자 개인 진술이 없으면 조사할 수 없는가? 그것도 아니다. 이미 정부는 2010년 통합전산망을 도입했고, 상당한 정보를 관리하고 있다. 사실 저런 수급신청사유서가 아무리 애절한들 통합전산망에 드러난 소득이 높다면 수급신청은 탈락할 것이다. 즉, 의미 없는 서류를 할머니는 요구받은 거다.
- 필수적이지 않은 서류의 요구는 어떻게 복지신청자의 인권을 침해하는가
분명한 것은 이러한 서류 요구가 수급신청 권리를 제한하고, 복지신청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조사는 예산 효율화, 관리 강화라는 이름 아래 지속해서 강화되어 왔고 절차는 세분되고 복잡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짐짓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예상한 효과대로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첫째, 과도한 서류의 요구는 신청 포기를 종용한다. 사용하는 모든 은행의 1년 치 거래내역서를 받아오라는 것이나, 부양의무자의 금융정보제공동의서를 받아오라는 요구는 유일한 생계자이거나 고령자, 몸이 아픈 사람들에겐 그 자체로 수급신청을 포기하는 이유가 된다. 아픈 남편과 아이 셋을 돌보며 혼자 일하던 한 어머니는 회사에 오전 반차를 내고 수급신청서를 내러 갔지만 필요서류안내를 듣고 신청을 포기했다. 부모님의 집은 대전, 거래 은행만 해도 여섯 곳. 대전까지 갈 시간도 없고, 통장 대부분엔 잔액도 없었지만 무조건 다 떼어야 한다는 안내만 받았다.
둘째, 보호받아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로서 자신을 정체화하게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헌신적인 가족공동체 모델을 올바른 것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끔 한다. 왜 가족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가장인 자신이 자녀를 왜 부양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사회의 바람직한 정상성을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이 된다. 속절없는 반성의 강요는 수급신청자의 자존감을 낮춘다.
보건복지부는 해당 구에서 ‘수급신청사유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소중한 변화지만 충분하지 않다. 2011년 유엔(UN)에서는 극빈과 인권에 관한 특별보고서를 채택하고, 빈곤의 형벌화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했다. 그중 하나는 ‘빈민의 자율성, 프라이버시 및 가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조건의 강화’다. 사회서비스와 신청권의 제약은 그 자체로 권리 침해라는 것을 복지부는 알아야 한다. |